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나, 쉼은 어디로
그때는 그게 쉬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쉼이란 무엇인가? 쉰다는 것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텅 빈 시간과 쉼이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안타깝게도 그 깨달음을 좀 늦게 얻었다. 그렇다면, 나의 쉼은 어떠했는가? 오늘의 주제에 맞추어, 내가 어떻게 쉬었는지 간단히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나에게 있어 쉼은 일하지 않는 모든 시간이었다. 일은 업무와 집안일 정도로 한정한다. 사실 집안일도 일에 포함시키지 않으려 들었다. 집안일이 일에 포함된 건 내가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후이다. 그전까지는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쉬는 시간' 이라고 생각했다.
그땐 그 생각이 옳았다. 나는 건강했고, 잠만 잘 자면 피곤하지 않았다. 하루 8시간을 꼭 맞춰 자야 하는 잠순이였지만, 잘 자고 일어나면 매일의 활력이 솟았고 뭐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생 때에는 진심으로 '많이 쉬었다' 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이 없었으므로, 나는 비어 있는 많은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낼 수 있었다.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르다. 어찌 보면 타의적으로 쉬게 된 셈이다.
대학생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집안일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공강 시간에 세탁기를 돌리면 됐고, 집에 쓰레기만 없으면 됐다. 집은 그냥 자는 공간이었다. 나는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친구를 만났고, 공부를 했고, 카페에 가거나 혹은 동아리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 때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취업 후 발생했다. 취업은 내게 아주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낯선 사회 생활, 낯선 일들... 사회생활이 주는 스트레스란 사회 초년생인 내게는 굉장한 것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는데, 그 때의 스트레스는 학교를 다니면서 겪은 수많은 일들보다 더 많았다. 나는 아직도 회사 일이 공부하는 것보다 힘들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 집안일을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화장실의 물때도, 부엌의 기름때도 모르고 살았다. 애초에 부엌이며 화장실이며 많이 쓰질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나는 직장을 다니며, 살림을 꾸려야 하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대학생때처럼 삼각김밥에 컵라면만 먹기엔 몸이 화를 내는 나이였다. 나는 점차 집안일의 무게를 실감했다.
집안일이 늘어난 덴 다른 이유도 있다. 일을 하면서 옷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출퇴근자가 추리닝 바지에 슬리퍼를 신을 수는 없다. 거기다 공강이 있어 그때그때 세탁기를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일 주일을 버틸 옷과 수건이 필요했다. 그것 뿐이겠는가? 사회 생활을 하다 보니 집에 손님이 들 일이 생겨났다. 어떻게 손님에게 일회용 수저를 준단 말인가! (이런데서 넘쳐나는 꼰대력) 대학생 때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이젠 다 일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점차적으로 내 시간을 일에 빼앗겼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 나는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뭔가를 하는데 쏟기 시작했다. 일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좀 쉬고 싶었다. 그 당시의 나는 '일하지 않는' 시간을 쉬는 것으로 보았었다. 그러니 쉬는 시간에 '무언가를 하는' 것 또한 쉬는 일이었다. 쉬는 시간에 가만히 있는 건 너무 시간낭비잖아!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그리고, 인터넷 강의를 듣고, 친구를 사귀고 사람을 만났다. 그게 다 쉬는 거라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물론 나는 MBTI가 E인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과 상관없이, 육체와 정신은 평온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을, 그러니까 진정으로 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나는 그것을 몰랐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그저 신나는 기분이 드는 것을 쉼이라고 믿었다. 잠을 자고, 친구를 많이 만나는 것이 내가 쉬는 방법이라고. 사람마다 쉬는 방법은 다 다르다고. 나는 그렇게 끊임없이 스스로의 체력을 혹사했다. 버텨준 내 체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믿음을 깨 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코로나였다. 코로나19가 한창 발병하던 시기, 본가에도 가지 못하고 그저 집에만 한없이 박혀 있던 시기에 나는 깨달았다. 아, 이게 진짜 쉬는 거구나 하고. 물론 그 시절은 정말 외로웠고, 힘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몸에 힘이 돌아오는 감각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그냥 멍때리는 것. 그것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육체부터 정신까지 진짜 쉬는 것이구나를 그 때 알았다. 그전까지는 아마 친구와 만나거나, 만나려고 준비하거나, 혹은 다른 활동을 한다고 몰랐을 것들이다.
요즘은 한 달에 하루 정도는 진심을 다해 쉬려고 노력한다. 최대한 휴대폰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와의 연락도 잘 하지 않는다. 그저 몸에 힘을 빼고 눕고, 졸리면 잠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을 아무것도 안 함으로 채우려고 노력한다. 가끔은 이 시간에 차라리 뭔가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이겨내고, 열심히 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직도 과거의 쉼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어찌 보면 나는 쉼표 하나 없이 띄어쓰기만으로 버텨온 것 같다. 이제야 겨우 내 삶은 쉼표를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MBTI나 개인 특성과 상관없이, 하지 않는 삶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부지런함을 강조한다. 게으름은 마치 박멸해야 할 대상처럼.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게으름이다. 우리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진정한 휴식이 간절히 필요한 시기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쉬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