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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델 Aug 03. 2022

아르장퇴유로의 휴가 (2)

19세기 파리의 교외와 인상주의

1866년 파리와 그 주변
1610년의 아르장퇴유


파리에서 서쪽으로 약 11km 떨어진 아르장퇴유는 1840년대까지 그저 농촌에 불과했다. 19세기 이전까지 이곳은 일드프랑스 지역에서 왕의 공인을 받을 정도로 손꼽히는 포도주 생산지 중 하나였다. 비록 모네가 이곳에 정착할 시기에는 토질, 기후의 변화와 농업 양상의 변화로 이곳의 와인 품질이 급격하게 떨어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와인은 그 시기까지도 주요 생산물 중 하나였다.(여담이지만 모네는 이 곳의 와인을 즐겨 마시진 않았다. 그는 보르도와 나르본느 지역에서 나는 와인을 즐겨 마셨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혁명과 정치적 혼란 와중에 아르장퇴유는 아스파라거스 작물 생산지로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1867년과 1878년 만국박람회에서 아르장퇴유의 아스파라거스는 그 상품성을 인정받아 프랑스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 결과 전국의 손꼽히는 레스토랑에서 이곳의 아스파라거스를 구매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물론 아르장퇴유가 전형적인 의미의 농촌 경제를 가진 곳은 아니었다. 이곳은 파리에 석고를 공급하는 중심지이기도 했는데 이는 오스망 남작의 파리 개발 시기 아르장퇴유 지역의 경제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파리의 도시 개발이 곧바로 이 지역의 성장과 연결되지는 않았다. 19세기의 반세기가 넘어간 뒤에도 이 지역은 수녀원을 방문하기 위해 센 강을 건너는 순례자들을 제외하면 비교적 한적한 시골 마을에 불과했다. 19세기 중반에 출판된 프랑스 여행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곳은 중세시대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수녀원과 시내 북동쪽에 있는 오래된 풍차가 거의 유일한 관광명소였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1870년대의 아르장퇴유는 철도 개통과 부르주아들의 여가 문화의 성장과 함께 관광지로 탈바꿈한다. 물론 변화는 비단 아르장퇴유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부지발, 샤토, 아스니에르등 파리 서부 근교 지역은 모두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변화의 원인은 파리의 팽창과 관련이 있었다.


파리에 집중된 인구와 자본은 19세기 후반 파리와 근교 지역의 경관에 심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나폴레옹 3세의 지원 하에 오스망 남작이 벌인 대대적인 도시 개발로 가속화되었다. 오스망 남작은 정치적인 목적과 기능적인 목적 두 가지를 만족시키기 위해 도시를 재구획하고 도로를 폭을 넓혔으며 이를 위해 중세 이후 형성된 좁고 복잡한 골목과 건물들을 차례로 철거했다. 또한 미관을 통일시키기 위해 도시 건물의 양식과 높이를 강제하기도 했다. 그 결과 파리는 중심부부터 외곽까지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대로와 개선문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구획된 주거, 상업공간이 존재하는 근대 도시로 탈바꿈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도시 거주민들이 자신이 터전을 떠나 교외지역으로 옮겨갔다. 이런 경향은 파리 북부와 북동부 교외 지역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하지만 도시 개발로 인해 발생한 우발적 사건이 이 모든 변화의 원인은 아니었다. 오스망 남작은 도시 계획 단계부터 상류층과 노동자 계층을 공간적으로 분리시키고자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계획은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다. 파리를 예로 들면 전반적으로 서부 지역에는 부유한 계층이 거주했고 동부와 북부 지역에는 노동자 계층이 주로 거주했다. 시테 섬을 중심으로하는 파리 최중심부는 상류층 거주지와 사치품을 제작하는 기술자들의 주거지가 섞여 있는 양상을 보였다.


