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은 잉어는 어느새 11살이 되고
퉁퉁한 잉어 한 마리가 하늘에서 툭 떨어진다. 내 두 손으로 받아 든 물고기는 파닥거리다가 이내 차갑게 식어버린다. 주르륵. 죽은 물고기가 바닥으로 흘러내려가는 걸 보고 다시 걷는다. 곧 또 한 마리가 떨어지고 본능적으로 받아 든 손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잉어를 움켜쥔다. 미끄러워 빠져나가려고 하는 녀석을 등을 구부려 끌어안고 있다 꿈에서 깬다.
사고로 동생을 보내고 6개월 만에 둘째를 임신했다. 하루아침에 이모와 이모부, 남동생 사촌 두 명을 잃은 다섯 살 딸아이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실은 내가 소리 없는 집안을 견딜 수 없었다. 일상의 대화를 이어주던 끈이 끊어져버리자 대화 주제를 찾느라 애쓰는 데 시간을 더 많이 보냈다. 죽은 동생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살아 펄떡이는 아기를 돌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남편을 졸라 아이를 가졌지만, 억지로 태어난 아이는 뱃속에서 딱 억지만큼의 생을 살고 내 몸에서 주르륵 흘러내려갔다.
아이를 잃은 날 병원에서 잉어 꿈을 꾸고 퇴원하는 날 남편에게 아이를 다시 갖자고 말했다. 하늘이 나에게 너무 미안해서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지 않을 게 분명하다고, 꿈에서 말해주었다고. 남편은 그렇게 아팠으면서 그걸 또 겪고 싶냐고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래, 일단 몸 추스르고 다시 생각하자며 나를 달랬다.
퇴원과 동시에 산책을 시작으로 등산과 마라톤을 병행하고 보약과 엽산을 챙겨 먹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다시 아이가 찾아왔다. 절대 놓치지 않을거야. 밤마다 등을 구부려 자궁 속 아이를 안았다. 그리고 지난 아이를 잃었던 21주, 초음파 검사를 하는 동안 남편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게 마치 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는 건강하네요. 첫 아이가 딸이라고 했죠? 누나가 잘 돌봐주겠어요.
남동생이라는 소식을 들은 6살 딸은 ‘엄마, 죽은 조카들 대신이라고 생각하고 잘 키우자. 이번엔 절대 내 동생 죽으면 안 돼.’ 하며 내 손을 붙잡고 연신 누우라고, 물 마시고 싶냐고, 말만 하라며 시중을 들었다. 누나의 정성과 기도로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는 슬픔에 졸여진 가족의 삶을 미지근한 웃음으로 묽게 개어 주었다. 맑을 찬, 기쁠 희. 이름에 맑다는 뜻을 넣어서일까. 잉어 같은 아이는 말라붙어 지저분한 연못에 매일 맑은 물을 채워 주었다. 우리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어느새 녀석의 11번째 생일이다. 줄넘기와 랩을 좋아하는 사춘기 5학년. 주말에 수학학원 숙제 다 해놨다고 해놓고 이제 와 깜빡했다며 밤 열 시에 책을 편다. 찌릿. 뒤통수 한 대, 차분히 훈계를 시작해 보지만 욕이 반이다. 미친 거 아니야? 고등학생 누나의 훈계가 더해지고 녀석의 수학 노트엔 눈물이 뚝 떨어진다. 수학 노트에 얼굴을 처박고 밤 열 두시가 다 되어 숙제를 끝내고 잠든 녀석의 생일을 위해 미역을 물에 불리고 이 글을 쓴다. 이 모든 문장이 감사하다. 잉어가, 수학숙제가, 미역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