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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모델하우스

신천지

by 실버라이닝

신천.. 지? 이름이 참 별로네.


사이비 종교의 대명사이자, 코로나 확산의 근원지인 신천지라니. 당연히 관련이 없는 줄 알면서도 잠시 거부감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죽을 사(死)와 소리가 같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에서 F로 바뀌어야 했던 숫자 4의 억울함을 떠올리며 편견 없는 가벼운 마음으로 디디에 올라탔다.



이곳의 신천지는 '새로운 하늘과 땅'을 뜻했다. 어두운 밤, 신천지는 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고풍스러운 중국 건축 양식에 현대적인 세련미를 더한 건물들은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했다. 기대가 낮아서였을까, 도착하고 첫 감상은 새로운 세상이라기보다 현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미리 보여주는 천국의 모델하우스 같았다. 아름다운 야경, 곳곳에 흐르는 물, 아기자기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다리와 현대와 과거, 미래가 조합된 건물들은 애니메이션 영화, 그중에서도 주인공이 꾸는 꿈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게 했다. 한국으로 치자면 익선동 거리 같기도, 경주의 황리단길 같기도 했다.



한 바퀴 돌고 핫하다는 딤섬 집으로 향했다. 역시나 대기가 있어 연락처를 적고 기다렸다. 예상 소요시간은 20분. 하지만 우리 같은 관광객에겐 대기시간은 근처 샵을 구경하는 시간일 뿐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바로 옆 차를 파는 곳으로 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올 법한 토끼가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건물의 2층높이만큼 큰 토끼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얼른 들어오세요! 혹시, 이상한 일이 생겨도 놀라지 마시고요!



들어서자마자 황금빛깔 테두리를 두른 찻잔들이 합리화를 시작하며 내 소비욕망에 부채질을 시작했다.


내가 또 언제 상하이에 오겠어? 이건 상하이에 밖에 없는 거라고. 나중에 사려면 구하기도 어렵고 더 비쌀 거고. 나를 위해 이 정도는 써야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왔던 것 같은 여왕그림이 그려진 찻잔과 양복을 입은 작은 토끼가 책을 읽고 있는 액세서리가 달린 찻가루 통, 발레리나 귀걸이를 골라 계산대로 가는데 아들 손이 쓱 끼어든다. 어느새 줄넘기 여자 사범님 두 분께 드릴 거울을 골라 계산대에 올려놓는 녀석. 그래, 이런 것쯤은 선물하는 제자가 되어야지, 암. 넌 역시 내 아들이야! 시원하게 플렉스를 하고 나니 어느새 딤섬가게에서 메시지가 와 있다. 다음이 우리 순서잖아, 서둘럿!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딤섬을 집어 젓가락으로 콕 찍었다. 국물을 쪽 빨아먹은 아들이 말했다. 역시, 현지의 맛이야! 한국의 잔치 국수와 설렁탕, 대만의 우육면을 섞은 듯한 국수는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이었고, 새우젓처럼 생긴 새우들이 들어있는 뜨끈한 누룽지탕이 여행 첫날 긴장한 뱃속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이제 '신천지'라는 이름은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사이비 종교와 코로나로 진 얼룩을 깨끗이 지우고 반짝이는 조명과 세련된 건물, 비싸고 예쁜 토끼들과 뜨끈한 국물. 그리고 딤섬의 연기가 마지막 장면을 페이드 아웃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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