한편 교외 지역의 경우 특히 서부 지역에서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이는 이 지역이 관광지임과 동시에 산업중심지였기 때문이다. 파리인들은 도시에서 벗어나 센 강과 인접한 서부의 교외 지역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파리 생 라자르역에서 기차로 15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었던 아르장퇴유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접근의 용이함 때문에 부르주아들의 고급 빌라와 레스토랑이 즐비하게 늘어선 관광지가 되었다. 과거 여행 가이드에서 관광명소로 알려진 오래된 풍차는 이 시기에 들어서 고급 레스토랑으로 개조되어 아르장퇴유로 오는 손님들을 맞았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의 자랑이었던 아름다운 강가는 강둑에 산책로가 조성되고 고전주의 양식의 테라스로 장식한 저택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한편 이 지역은 관광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파리에서부터 이전한 산업체들이 자리 잡은 곳이기도 했다. 아르장퇴유의 경우 파리 부르주아들에게 보트 경주나 뱃놀이 등의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관광지로 인식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파리와 인근지역의 철교와 철제 구조물 공사에 쓰이는 제품 상당 부분을 공급했던 철강 공장이 들어선 지역이기도 했다. 특히 아르장퇴유는 영국과의 교역 증가에 따라 중요 물자들이 오고가는 주요 거점으로 떠올랐다. 이는 비단 아르장퇴유뿐만 아니라 인접한 아스니에르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이 지역은 일요일에 열리는 지역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관광지였지만 그러한 북적임 반대편에 위치한 클리시 지역은 공장들이 검은 연기를 내뿜고 원자재를 나르는 바지선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공업지대였다.


1850년대 이후 시작된 파리와 교외 지역의 변화 지난 수십년의 변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대대적이었다. 그렇기에 시 당국은 이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뒤쳐지기 시작한 사람들이 소요사태를 일으킬까 전전긍긍했다. 서부 교외를 책임지고 있던 행정부의 일원들은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한편으로 이러한 변화가 1848년 서부 교외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났던 폭동을 재현하지 않을까 두려워 했던 것이다. 1848년 프랑스의 혼란은 이 지역에 있던 역마차 종사자, 뗏목 운송업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는 철도, 철제 다리와 같은 근대적 이동수단, 구조물들에 대한 사보타주를 불러왔다. 특히나 이들이 가장 적대시 했던 것은 다리였는데 그것이 지역민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자본가들을 불러오는 통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후 시 당국은 지역의 급격한 변화가 가져오는 반발을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교외 지역으로 몰려오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지역의 경관은 이전의 모습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특히 수질 상태는 이 시기를 사생했던 인상주의자들이 집중해서 그리지 않았던 또 다른 측면이었다. 관광지와 산업시설이 병존해 있었던 서부 교외의 특성상 무분별하게 강가에 버리는 산업폐기물 문제가 쉽사리 표면 위로 떠올랐고 그때마다 당국은 관광객들의 요구와 공장 주인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서부 교외 지역을 둘러싼 변화와 그에 따른 마찰은 사실 프랑스 전체의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양극화, 가난의 문제와 일정부분 조응하는 측면이 있었다. 1873부터 1875년까지의 통계에서 노동자 계층은 전체 부의 0.3%만을 소유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러한 가난을 자식들에게 대물림 했는데 노동자 계층 중 단 5.6%만이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기는 보다 이르지만 1856년부터 58년까지의 사망률 통계 또한 이 시기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 수준을 대변해주고 있다. 노동자들의 고난은 1860년대와 1870년대있었던 일시적인 경기 불황과 파리 코뮌으로 인한 사회 혼란 속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1868년 프랑스 북 철도 회사에서는 엔진 기관사 중 18%가 사고를당했고 3천건의 납중독 사례가 보고되었다. 아르장퇴유와 그 인근 지역의 노선들이 철도 사업과 관련해 여러 신화적인 기업가들을 탄생시킨 원천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 문제는 결코 아르장퇴유와 무관한 문제가 아니다. 1848년의 소요에서도 알 수 있듯. 지역의 농민들이나 도시의 노동자들에게 철도는 마냥 진보의 상징이 아니었다. 특히 지역의 보수적인 농부들에게 철도는 마치 검은 뱀처럼 꿈틀거리며 기어와 지역 사회를 도시인들의 입맛에 맞도록 개편하는 전위부대였을 따름이었다. 철도가 단순히 근대적 산물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는 산물이라는 점은 이후 모네의 아르장퇴유 시기 회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개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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