암환자 그를 사랑하는 아내
어느 날 밤,
그는 잠에서 깨어서 "삼동 나이트네" 하면서 내게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했다.
자다가 깨서 하는 말에 섬망인 줄 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라고? 여기가 어딘데, 삼동 나이트가 어딨어?"
대체 나이트클럽을 안 다닌 지가 몇십 년 전인데, 뜬금없이 나이트라니!
답답하다고 밤에도 커튼을 열어 놓는데, 그인 창 밖을 보면서 " 삼동 나이트야" 하고 또 같은 말은 한다.
대체 삼동나이트가 뭔데?
일어나 창가로 가 밖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는 제대로 말했다. 분명한 삼동나이트였다.
'3동 Bldg'
뒤편 '3동 건물' 표기 간판에 불이 깜빡거리는 걸 보고 그는,
"삼동 나이트"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 삼동 나이트를 며칠 동안 보면서, 그들이 알아채지 못한다고 우리끼리 '삼동나이트 시작이다' 하면서 웃었다.
그런 매일 밤 밝게 발광하는 삼동 나이트를 떠났다.
그가 먹어야 하는 약을 한 보따리 들고서, 침착하고도 조용하게.
햇살이 좋은 날, 생전 처음 타는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며 떠나왔다.
우린 차박을 참 좋아했다.
몇년 전 그가 덩치 큰 SUV차를 구입할 때, 판매사원이 "차박에 엄청 좋다"라고 힘줘서 얘기하는데,
난 '차박'에 대해 알지도 못 했으면서 '누가 차 안에서 잠을 자? 호텔에 가서 자면 되지!'
지극하게 차박을 무시하는 생각을 했다.
차박에 유리한 자동차라는 것이 우리에겐 전혀 장점으로 여겨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후, 어쩌다 차박 유튜브를 볼 때면 자연 속에 제일 가까이 있으므로 호텔이든 다른 건물 안 숙소에서 볼 수없었던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별을 실컷 보고자 한여름에 강원도 강릉의 안반데기 고랭지 배추밭으로 그와 첫 차박을 떠났다.
여름철에 고지대의 기온을 예상하지 않고 챙겨간 얇은 옷에 달달 떨면서도 그 밤에 무수히 많은 별들과 은하수를 보면서 우린 감탄을, 감동을 했었다.
차박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그도, 그날 처음 은하수를 봤다면서 차박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새벽하늘의 별과 초승달의 거대한 작품을 보면서 이후 나도 차박의 치명적 매력에 빠졌다.
이후 종종 차량 뒷자리에서 트렁크까지를 넓은 방처럼 꾸며 여행 다녔다.
운전하다가 피곤하면, 안전한 나무 그늘 아래에 주차를 하고 침대처럼 만든 뒷자리에 누워 편하게 잠을 자는 시간들이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자동차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차박을 강추하였던 판매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불쑥 들기도 했다.
그런 불편했던 경험과 기억들로 병원생활이 힘들지 않았다.
좋아했던 차박처럼 여기면서 어떤 보호자 보다 늘 씩씩했었다.
"여보, 우리 차박 나온 거라 하자! 난 꼭 차박 나온 거 같아. 차 안이 불편했어도 좋았잖아. "
잠에서 깨면,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백번쯤 하는 그이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자 우리가 차박 다녔던 즐거운 날들에 대한 얘기를 해줬다.
어느 날은 위험한 드라이브를 한 적이 있었다.
그가 운전할 때 내가 누워서 가고, 내가 운전할 때 그가 누워서 갔던 적이 있었다.
안전벨트를 하지 않아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다시는 하지 말자고 했던 강원도 가는 날이 있었다.
잠시 누워서 가는 기분만 냈었던 날이었다.
삼동 나이트를 떠나는 날,
아주 운이 좋게 병원 앰뷸런스를 탔다.
차량 뒤편에 누워서 가는 매우 위험한 일은 다시는 하지 말자고 했었는데,
그가 누워서 간다.
차창 밖은 내가, 우리가 생전 처음 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처음 가는 길을 참 즐거워했다.
"이 길은 처음이다. 그렇지? 이 길 좋네. 다음에 또 이 길을 오자"고 하면서 매번 여행을 다녔다.
앰뷸런스 보조석에 앉아서 밖을 보며, 나는 뒤에 누워있는 그이에게 마음으로 얘길 한다.
"여보가 좋아할 길이야. 나, 이 도로 처음 가본다. 우리 이렇게 또 새로운 길을 가네."
그는 진작에 맞고 나온 모르핀 주사에 잠을 자는지, 낯선 차 안 응급구조사 옆에서 말이 없다.
우린, 분당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딱 한 달을 채우고 전원(병원을 옮기는) 중이다.
