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가리타에서 황푸강 한 잔?

상해 최애 스폿, 빈강대도

by 실버라이닝

지하철을 타고 동방명주와 상하이 타워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건물들 사이로 육교들이 공중에 사방으로 뻗어 우주도시를 연상케 했다. 뜻을 몰라도 보자마자 동방의 구슬을 뜻한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동방명주는 차가운 회색 도시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질 것 같기도, 보고 싶은 사람을 구슬에 비춰 보여줄 것 같기도 했다. 동그란 구가 주는 안정감과 역동감, 보라색이 주는 신비로움에 매료되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슴이 탁 트이는 것도 잠시, 이 풍경을 카메라로 담아야 한다는 강박이 몰려왔다. 우리를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연말을 즐기려는 현지인들이 가득 찼지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포토 스폿을 찾아 두 다리를 굳게 세우고 흔들림 없이 포즈를 취했다.




엄마, 여기 인스타샷 각이야!

올려다보는 각도로 나를 찍겠다고 아들이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너는 지금 한국의 얼굴이야. 네가 BTS라고! 얼른 일어낫!

우리 아무리 신기하고 멋있는 풍경에 놀라도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잊지 말자며 한바탕 잔소리를 하고는 아들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순간, 너무 교양 없었나 싶었다. 우리 둘 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 버렸다. 그렇게 난리를 치며 찍은 사진들 수십 장은 결국 한국에 돌아와서 전부 삭제각이었지만 찍는 순간의 즐거운 기억이 남았으니 되었다.


아들을 진정시키고 우주도시 같은 이곳을 한 바퀴 돌아본 후 황푸강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여행에 오기 전 사진으로 본 풍경은 한강의 모습과 거의 흡사했다. 그런데 황푸강에 도착하자마자 귓가에 중국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음악에서 중국의 향기가 났다. 그러자 어렸을 때 한참 빠져 보던 홍콩영화들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여인을 뒤에 태우고 코피를 닦으며 오토바이를 달리던 유덕화의 눈물이. 아름답게 외로웠던 장국영의 눈빛이. 현지인들 곁에 앉아 함께 음악을 들으며 잠시 앉아 있었다. 오후 2시경.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구름이 끼었던 겨울. 그 10분은 오래도록 날씨와 풍경과 사람과 음악이 함께 할 것이다.



빈강대도를 따라 걸으며 맞은편 와이탄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한강과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뭐든 탁 트이고 넓었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공간이 더 넓었기에 상대적으로 비좁게 느껴지는 곳이 없었다. 오래전 무역의 중심지였던 곳이었던 덕분에 건너편의 건물들은 각자 나라들이 가진 특유의 건축양식을 대표하고 있었다. 두바이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스카이 라인이 떠올랐다. 몇 해 전 두바이여행에서 알게 된 지식으로는 두바이에는 새로운 건물이 지어질 때 이전의 디자인과 같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고 했다. 그런 건축 규율 덕분에 건물을 보는 재미가 있고 공간이 주는 자유와 행복이 있었다. 황푸강 건너편의 건물들도 바라보는 것만으로 상상과 자유와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저녁에 다시 오자며 맞은편 건물들의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엄청난 규모의 배들이 지나갔다. 한강의 유람선처럼 관광객을 태운 배인 줄 알았는데 출퇴근하는 현지인들의 교통수단이라고 했다. 배 안에서 사람들이 우리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양팔을 번쩍 들어 흔들며 화답했다. 유람선을 타고 출근하는 회사라니. 열정 페이라고 해도 한 번쯤은 다녀보고 싶다.



저녁이 되어 다시 찾은 황푸강과 와이탄에 불이 들어왔다. 낮에 본 풍경이 초록 트리라면 밤에 보는 와이탄은 조명이 켜진 트리였다. 노랑과 하양의 불빛을 기본으로 빨강, 보라, 초록, 파랑이 아름답게 반짝였다.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어딘지 조명에서 재즈 연주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그때 진짜 재즈 음악이 들렸다. 빈강대도를 따라 펼쳐진 레스토랑들도 저녁이 되자 더욱 생기를 띄었다. 낮에는 햄버거 집과 스타벅스에 사람들이 가득 찼다면 밤이 되자 펍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실외 테이블에도 무릎담요를 덮은 사람들이 난로 곁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있어 실내로 자리를 잡았다. 통유리 인테리어 덕에 황푸강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에게 조각케이크와 주스를 시켜주고 친구와 나는 마가리타를 한 병씩 시켰다.



웨이터가 와서 파란 통에 담긴 칵테일을 흔들었다. 신기하다는 듯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들이 웨이터가 자리를 떠난 후 곧바로 칵테일 병을 집어 들었다.


엄마, 내가 해줄게!

어설프게 팔을 흔들던 아들의 손 사이로 마가리타가 흘러내렸다.


야! 이 피보다 귀한 술을!

앗, 술 앞에서 다시 교양 없는 모습이 튀어나왔다. 자중하며 우아하게 아들의 손을 꽉 잡고 칵테일 병을 빼앗았다. 바닥에 흘린 마가리타가 아까워 화가 부글부글 나지만 여행이니까 참는다는 눈빛으로 아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민망해하는 아들에게 마가리타를 한 모금 맛보라고 건네줬다. 손사래를 치던 아들은 궁금했는지 그럼 딱 한 입만 먹어보겠다며 잔 가장자리에 입을 댔다.


우웩! 술에서 왜 짠맛이 나?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맛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다시 한 입만 먹어보겠다고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아들의 호기심만 자극해 놓고 멈춰버리는 나쁜 엄마는 친구와 두 병을 모두 비우고 기분 좋게 취해 추운 줄도 모르고 황푸강에서 또 한참을 인스타샷을 찍었다. 아이들이 너무 춥다고 가자고 재촉한 덕에 서둘러 디디를 탔다. 생각해 보면 그 덕분에 감기에 걸리지 않은 것도 같다.


몰디브에서 모히또라면

황푸강에서는 마가리타


마가리타에서 황푸강 한 잔?

keyword
이전 04화마라탕 덕후의 성지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