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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희 Jul 27. 2023

아버지

우리 가족(친정 식구)은 말이 없다. 각자 눈치껏 자신의 역할을 열심히 하고 서로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이 가족윤리였다.


부모는 초등학교 교사로 맞벌이고 삼 남매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한 외할머니는 그 시절 다수가 그랬듯이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하고 평생 까막눈으로 산 사람이었다.


이렇게 가족들이 살갑게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기는커녕 기본적인 말도 하지 않아 종일 나 혼자 떠들어야 했다. 나도 성격상 비사교적이고 말을 많이 하면 진이 빠지는 사람인데, 이런 내가 적막강산인 집안을 바꾸려고 열심히 떠들다 보니 에너지가 방전되어 밖에서 더욱더 말수가 적어진 것 같기도 하다.


여하간 서로 표현을 잘하지 않는 가족들이 노년에 이르렀다.


오늘 아침에 벌어진 에피소드.


아침 8시에 친정으로 출근, 집안을 둘러보고 아버지 아침을 먹여드린다. 아버지는 만 90세로 치매 중증상태다. 약 3년 전부터 대소변 처리를 타인에 의존해 왔고 최근에는 식사를 스스로 못하신다.


엄마와  우리 삼 남매가 돌아가며 아버지 식사 당번을 하고 있다. 숟가락을 조작하는 방법을 잊으신 듯 떠 주는 음식물은 잘 받아서 드신다.  일주일에 한 번 시키는 중국음식 짜장면과 탕수육은 혼자 드시는 것을 보면 아버지가 수저 조작을 못하시는 건 아니고 나도 많이 헷갈린다.


식사 수발을 하다 보면  지루해서 옆에 놓인 아버지 표창패를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아버지 표정이 미묘하게 환해진다. 평생 해보지 않은 표현을 시도해 본다."우리 아버지 정말 미남이세요"라고 하자 활짝 웃으신다.


오늘 아침에는 한 발 더 나아갔다.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던 엄마가 " 찬희 너 힘드니까 내가 아버지 먹일까?"라고 소리치셨는데 아버지가 무슨 소리냐고 물으셨다.  " 엄마가 그 사이 아버지가 보고 싶대요"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어린아이처럼 수줍어하면서 좋아하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직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는 표정이랄까?  그 순간 나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1살 아이가 돼버린 아버지가 희로애락은 그대로 느끼는 상태라면...


이제까지는 아버지를 어떻게 현상태(우리 집)에서 돌볼 것인가만 생각했다.  우리가 아는 아버지가 아닌 몸도 마음도 어린애가 돼버린 다른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틀린 것 같다. 아버지는 도움이 필요한 우리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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