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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 Apr 02. 2024

[옛날 이야기] 봄 꽃 구경은 인내의 이야기

화무십일홍이라,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덧없을까

 꽃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렸을 때에는 호박꽃이 커서 무서웠던 것 빼고 다른 꽃은 무던히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봄은 기적처럼 찾아온다. 얼마나 많은 꽃들이 봄에 피어나던가.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그저 꽃뿐인 그런 세계가 봄마다 펼쳐진다.


하늘을 바라볼까. 학교를 가던 도롯가 근처에는 거대한 목련 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나는 멀리서 봤기 때문에 목련꽃이 그렇게 큰 줄 모르고, 그저 꽃이 하야니 예쁘구나 했다. 하얀 꽃은 하얗게 빛이 나는 것 같다. 휘광이라고 할까? 그래서 목련을 정말 좋아했다. 하지만 떨어져 갈빛으로 변해버린 목련은 모른체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중에서야 그것이 꽃잎이 떨어져 시든 흔적임을 알았다.


봄까치꽃이 새파랗게 피어있는 들은 정말 아름답다. 봄까치꽃이나 자운영처럼 한무더기 피어있는 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다른 세계 같다. 노란 개나리도 좋다. 개나리는 도롯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었는데, 그 노란 색이 어린 마음에도 한없이 설레고 설레었다. 어딘가에 뛰어서 놀러가야 할 것 같은 느낌. 꽃은 노란색이어야 한다는 미묘한(?)편견은 아마 개나리를 보며 생겼을 테다. 냉이는 색이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냉이에 다른 색 꽃을 섞는 것만으로도 꽃이 제법 그럴싸하게 예뻐져서 좋아했다. 우리는 꿀풀이라고 부르는 광대나물은 자줏빛이 매력적이다.  냉이에 광대나물이나 민들레를 섞으면 제법 그럴듯한 꽃다발이 되곤 했다. 그러면 머릿속으로 아주 멋진 드레스를 입은 내가, 멋진 궁전 한 가운데 서 있게 된다. 그런 걸로도 행복했던 적이 있다.


벚꽃은 내가 학교 가는 길에 쭉 서 있었다. 봄날, 등굣길이 얼마나 찬란했을지, 굳이 말을 덧붙이진 않겠다. 꽃잎이 떨어지면 나는 마치 천국에 온 기분으로 사뿐사뿐 걸었다. 꽃잎이 후두둑 떨어져 옷에 온통 달라붙은 날은 마치 보석 박힌 옷을 입은 것처럼 조심조심 걸었다. 꽃잎이 혹시나 떨어질까 봐.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삼촌이 꽃놀이를 가자며 차를 끌고 찾아왔고, 엄마가 우리들의 손을 잡고 꽃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한참 어렸던 나는 꽃놀이라니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하지만 꽃구경 목표지는 그 당시에도 핫플레이스였던 하동 십리벚꽃길이었다.  지금은 2차선 확장 공사를 해도 벚꽃철이면 막히는 곳이 과연 25년 전 1차선 도로일 때에는 괜찮았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차 안에서 한참 기다리다가 배가 고파져서 엄마에게 칭얼댔고, 엄마는 길에서 팔던 술빵 하나를 내게 통으로 사주었다. 아직까지 그 맛을 잊지 못하는 걸 보니, 그건 정말 맛있었던 모양이다. 배가 차니 이젠 구경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차가 한가득 주차된 도롯가를 엄마 손을 잡고 걸었다.


벚꽃은 신기한 꽃이었다. 까만 나무에서 분홍색 꽃이 피었다. 꼭 죽은 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 같기도 했다. 비가 온 다음날이라 벚나무 줄기는 젖어서인지 더욱 까맣게 빛났고, 그게 내게는 꽤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엄마 손을 한참을 잡으며 이야기했다. 엄마,  엄청나게 까만 나무가 하얀 꽃을 피워. 예쁘게 피워. 엄마, 꽃잎이 다 떨어져 있어. 꽃잎이 다섯 개야. 예쁘지. 어린 내가 얼마나 조잘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지쳐 쓰러질 만큼 이야기한 건 확실하다. 돌아올 때의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첫 번째 꽃놀이는 그렇게 덧없이 끝나 버렸다.


요즘 꽃놀이 가는 인파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꽃을 보러 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 때문에 차에 갇혀 있는 저 시간은 얼마나 힘들까, 하고. 나도 꽃을 보기 위해 한없이 차를 기다리며 땡볕을 맞은 적이 몇 번 있는데, 정말 힘들고 지쳐서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 몇 번이고 고민했었다. 그렇게 가서 본 꽃은 한없이 찬란하고 화려해서, 화무십일홍의 그 십 일에 때맞춰 어떻게든 꽃을 보려는 내 노력이 이렇게 보상받는구나 싶을 때도 있었다. 지만 때로는,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그 시간을 견뎌서 보는 꽃이, 전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아서. 억울함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꽃구경을 위해 새벽같이 눈을 뜨던 어느 날, 갑자기 옛날이 생각났다. 들판이 온통 꽃으로 가득하던 시절의 일이다. 논두렁에서 제멋대로 민들레를 꺾어 머리에 꽂고, 제비꽃 몇 송이를 손에 들고 가던 그 시절. 계란꽃과 괭이밥을 보고 꽃을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 유채를 배추장다리로 외웠던 옛날의 나는, 한가득 모여 핀 꽃이 아니더라도, 그저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고 좋아서, 행복했었다. 꽃을 기다리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 주변의 꽃들이 나를 가득 봄으로 물들여 주어서 뻤다.


화무십일홍, 꽃의 덧없음을 일컫는 말이지만 나는 문득 그 말이 꽃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나의 시간을 덧없다고 말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나는 꽃구경 대신 내 주변을 구경하는 것으로 이번 봄을 시작하려 한다. 그저 내 곁의 벚나무 하나, 목련 한 그루, 냉이 한 뭉치.


그것만으로도, 꽃은 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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