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경계에 산다
중학교 시절 지루한 여름방학 중 꿈에 영어선생님이 나왔다. 과학시간. 키가 작아 늘 앞자리에 앉던 내가 웬일로 맨 뒷자리에 앉아 있다. 갑자기 뒷문이 스르륵 열리고 복도에 영어 선생님이 서 있다.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며 손짓을 한다. 자세히 들어보니 잠깐만 나와보라고, 할 말이 있다고 한다. 평소에 날 예뻐해 주시던 선생님이라 얼른 일어나 나가려는 찰나, 과학 선생님이 화가 난 표정으로 내 손목을 잡고 당장 자리에 앉으라고 소리를 지른다. 영어 선생님은 계속 속상한 표정으로 빨리 나오라고 손짓을 하고, 중간에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잠에서 깼다.
영어 선생님이 내 생각을 하셨나 보다, 웃으며 넘겼는데 개학 날 영어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방학 중 집에서 뇌졸중으로 쓰려지셨는데 식구들이 아무도 없어서 발견되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고 했다. 돌아가신 날이 내가 선생님 꿈을 꾼 그날이었을까? 선생님이 나에게 인사를 하러 오셨던 걸까? 과학 선생님이 나를 붙잡아주지 않아 선생님을 따라나섰더라면, 혹시 나도 죽을 운명이었을까?
그날 말고도 예지몽이라고 부를 만한 꿈을 자주 꾼다. 돌아가신 아빠가 나타나 웃으며 내 볼에 뽀뽀를 하고 가신 날에는 아빠 이름으로 들어있는 적금형 보험금이 남았다며 500만 원을 받으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가 빠지는 꿈을 꾼 다음 날이면 여지없이 가족과 가까운 친구가 다치거나 죽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자주 생기는 일들. 호기심을 넘어 약간의 두려움이 생겼지만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반복되는 예지몽을 겪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것 같지는 않아 그냥 신기하다는 정도로 넘기며 살았다. 어차피 SF 영화에서처럼 예지몽이 내 미래를 바꾸게 해 준다거나 세상에 예언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꿈들도 아니었으니.
그런데 20대 후반에 지인을 따라 간 한 철학관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에 아주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이란다. 사주에 따르면 내 머리에 물이 많아서 그 물에 영적인 세상을 비춰 볼 수 있고 그게 꿈에 자주 나온다나. 그날은 내가 정신병원에 갈 확률이 높으니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고 살아야 한다는 충고를 받기도 한 날로, 어딘지 이해되지 않는 세상에 대해 마음 한편 내려놓는 데 도움을 받기도 했다. 아무튼 그날 나에 대해 새롭게 정의를 내렸다. 경계에 사는 사람.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있다면 당연히 경계가 있을 터, 내가 사는 곳의 주소는 아마도 그 근처인가 보다, 생각하고 나니 예지몽을 꾸면 이젠 그러려니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저 세상 근처에 사니 소식을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접하는 거고, 누구보다 팔딱이는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왕이면 주식 정보 같은 실속있는 내용이나 행복하고 기쁜 소식을 주는 꿈이 더 자주 와 주었으면 좋겠지만, 그때그때 오는 제철의 꿈을 꿀 수밖에. 꿈 오마카세. 그저 침대에 누워 설렘반 걱정반으로 꿈 서빙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