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8
블랜더는 꽤나 강력한 툴이다. 나는 약 3년 전부터 알게 되었다. 내가 블랜더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과 업계에서 블랜더가 왜 필요한지 내 관점에서 블랜더의 유용함을 이야기해본다
무료다
건축에서 쓰는 대다수의 프로그램은 유료다. 그게 교육용으로 저렴하게 나오든 상업용으로 돈을 주든 어쨌든 돈을 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의 부끄러운 대학시절엔 선후배 간 전통으로 그러한 프로그램의 크랙을 깔아 쓰는 것이 국룰이었다. 그 덕에 검색 능력은 정말 월등히 높아지긴 했지만.
3D작업 도구 중 강력한 성능을 내면서 무료인 프로그램은 내가 아는 선에선 블랜더가 유일하다. 사실 무료라고만 하면 안 쓸 사람도 분명히 있다. 무료인데 기능이 구리다면 사실 돈을 주고 프로그램을 사는 게 맞기 때문이다. 내가 잠깐 배우고 자료를 보면서 느낀 블랜더의 강점은 아래와 같다
유체 시뮬레이션이 꽤나 강력해 보인다
지난 글에서 Computer Fluid Dynamic(CFD)에 대해서 논한 적이 있다. CFD를 돌리기 위해선 해박한 지식이 필요하고 엄청난 컴퓨터 자원이 필요하다. 건축 수준에서 CFD를 아주 전문적으로 안 하고 간이로 해보는 경우도 있다. 가령 나의 과거 프로젝트에서 Grasshopper의 Kangaroo를 통해 비가 오는 경우, 유체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해본 적이 있다.
근데 몇몇 블랜더 예제를 보니, 물이 흐르는 효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게 빗방울이 아니라는 게 다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부분적으로 건물에 비가 어떻게 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는 보였다.
랜더링은 꽤나 강력하다
물론 난 랜더링 전문가는 아니다. 그래도 재료를 입히고 Bump map이니, Displayment map이니 하는 것 등등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은 있는 정도이다. 랜더링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각 객체에 재료를 제대로 입히는 것이다. 나의 야매 지식엔 이를 UV 매핑이라고 한다. UV라고 하는 것은 각 지오메트리의 고유 좌표계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아는 위경도 좌표계도 일종의 UV 좌표라고 할 수 있다.
이 UV매핑에 통달하면 벽을 하나의 면으로 만든 후 마법처럼 벽돌의 조합처럼 보이도록 랜더링 할 수 있는 등 컴퓨터 그래픽에선 상당히 중요한 기술이다. 돈 내고 쓰는 Rhino와 Revit의 경우 이러한 UV값을 거의 만질 수없다. 그래서 대부분 기초 랜더링을 돌린 후 포토샵으로 입히곤 했다. 요즘엔 세상이 좋아져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할 것 같지만.
블랜더에서 랜더링을 해보고 강의를 들어본 결과, 랜더링 부분은 상당히 강력하다. 특히 UV를 다루는 면에서 훌륭하기 때문에 재료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모든 장인정신의 결과물은 한 픽셀까지 다룰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오는데, 블랜더를 통해서 이런 내용까지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3D 애니메이션 기능은 정적인 건축물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든다
나는 건축 엔지니어링을 위한 모델링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래스호퍼만 있다면 그 어떤 크기의 건축물이라도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 내가 만든 결과물은 대부분 공학적이다. 그래서 이러한 작업물을 프로모션 용으로 쓰기 위한 상당한 후가공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현장에 제작하기 적합한 형태의 데이터가 프로모션 영상 등을 위한 3D 재료로는 다소 부족한 것이다. 그중 내가 관심이 있던 영역 중 하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건축에서 애니메이션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건축업이 돈을 벌지 못하는 이유는 나는 해당 결과를 위해 만든 데이터의 대부분이 버려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자동차 업계의 경우 하나의 제품-그게 엔진이거나 볼트 거나-을 머리 빠지게 고민하면 해당 제품을 몇 년에 걸쳐 수백 수천만 개를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건축의 경우 빠지게 고민해서 한번 쓴 후 다시 쓸 수가 없다. 그 대가로 한 번에 큰돈을 받는 구조인데, 건물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돈에 비하면 상당히 미미하다.
나는 꼭 애니메이션이 아니더라도 건축에서 쓰인 여러 데이터들이 유의미하게 다시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중 하나가 건축물과 관련된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해서 이야기를 해보았다. 어쨌든 블랜더가 있다면 시공과정을 좀 더 재밌게 풀어낸 영상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창출하 수 있고 아니면 하다못해 모델을 잘 남겨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프로젝션 매핑처럼 또 다른 무언갈 만들어 낼 수 있다.
확장성이 있는 블랜더를 배우는 건 어떨까
학교 교수님 중 블랜더를 가르치는 사람은 1%도 안되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프로그램을 알려주는 사람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 내가 만약 학부로 돌아간다면 블랜더를 배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이 좀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많은 가능성이라 함은 3D 모델을 단순히 실제 시공의 보조 도구로 만드는 건축업으로서의 3D 모델링이 아닌, 그 고유의 가친 3D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복잡한 말을 풀어쓰면 이렇다.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그 자체의 고유한 결과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CAD / CAM 분야의 3D 모델은 현실세계의 그것을 그대로 복제하지 못하면 열등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현실의 제품과 가상의 3D를 잇는 방식의 모델링은 근본적으로 이런 한계를 지닌다.
나는 Geometry라고 하고 흔히 컴퓨터 그래픽이라고 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이런 것들이 독립적인 가치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만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영역이 있어야 하고, 그중 하나가 3D 애니메이션이나, 프로젝션 매핑과 같은 분야라고 생각한다. 나의 장황한 생각에 동의한다면 블랜더를 배우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