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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시루 May 28. 2024

사별담4

아빠는 나를 왜 때렸을까?

병원 대기실에서 갑자기 둘째가 툭 묻는다.

"아빠는 나를 왜 때렸을까?"

감기 기운이 있다며 조퇴한 이 상황에 갑자기 왜?

예상치 못한 질문에 말을 고르는 사이 아이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그때 있잖아. 책으로 막 때렸는데, 한 시간쯤 맞았을 걸."

운다. 웬만하면 울지 않는 내 아이가 운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셋 중 둘째로 태어난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좀 달랐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자기 취향이 확고했으며, 그만큼 고집도 셌다. 그러한 아이 특성을 나는 잘 알고 있었지만, 남편은 그러질 못했다.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그 순간을 참지 못했다. 결국 남편은 딸아이에게 몇 번 손찌검을 했다. 이후 아이는 남편을 무서워하고 노골적으로 피했다. 유난히 더 부산스러워졌으며,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했다. 담임선생님께서 종합심리검사를 권유했다. 결과는 ADHD와 불안장애.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스트레스와 언제 버럭 할지 모르는 아빠, 두 가지 요인으로 불안증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교과서적인 모습의 아이를 바랐다. 아이는 기준에서 자꾸 어긋났다. 남편 심기를 건드렸다. 손찌검, 혹은 고함이 따라 나왔다.


 병원 진료를 마친 후 햄버거 가게에 마주 앉았다. 햄버거는 얼마 먹지도 못하고 아이가 같은 질문을 꺼냈다.

 "아빠는 나를 왜 때렸어?"

 내가 행한 것이 아니기에, 뭐라 말해줘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우선 1시간씩 맞은 일은 없으며, 때렸을 때 엄마가 항상 말렸다고 기억을 정정해 주었다. 하긴 1시간을 맞든, 1분을 맞든 아이에게 공포스럽고 억울했던 기억임에는 변화가 없겠지.

 "아, 그러니까 왜 때렸냐고."

 "아마... 못 참았던 것 같아."

 어렵게 찾은 답.


 아이러니하게도 세 아이중 남편이 제일 예뻐했던 아이는 둘째다. 낯을 심하게 가렸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제법 아빠에게 가 안겼으니까. 이 얘길 했더니 단박에

 "어디가? 아닐걸? 난 그렇게 못 느꼈는데!"

 하며 눈썹사이를 찡그린다.

 아, 이것 참 안타깝네. 그렇게 예뻐했던 딸아이에게 남편이 줬던 사랑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았다.

 

누군가 그랬다.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걸 해 주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걸 해주는 거"라고.

 아이가 원했던 무얼까? 원하지 않았던 건?


 "네가 햄버가 너무 먹고 싶어서 햄버거를 사달라고 했어. 그런데 아빠는 '소고기가 더 맛있어'하며 소고기를 사준거지. 소고기가 훨씬 비싸긴 하거든. 그러니 아빠는 너에게 사랑을 더 줬다고 생각하지만, 너는 사랑을 못 받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이가 알듯 말듯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린다.

 "고양이 데리고 온 것도 큰 결심한 거야. 아빠 고양이 엄청 싫어했거든. 근데 네가 길고양이를 너무 좋아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리고 온 거야. 네가 좋아하니까."

 이제 좀 수긍이 됐는지, 아이 눈에 힘이 풀렸다.


 언젠가 이렇게 멀어진 부녀사이가 안타까워 아이에게 물었다.

 "네가 잘못하긴 했지만, 때린 건 아빠가 잘못한 거야. 만약 아빠가 사과한다면 아빠랑 다시 잘 지낼 수 있을까?"

 아이는 고맙게도 고개를 끄덕여줬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 아이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과를 거부했다. 더더 사이는 벌어졌다. 아이는 아빠가 식탁 옆자리에 앉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아빠가 식탁에 앉아 있으면 맨밥만 흡입하듯 먹고 일어섰다.


그런 아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젠 사과를 영영 받을 수 없다.

아이에게 아빠가 때린 건 잘못한 거라고, 아마도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라 어른이 사과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아빠 어릴 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코 푸는 횟수가 줄어든다.

어느새 아이는 학교 이야기로, 다가올 실기대회 이야기로 가있다. 햄버거도 거의 다 먹었다.

 "그런데... 엄마가 너 좋아하는 건 알지?"

 아이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거면 됐다.

 이 세상에 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

그걸 알면 됐어.

 딸, 특이하고 사랑스러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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