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아날로그가 너무 좋지만
그리움을 현실로 다시 불러올 수 있는
어렸을 때에 그렇게 좋은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닌데도, 이상하게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편이다. 카세트테이프의 딸깍거리는 소리를 좋아한다. 카메라가 주는 그 찰칵, 하는 소리를 사랑한다. 아날로그는 내게 이상한 충족감을 준다. 마치, 내가 그 옛날의 충만한 느낌을 가득 받는 것처럼.
폴더폰을 썼던 적이 있는데, 휴대폰의 옛날 탁, 하고 덮이는 소리를 들으면 내가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전자사전을 썼던 적에는 내가 공부에 굉장히 집중하는구나 싶어 자부심이 든다.아날로그는 내게 수많은 감각을 상기시킨다. 내게 제6의 감각이 있으며, 그 감각을 그동안 잃었다고 말하는 듯이.
어느날 너무 카세트테이프가 갖고 싶었다. 어느날 문득 CD로 음악을 듣고 싶었다. 그런 이상한 생각이 어느 날 싹을 틔우고,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 나는 그 생각을 이기지 못하고 카세트테이프와 CD가 둘 다 플레이가 되는 플레이어를 샀다. 고등학생 때 영어 공부 때문에 산 이후로 처음이었다. 너무 낯설고, 너무 좋았다. 내 안에서 뿌듯함이 차올랐다.
어렸을 때 최신가요 테이프를 사듯이, 나는 카세트테이프를 사들였다. 레트로 열풍이 일어서, 테이프는 몹시 비쌌고, 그건 옛날에 나온 앨범도 마찬가지였다. 되도록 싼 것을 검색해서 샀다. 옛날에 친했던 헌책방 사장님이 헌책방에 있던 테이프나 앨범을 보내주셨다. 나는 그것을 소중하게 뜯어 음악을 들었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GOD, 신화, 그리고... 클래식. 나는 잡다하게 음악을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디지털카메라가 몹시 갖고 싶었다. 옛날의 그 감성을 다시 되찾고 싶었다. 사진이 화질이 아닌 사진만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사진을 잘 찍지도 않는 내가 카메라를 사겠다고 설쳤다. 화소 말고는 아는 것도 없는 사람이. 그렇게 얻은 디지털 카메라가 얼마나 뿌듯했는지 기억한다. 덧붙여, 내가 그 이후로 제멋대로 아무 사진이나 찍게 된 것도 기억한다. 사진을 찍는 것은 휴대폰과는 감각이 틀렸다. 손에 잡히는 묵직함과 다시 사진을 돌아볼 때의 유쾌함이 있었다. 요컨대 손맛이라고 해도 좋겠다.
전자사전은 좀더 내 삶을 심플하게 해 줄 것 같아서 선택했다.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의 전자사전만 봤다 하면 유튜브며 인터넷으로 들어가는 나를 막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다. 전자사전은 오로지 검색만 할 수 있다. 그 느낌이 좋았다.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검색만 할 수 있었다. 달각달각 누르는 느낌, 꾹꾹 누른 버튼이 화면에 드러나는 것이 스마트폰을 쓰는 것과는 달라 이상하게 낯설었다. 대학생 때 그렇게나 쓰던 것이었는데. 그 낯섦이 좋았다.
아날로그적인 삶은 즐거웠다. 그 즐거움은 영원할 것 같이 나를 유혹했지만, 지나치게 무거웠다. 나는 가방에 짐이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래, 그 무게만큼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와 앨범들을 놓을 공간이 없을 때마다 나는 문득문득 깨닫곤 했다. 내겐, 아날로그가 과연 얼마나 필요할까. 카세트를 골라 플레이 버튼을 누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수많은 아날로그 물품들을 처분하는 것은 어렵고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내 마음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힘들었고, 떠나고 나서 빈 공간만큼 내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가끔 그 따각따각 하는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그리워진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만 가득 담긴 플레이리스트가 아니라, 한 트랙을 전부 들어야만 하는 앨범이 그리워진다. 멀티 태스킹을 할 수 없는 전자사전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 감성을 가진 카메라가 그리워진다.
동시에 나는 깨닫는다. 나는 아날로그적인 인간이지만, 아마 아날로그적으로 결코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아날로그가 요구하는 공간을 나는 결코 제공할 수 없을 것이므로. 그래서 나는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디지털 인간이 되어서, 과거의 추억에 젖는 것으로만 이 모든 욕심을 내려놓으려 한다.
추억을 추억으로 남겨놓는 것 또한
추억을 아름답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