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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푸강보다 한강

구름서점에서 만난 한강 작가 코너

by 실버라이닝


여행을 하다 보면, 계획했던 것 이상으로 특별한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상하이 여행 중, 야경을 감상하려고 들른 서점에서 그런 순간을 만났다.




구름서점, 이름도 예쁘기도 하지. 구름과 비슷한 층에 있어서일까? 저녁 시간에 들르면 통유리 창으로 황푸강 뷰와 맞은편 동방명주의 빛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고 했다. 친구가 미리 예약을 해둔 덕에 입장은 순조로웠지만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 서점 안은 이미 만석이었다. 서서 책을 보는 사람들과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들로 고요한 웅성거림이 서점을 가득 메웠다.




커피 주문 줄이 유난히 긴 건 그 사람들만 서점 밖 통유리창가에 앉아 멋진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줄이 너무 길어 뷰를 포기하려던 참에 한쪽 구석에서 카페 하나가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때닷! 서둘러 줄을 서니 세 번째다. 거의 만 원 가까이하는 라테 두 잔을 기분 좋게 사서 아이들과 함께 통유리창가로 갔다. 저 멀리 황푸강을 지나는 유람선 불빛이 반짝이고, 바로 앞에 동방명주와 병따개 모양의 건물이 나란히 서 있었다.



핸드폰 렌즈에 담는 사진과 영상은 역시 실사를 따라잡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 순간을 잡아두는 일이 나중에 이 순간을 기억하는 봇물이 되어주는 것을 알기에 화질에 신경 쓰지 않고 연신 카메라 화면을 눌렀다. 분명 인간이 만든 조명인데 자연의 빛 같은 아름다움이 오묘했다.



여기까지는 계획한 대로, 딱 그만큼 행복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다.



한 시간 가까이 야경에 푹 빠져 라테를 다 마시고 나니 그제야 책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바퀴 돌아볼 마음으로 카페에서 서점 안으로 다시 들어왔는데, 낯익은 글씨와 얼굴이 보였다.



韓江


한강, 2024 노벨상 수상 작가




노벨상 수상작가 한강을 위한 코너가 서점 한가운데 마련되어 있었다. 야경 볼 생각에 한강작가의 책이 이곳에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조차 하지 않은 나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현지인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중국에 동방의 빛나는 구슬 동방명주가 있다면, 한국엔 과거와 현재에 빛을 드리운 보석, 한강 작가가 있다.



중국인들에게 한강 작가의 글이 어떻게 읽힐까, 어떤 부분이 그들에게 가 닿을까 궁금했다. 책 표지부터 살폈다. 인물보다 안개꽃이나 바다처럼 사물과 배경을 부각했던 한국 초기 원서에 비해 흐릿한 인물에 서정적인 배경이 주를 이뤘다. 제목은 원서의 제목을 그대로 살렸다. 영어 원서도 그랬듯 중국어 번역은 과연 '소년이 온다'에서 엄마가 독백으로 이야기하는 사투리 장면을 어떻게 살렸을까 궁금해하며 알지도 못하는 중국어 글씨를 눈으로 한참 만지작거렸다.




엄마, 잠깐만 이리 와 봐요. 진짜 대박인 거 있어요!


산통 깨는 데 선수인 아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한강작가의 품에서 나를 떼어냈다. 아 맞다. 나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었지. 현실로 돌아와 아들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디즈니 용품 코너였다. 갑자기 구름 서점에 대한 산통도 다 깨졌다. 서점에 얄밉게 디즈니 코너라니, 엄마 아빠 지갑을 털어가는 강도 같은 코너인 줄 알면서 일단 아들의 센스를 믿어 보기로 했다.





아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끝에 인형처럼 생긴 커다란 베개들이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안 사주고는 못 배길걸 하는 표정으로 나와 시선이 마주친 인형은 다름 아닌 '릴로 앤 스티치'에 나오는 스티치였다.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보진 않았지만 일명 동영상 짤로 하도 보아서 누구인지는 알았다. 물론 매번 누가 릴로고 누가 스티치냐고 묻는 나였지만 하와이 훌라 지도자 입장에서 이 인형처럼 생긴 베개를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아들은 꿰뚫고 있었다. 예리한 녀석.



3만 원 가까이 되는 가격이 부담되긴 했지만 스티치니까, 상해니까. (사실 거기서 나는 아들몰래 2만원짜리 자석을 샀다) 게다가 막상 사고 보니 눈가리개까지 되고 쿠션이 제법 푹신해서 꽤 유용했다. 특히 다음날 디즈니에서 이 베개인형은 그야말로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며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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