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의 해몽
내년이면 예고 3학년이 되는 딸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사춘기는 잘 지나갔나요? 나는 늘 대답한다. 글쎄요. 전 딸이 늘 어려워서요. 평생이 사춘기네요.
18년 전, 꿈을 꿨다.
홀로 새하얀 눈밭 위를 걷고 있는데 발아래에 흰 뱀 세 마리가 나타났다. 그중 가운데 있던 녀석이 내 발뒤꿈치를 콕 깨물자 새빨간 피가 맺혔다. 선명한 핏방울이 눈밭에 잉크처럼 똑똑 떨어져 엷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른들이 ‘뱀이면 아들인데 흰 뱀이면 딸‘, ‘뱀이 짝수면 아들인데 홀수면 딸’이라며 깊은 내공과 연륜으로 200퍼센트 확실하다는 예측을 내놓으셨다. 울렁거리는 입덧은 없었지만 고기를 먹기 힘들었다. 대신 참외와 복숭아가 당겨서 종일 두 과일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함께 일하던 원어민들이 자신들의 문화에 태몽이 없어서 꿈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참외를 좋아하는 걸 보니 딸이 분명하다며 여자 아이를 위한 선물을 챙겨주었다.
정확하게 예정일에 태어난 아이는 조용하지만 속에는 단단한 무언가가 차오르고 있었다. 눈빛이 예리하고 귀가 밝아 세상의 감각에 더 많이 기뻐하고 아파했다. 특히 자려고 누우면 떠오르는 온갖 상상은 걱정과 염려로 변질되어 아이를 괴롭혔고 그때부터 잠 못 이루는 밤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사춘기 이후 오랫동안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던 운동을 그만두고 한동안 상실감으로 마음이 힘들었지만 이후 학업과 그림을 그리는 데 몰입했고 어느새 대학 입시를 1년 반 남겨두고 있다.
돌아보면 엄마 입장에서는 예민해서 키우기 힘들었지만 크고 보니 공감력과 직관력을 가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아이는 예술가로 자신의 길을 가고 있고 독립심이 강하며 깊은 사색을 즐긴다. 남편의 계획적인 성향을 물려받은 덕분에 매사에 계산도 확실하다. 모유를 끊을 때부터 내 맘대로 되지 않던 아이는 여전히 자기 주관대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가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들이 나를 깨우고 끊임없이 삶을 스트리밍 하게 해 준다. 그래서 이 아이에게는 ‘키웠다’ 보다 ‘자랐다’가 더 어울린다.
종종 생각한다. 그 뱀 세 마리는 아이 안에 있는 세 가지 재능이었을까. 나를 깨문 뱀은 세상과 싸우면서도 물러서지 않을 타고난 독기를 가진 아이라는 걸까. 빨간 피는 아이가 나를 늘 깨어있게 하는 생명력이 되어줄 거라는 걸까. 아, 한 가지는 확실하다. 깨물린 뒤꿈치는 아이가 나를 유일하게 약자가 되게 하는 존재, 나의 아킬레스건이 될 거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