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스트레스는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
내가 엇나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케어해 주세요
* 극단적인 생각과 표현이 일부 들어가 있습니다.
내 MBTI는 ENTP다. 다들 말한다. 너는 상처를 안 받겠구나. 너는 남들 일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겠구나. 아니, 전혀 아니다! 나는 생각보다 굉장히 소심하고 상처를 잘 받는 편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조금 덜 받는 게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 그래서 최근에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며 나 자신이 상처받는 과정과 이겨낸 방법을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발단은 주차다. 내가 항상 주차해 놓던 곳이 사실은 남의 땅이었으므로, 주차를 하지 말라는 건 사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니 거기에 납득하면 좋았을 텐데, 나는 굉장히 비뚤어진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거기 차 대는 외부인이 몇 명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한들 나는 안 된다고?' 그래, 이 생각은 눈덩이를 굴리듯 커지고 커져, 나를 어느 순간 잡아먹었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납득하면 될 일이었는데.
그 사람이 화를 냈다 한들, 애초에 그 사람의 짜증을 내가 받아들이고 내 상처로 만든 것도 그렇다. 그 사람은 내게 왜 차를 빨리 빼지 않냐고, 여기에 근무하는 게 아니면 주차하지 말라고 짜증 섞인 화를 냈다. 나는 그 소리를 얌전히 듣고 있었다. 정말 놀랐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때 무슨 말이라도 했다면 좋았을까? 나는 그 사람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어 끊임없이 곱씹었다. 이건 나중에 굉장히 극단적인 생각을 하도록 나를 몰아붙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전화로 기관에 문의를 했다. 주차를 하면 안 되겠느냐는 문의에 당연하지만 안 된다는 답변이 왔다. 여기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러니 놓아 버리면 되는 것이었는데, 나는 이 문제를 놓지 못했다. 다른 곳에서 해결책을 찾는 게 아니라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에 파고들었다. 내가 들은 말들을 끊임없이 곱씹었다. 마치 나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사람처럼.
생각은 가만히 내버려 두면 가장 쉽게 물어뜯을 수 있는 상대를 찾는다. 나에게는 내가 그랬다. 가장 만만하고, 쉽고, 간단한 상대이다. 내 생각은 나를 끊임없이 몰아세웠다. 네가 똑바로 행동하지 않아서. 네가 제대로 주차하지 않아서. 네가, 네가, 네가. 이 때 스트레스는 정말 극에 달해서, 나는 그 기관 앞에서 죽을까 고민을 했었다. 그래 저기서 목매고 죽어버리자. 이런 생각을. 나는 나 자신이 얼마나 쉬웠던 걸까.
그 우울 속에서 문득 생각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문제 해결이 목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게 목표인 거 같다고.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남들이 과대망상이라고 부르는 증상이 이런 것일까? 나는 그 사람들의 행동을 초 단위로 곱씹고 의미를 파악하고 의도를 고민했다. 사실 그 사람들은 순간의 충동과 순간의 생각을 그냥 말했던 것일수도 있는데. 나는 어째서 이렇게나 이 생각에 매몰되어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좀 편해졌다. 나를 미워하는 마음도 조금 가셨다. 과대망상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조금 찾아보고, 마음치유에 관한 책도 몇 권 빌려서 천천히 읽고 있다. 지금은 내 마음을 부지런히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왜 전혀 다른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 생각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아니면 나를 상처입힐 뿐일까? 이 생각만으로도 나는 꽤 많은 자기혐오를 벗겨낼 수 있었다.
사실 주차라는 건 생활의 필수 사항에 가까워서, 내 스트레스를 납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우울증이 이런 식으로 번질 수 있음을 객관적으로 확인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스스로를 분석하고 생각을 필터링하는 과정을 거쳐, 천천히 괜찮아지기까지의 시간은 낯설었다. 낯설고 신기했으나, 동시에 조금 자랑스러웠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구나, 싶어서.
물론 문제가 아직 크게 해결된 건 아니다. 임시방편으로 근처 지인네 집에 차를 대고 있지만, 이후가 어찌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이번 상황에서 깨달은 것은,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 자신에게 굉장한 혐오를 가차없이 표현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다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 전에 평정심을 찾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지금처럼 평정심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예전에는 약으로써 나을 수 있었던 것이어서.
아마 내가 받은 상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마 그 기관을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나는 그 모든 생각을 이겨낼 것이다. 그 모든 상황보다 나를 귀하게 여겨줄 것이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 알리고 싶어서 글을 쓰고 있다. 나 자신이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잘못된 행동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의 행동은 잘못되지 않는 편이 좋다.
나를 괴롭히지 않고, 타인을 증오하지 말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서, 힘내야겠다.
힘을 낼 수 없다면, 적어도 나를 미워하진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