병원에 들어갈 때만 해도 열이 난 것뿐이니 응급실에 잠깐 갔다가 집으로 올 줄 알았는데,
상황은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말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겪으며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곳으로 옮겨간다.
겨울 속의 봄날 같은 날, 햇살을 받으며 환하지 않은 마음으로 아무 말 없이 차창 밖만 바라봤다.
우리는 용인에 있는 <샘물 호스피스병원>으로 왔다.
차가웠고, 시끄러웠고, 어두웠고, 이것저것 검사로 꽤 피곤하게 하는 병원을 나와 그를 편안하게 해주는 곳으로 왔다.
온돌바닥이 따듯하고, 창이 많아 햇살이 잘 드는 병원으로 왔다.
겨울바람도 따듯하게 지나가는 병원, 병실이다.
2인실의 방은 아늑했다. 꼭 집 같다.
입원 절차로 사각 테이블에 의사 선생님과, 목사님, 사회복지사, 간호사의 상담을 하는데,
보호자도 보호를 해준다. 보호자를 위로해 준다.
이미 병실에서 쉬고 있는 그이 옆으로 가면서 프랑스풍 주황색 테릴기와를 얹은 흰색 건물들을 보며,
'잘 왔다. 잘 왔다' 몇 번이고 되뇌었다.
'테릴기와집을 그렇게 좋아하더니, 결국 다시 테릴기와를 얹은 집으로 오게 되었네. 잘 왔다. 잘 왔어.'
두 딸들과 함께 전원을 하면서도 몹시 힘들었다.
지친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고, 그도 나도 지쳐 아득하게 잠이 들었다.
저녁식사가 오기 전까지 깊은 숙면을 취했다.
병원의 4인실은 4인실이 아니다.
4인의 환자와 보호자까지 8인실이다.
8인이 지내는 병실은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증상의 환자로 지내기가 만만치가 않다.
게다가 잠들만하면 각종 검사로 깨우고, 간호사들이 밀고 다니는 트레이 바퀴 소리가 밤이면 유난히 크게 울려 잠들기 힘든 그에게는 그 소리가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어쩌랴. 치료를 하자면 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이곳은 다들 조용히 다닌다.
환자의 이름을 크게 부르거나, 이름이 뭐냐고 묻지도 않는다.
유난스러운 바퀴소리도 없고, 밤 9시 10분이면 병원을 울리는 안내방송도 없다.
밥차가 오는 소리도, 음식 냄새도 없다.
조용히 말하는 사람들은 참 친절하고, 서로 돕는 모습들도 보기 좋다.
죽이 맛있다면서 밥 못 먹었던 환자들도 여기 죽은 잘 먹는다고 간호사님이 죽 칭찬을 하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열흘 넘도록 밥을, 고형식을 먹지 않던 그가 녹두죽에 동치미를 먹는다. 맛있다고 하면서.
신기한 일이다. 간호사님께 얘기하니 웃으시면서
"여긴 그런 곳이에요. 기적이 많은 곳이에요."
죽을 먹고, 편안히 잘 잔다.
보호자를 위한 식당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며, 미로 같은 건물에 못 찾아갈까 식사 시간이 되니 여러분들이 나를 챙긴다.
응급실 열흘동안 푸드코트를 전전했고, 이후 환자식을 내가 먹었었다.
먹지도 못하는 환자를 위해서는 마시는 영양식을 제공하면서, 환자 일반식은 어쩌면 보호자를 위해 그대로 두었었는지 모르겠다. 난 매 끼니때 환자식을 몇 숟가락 먹고 내놨었다.
그랬었는데,
여기에 오니 보호자, 나를 위한 식사가 있다.
자율배식으로 동그란 접시에 몇 가지 반찬과 밥을 담아와 식탁에 앉아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오늘이, 여기까지 오기가 너무 힘들고 지친 내가 이제야 보였다.
그가 죽을 먹고, 오랜만에 나를 위한 식사를 하니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특별할 것 없는 밥이 너무도 맛있었다.
지친 나의 영과 육을 회복시키고, 위로하시는 듯 나는 그 밥을 한번 더 먹었다.
뱃속이 든든해진다. 다시 힘을 내보자!
그와 나는 어제보다 든든한 배를 하고,
따듯하고 조용한 병원에서 첫날밤은 아주 고요히 잘 잤다.
천사가 우리를 감싸고 있는 느낌이다.
잠들기 전에,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면서,
그가 편안한 모습에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안도하며 다행이다, 다행이다, 잘 왔다, 잘 왔다를 반복하다 잠이들었다.
차갑고 어두웠던 기억을 흔들어 흘려보내며, 기적을 품는다.
2026.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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