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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디즈니랜드, 몰입의 끝판왕

ENFP 엄마와 아들의 디즈니 관광 1차전

by 실버라이닝

화려한 관광지보다 알려지지 않은 로컬을 찾아다니길 좋아하는 나지만 주변에서 상하이에 간다면 디즈니랜드는 꼭 가야 한다는 강력 추천을 받았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티켓을 미리 구매하고 디즈니 전용 앱을 다운로드해 두었다. 실시간으로 어트랙션 대기시간을 알려주는 기능과 각 건물 위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 덕분에 광활한 디즈니에서 헤매지 않고 빠르게 이동하며 즐길 수 있었다.






시작은 가볍게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였다. 상상력 충만한 ENFP 엄마와 아들은 이미 궁전 계단을 올라 공주의 방을 지나는 순간 공주와 왕자가 되었다. 어렸을 때 수동적인 공주 캐릭터들이 맘에 안 들어서 공주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날 만큼은 비판적인 시선을 잠시 내려놓고 즐겨보기로 했다. 계단을 내려오며 내가 공주로 살았으면 어땠을까, 잠시 상상도 했는데 우웩, 나는 체질에 맞지 않는 게 분명했다. 답답한 공주 드레스를 입고 등산을 하거나 훌라를 추기는 어려울 테지. 공주로 태어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다음 동화로 무대를 옮겼다.



피터팬에서 후크 선장과 치열한 싸움을 끝내고 서서히 끌어올려진 감정은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폭발했다. 특히 심해로 빨려 들어가는 배와 대왕 문어의 등장 장면은 압도적이었다. 마지막 전투 장면을 지나 다시 물 밖으로 나오는 장면이 연출되자 함께 배를 타고 있던 외국인들이 “브라보!”를 외쳤다. 나와 아들도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한 주먹 크기만큼 벌어진 입으로 '와'라는 감탄사를 뱉으며 물개 박수를 쳤다. 높은 층고의 건물과 온 공간을 메운 사운드 덕분에 가상현실을 다녀온 듯했다. 아들과 다른 어트랙션을 구경하고 여기에 한번 더 오자고 말하며 구글앱을 열었다.




상하이 디즈니에 간다고 하니 꼭 봐야 한다고 추천받은 어트랙션이 주토피아였다. 대기시간 40분, 나쁘지 않았다. 지도를 보며 부지런히 걸어 주토피아 뮤지엄에 도착했다. 줄이 길었지만 줄어드는 속도가 빨랐다. 초반에는 약간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감옥처럼 꾸며진 복도가 끝없이 이어졌는데 혹시 이게 전부는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설마, 이걸 보라고 사람들이 그렇게 추천하진 않았겠지, 하며 복도를 지났다. 그러다 갑자기 나타난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다.





엄마, 저기 봐바! 저거 타고 가는 건가 봐!



아들이 가리키는 쪽 끝에 4인석짜리 동그란 자동차들이 줄지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디즈니 직원들이 순서대로 차에 태우자 드디어 경찰이 되어 주토피아 속 범인을 쫓는 흥미진진한 모험이 시작되었다. 캐리비안의 해적처럼 거대한 공간 속에 재현되는 액션은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고 우리의 몰입감을 최대로 증폭시켰다. 마지막에 공연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안 그래도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순식간에 장면에 빨려 들어가는 편이었다. 주토피아를 보고 나올 때는 정말이지 내가 무슨 범죄자라도 잡은 경찰이 된 것 같은 만족감이 차올랐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욕구불만을 해소하듯 이런 어트랙션으로 내가 못다 이룬 꿈을 대신 경험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쯤 내가 살아보고 싶은 인생으로 살 수 있는 어트랙션이 있다면, 비용이 꽤 비싸더라도 시도해 볼 것도 같다. 한편 작가 세포가 살아났다. 만약 내가 디즈니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시나리오를 써볼까? 어떤 악당을 탄생시킬까? 공간은 어떻게 꾸밀까? 핵심 사건은 무엇일 될까? 내 영화를 보고 나면 사람들은 어떤 상상을 이어갈까?



엄마, 내 발바닥에 바퀴가 달려 있어서 그냥 가만히 서 있으면 출구까지 밀려가면 좋겠어.


한참 몽상에 빠져 있는 나를 아들이 현실로 불러냈다. 아들은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 보니 정신없이 구경하느라 밥도 간식도 먹지 않고 계속 걷고 뛰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앱에서 식당을 검색했다. 가성비 최고인 볶음밥과 국수로 에너지 주유 완료.



트론 한 번 더 타야지! 아 맞다. 이제 곧 퍼레이드 할 시간이네. 퍼레이드 보면서 트론 쪽으로 가자!

잠깐의 휴식으로 기운을 되찾은 모자는 그렇게 디즈니 관광 2차전에 돌입했다. 어느새 하늘에 파랑과 주황빛이 그러데이션을 그리고 디즈니 건물들에는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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