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론은 사랑
이번 상하이 디즈니월드에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하나 있었다. 트론. 상하이 디즈니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오토바이 어트랙션. 대기 시간이 길 거라는 정보를 듣고 도착하자마자 트론 쪽으로 달려갔다. 아들의 손을 잡고 들어선 트론 입구 앞에 도착하자 대기 시간 45분. 예상보다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막상 줄을 서고 나니 겁이 나기 시작했다.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배도 아픈 것 같았다.
“엄마, 나랑 같이 탈 거지?"
“아, 미안한데 엄마는 도저히 안 되겠다. 찬찬 너 혼자 타. 대신 엄마가 같이 줄 서줄게”
“싫어. 엄마랑 꼭 같이 타고 싶어! 엄마, 딱 한 번만 같이 타자, 응? 응?"
아들의 간절한 요청에 눈물을 머금고 어쩔 수 없이 같이 타기로 했다. 놀이동산에 온 것도 10년 만인데, 그것도 이렇게 스피드 있는 놀이기구를 탄 건 거의 20년 만이었다. 스키나 보드처럼 속도를 즐기는 스포츠를 싫어하는 내가 오토바이 어트랙션이라니, 그것도 엎드려서 타는 놀이기구라니, 정말 울고 싶었다.
어느새 운명의 45분이 지나고, 드디어 앞서 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공간에 도착했다. 발아래로 번개처럼 출발하는 라이더들이 보였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려운 만큼 기대도 커졌다. 어쩌면 무섭지 않고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래, 아들 같은 초등학생도 타는 건데, 생각보다 무섭지 않을 거야.’ 마지막으로 내 두려움을 한번 더 단속하고 드디어 탑승 구역에 들어섰다.
3, 2, 1 카운트다운이 울리자, 우리는 번개처럼 어둠 속으로 달려 나갔다. 새총에 걸린 돌멩이가 되어 공중으로 날려 보내지는 기분이었다.
눈을 뜨고 싶지만 무서움에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스피드, 불빛, 바람이 합쳐져 온몸이 쭈뼛 섰다. 하지만 거의 도착할 때쯤, 후회가 밀려왔다.
‘뭐야, 이거 너무 재밌잖아! 눈을 계속 뜨고 즐길걸.’
트론에서 내리며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른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엄마, 우리 한 번 더 타자! 나 이번엔 소리 안 지를 거야.”
“좋았어, 나도 이번엔 눈 안 감고 탈 거야!”
그렇게 우리는 다시 트론으로 향했다. 이번엔 대기 시간 1시간 10분. 하지만 저녁 예약까지 여유가 있어 느긋한 마음으로 줄을 섰다. 기다리는 동안 처음 느꼈던 두려움은 사라지고, 설렘과 흥분만 남았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데 바로 뒤에서 한국인 커플의 대화가 들려왔다.
“나 정말 못 타. 너 혼자 타.”
“생각보다 안 무섭다니까? 오빠, 한 번만 같이 타자.”
여자의 애교 섞인 설득은 점점 더 애절해졌지만 남자는 타지 않겠다고 버텼다.
찬희와 나는 서로 눈이 마주쳤고, 어쩐지 오지랖이 발동했다.
“이거 진짜 재밌는데! 저희도 두 번째 타는 거예요.”
내 말에 여자는 반색하며 남자를 바라봤지만, 결국 남자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여자는 실망한 표정으로 직원에게 나가는 길을 물어보고, 혼자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잠시 어색하고 안타까운 공기가 흐르고 우리도 옆에 도착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말한 대로 이번엔 아들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경험자답게 온몸으로 속도와 스릴을 만끽했다. 트론을 나오며 아들에게 속삭였다.
“넌 나중에 여자친구가 생기면 아무리 무서워도 꼭 같이 타줘. 엄마도 무서웠는데 같이 타줬잖아. 그렇지?”
“응. 나도 여자친구랑 꼭 같이 탈게. 그리고 손도 잡아줄게.”
잠깐, 아들의 대답에 갑자기 빈정이 상했다.
“뭐야? 엄마 손은 안 잡아주더니 여자친구 손은 잡아준다고?”
“엄마, 쫌."
그 순간 디즈니 성에 환한 불빛이 켜지고, 밤하늘에 레이저가 그리는 그림에 맞춰 디즈니 음악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아들과 방금 대화의 화해기념으로 지나가는 중국인에게 부탁해 사진을 찍고 드디어 출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발이 퉁퉁 부어 걸을 때마다 아팠지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훠궈와 고량주를 생각하며 꾹 참았다. 아들은 디디에 올라타자마자 기절했고 나는 핸드폰에 담긴 사진을 보며 어느새 발의 통증을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