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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김현영 Feb 08. 2022

악플러는 도태되지 않는다

한겨레 세상읽기, 2022.2.7

지난주에 프로배구 선수 김인혁씨와 트위치와 유튜브에서 스트리머로 활동해온 잼미씨의 사망 소식이 잇달아 전해졌다. 둘 다 향년 스물일곱. 죽기 전까지 악플에 시달렸다.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검색을 하면서 든 심정은 참담함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악의적으로, 전혀 상대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사람을 공격할 수가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에게 가해진 악플러들의 공격은 집요하고 악의에 가득 차 있었다. 김인혁씨는 화장한 것처럼 보인다 해서 비난받았고, 바로 그 이유로 게이 혹은 트랜스젠더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당사자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으나 악플러들은 개의치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화장을 하건 하지 않건, 성소수자이건 아니건 애초에 문제 삼을 일 자체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여자가 쇼트커트를 하면 ‘페미’라고 공격받고 남자는 화장을 하면 ‘게이’라고 조롱당한다.


잼미씨는 여초 커뮤니티에서 쓰는 말을 썼다는 이유로 ‘페미’ 단어 검증의 대상이 됐다. 잼미씨를 공격했던 이슈몰이 유튜버들이 스스로 인정했듯이 잼미씨의 페미 몰이는 무리수였다. 별다른 근거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어도 공격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유명인을 헐뜯는 데 특화된 이슈 유튜버들이 주기적으로 문제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이들 이슈 유튜버들은 논란될 일이 아닌 문제를 크게 부풀려서 논란으로 만든 다음, 이슈가 된 유명인들에게 끊임없이 피드백을 요구한다. 상식인이라면 당연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성의 있는 피드백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또다시 악의의 자가발전소를 돌리는 근거가 된다. 이쯤 되면 아무리 피드백을 하고 해명하고 사과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슈를 만들고 유통하고 확대재생산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기각하고 다시 요구하는 과정 자체가 콘텐츠가 되기 때문이다. 미디어 환경이 스트리밍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이용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입맛대로 콘텐츠 운영자를 길들이는 데 용이해졌다. 잼미씨가 악플 때문에 회복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은 이유는 특정한 단어를 썼기 때문이 아니라, 대형기획사 소속도 아니고 따로 미디어 관리를 받는 것도 아니며 코어 팬덤이 확실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아 이용자들에게 휘둘리기 쉬운 취약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2019년 설리씨 사망 이후 20대 국회에서 악플방지법이 발의되었으나 입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사이트 운영자에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보의 유통을 막을 의무를 지우는 방안이나 인터넷 준실명제의 실시 등이 당시 제안된 법안의 내용이었는데, 악플방지법이 만들어졌다고 한들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운영자의 책임성을 강화한다고 해도 한국의 관련 법 영향을 받지 않는 사이트는 규제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악플 규제가 아예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네이버 연예뉴스에 댓글 기능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고 말하는 연예인들이 많다. 댓글 관리를 언론사별로 운영할 수 있도록 변화하면서 해당 기사를 생산한 언론사들의 책임이 강화된 것도 중요한 변화다. 개인적으로는 악플방지법 같은 법적 규제보다는 이렇게 영역별로 책임성이 분명해지는 편이 더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유튜브다. 유튜브의 경우 선정성, 폭력성, 극단주의, 혐오 조장 등의 문제 내용이 발견되면 노란 딱지를 붙여 광고제한을 하거나 이용자들의 신고가 누적되면 채널을 삭제하는 등의 조처를 하는데, 이미 덩치가 커진 악성 이슈 유튜버들을 규제하기에는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이들은 광고제한 조치를 슈퍼챗과 유료 멤버십을 통해 해결하고, 사용자들의 신고로 채널이 영구정지되더라도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이전의 구독자 수를 빠르게 복구한다. 이런데도 아직 건강한 공론장에서 악플러들이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악플러는 도태되지 않는다. 그 대신 공론장 자체가 사라졌고,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악성 이슈 유튜버들을 신고하고, 이들을 후원하고 구독하는 시민들에게 공모를 그만두라고 소리 높여 말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 표현의 자유는 억압당하고 차별받는 자들, 존재가 지워진 자들에 대한 악의를 마음껏 드러낼 권리가 아니다. 이것은 그저 해악 그 자체일 뿐이다.


악플러는 도태되지 않는다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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