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면 전날 마무리한 작업을 확인한다. 세상이 아이들로 점령당하기 전에 잠깐이지만 바라본다. 알록달록 채워진 면, 구불구불 미숙하게 이어진 선이 만족스럽다. 포만감 같은 것이랄까. 이렇게 그림을 바라보면, 이른 아침 공복임에도 배가 부르다. 뿌듯한 기분, 어쩐지 더 그리고 싶은 기분을 만끽한다. 더 하고 싶어지는 마음은 귀하다. 기운이 금방 소진되는 나 같은 사람에겐 더더욱. 이렇게 전날의 여운을 먹으면 다음 작업을 떠올릴 수 있다. 지금을 이어가기 위한 일종의 작은 의식이 된다.
기억이 나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그림을 그렸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종이를 채우는 건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17년을 지낸 사우디 아라비아라는 나라는 여성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제한적이다. 마트에 가는 것도 쇼핑을 가는 것도 몇십 분 거리를 차를 타고 달리고 온 가족이 일부러 시간을 맞춰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그랬다. 문방구며 편의점이며 뭐든지 손 닿는 거리에 있는 이곳과는 달랐다. 티브이에 등장하는 각종 이쁜 것들은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자급자족을 시작했다. 인형이 없으면 바느질해 만들고 만화책이 없으면 종이를 엮어 이야기를 그렸다. 그림은 내 안에 욕망 같은 것이어서 배고프면 먹듯이 갖고 싶어 그렸다.
하지만 누구나 인생 어느 부분에선 멈춘다. 학교에서는 학점을 얻기 위해, 사회에 나가서는 돈을 벌기 위해 이어지던 작업은 본질적인 질문에서 머뭇거렸다. 나는, 왜 그리고 있는 것일까. 지금 내가 그리는 그림이 맞는 것인가. 아니 그것보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다섯 살 아이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시작한 그림은 십 대의 마음, 이십 대의 마음을 거치며 방황했다. 적당하게 내린 답은 욕구가 변할 때마다 질문으로 둔갑하길 반복했다. 공모전이 당선되고 그림을 봐줄 작가님과 편집팀도, 새로운 기회도 생겼지만 방황은 여전했다. 그분이 말했다.
'이걸 보니 떠오르는데, 자네는 이것저것 화려한 짐을 가득 실은 바다에 가만히 떠 있는 배 같구먼.'
일주일의 텀을 두고 가져간 더미와 스케치는 번번이 퇴짜 맞았다. 기한이 1년, 그리고 2년이 되자 출판은 흐지부지 되고 없던 이야기가 되었다. 이후 아이를 낳고 놓친 곳에서부터 다시 손을 데 보았지만 그것도 역시 통하지 못했다. 그제야 밀어붙이던 작업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아이를 낳고, 작업을 새로이 시작했다는 분을 많이 만난다. 출산으로 목숨을 내놓아보면 세상이 뒤바뀌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리라. 출산 전의 나는 뉴스 속 사건도, 사고도, 갈등도 먼 나라 이야기였다. 화면 너머 모르는 누군가에게 마음이 움직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내 안에 불을 잠재우기 위해 글을 적었던 건, 육아로 인해 전쟁과 사랑을 오가는 하루를 치르고 난 뒤 더더욱 또렷해지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육아 7년 차, 어딘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던 어느 날 연필을 다시 잡았을 때, 처음으로 내 그림을 마주 보았다.
작가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목적없는 항해를 했을지도 모른다. 한데 나는 달리 생각하고 싶다. 그저 내 때가 아니었다고. 지금이 나의 시간이라고. 그렇기에 적을 수 있을 때 적고 그리고 싶을 때 그려야 한다고. 그런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 기운이 들어와 있는 사람은, 아이의 열이 팔팔 끓어도 낮은 불에 의지해 쓰고, 새벽 다섯 시에도 눈이 떠지며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초인적인 힘이 도와주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작업이 이어지지 않는 안타까움을 기억한다. 그건 너의 탓이 아니야- 당시로 시간 여행을 갈 수 있다면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단지 지금은 너의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야. 자책하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휘청거려도, 네 길을 잃지 마. 목적은 바뀌어도 네가 좋아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으니까.
지친 몸이 회복하면 가장 먼저 입맛이 돌아온다. 먹고 싶은 것이 생기고 그 생각이 구체적이게 되면서 다른 욕구도 떠오른다. 목적지 없는 항해로 지칠 무렵 작은 등대를 발견하고 마음의 불이 반짝 들어왔을 때, 식욕처럼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요리하고 싶은 그림이 떠올랐다.
드라마 '오센'에는 전통과 격식을 유지하며 요정을 운영하는 여주인이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알려지고 지고지순 작은 무리를 위해 요리하던 그녀가 요리경연에 참가하자 대중은 비웃는다. 손쉬운 요리와 각종 패스트푸드가 만연한 시대에 재료 하나 하나를 꼼꼼히 따지는 그녀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일 뿐이다. 옆 경연자의 화려한 등장과 언변이 방청객의 호응을 얻는 와중에 이 여주인은 등을 구부려 세상 행복하게 자신의 요리에만 열중한다. 시간이 느려지고 소리가 잦아든다. 조골 조골 국 끓는 소리, 또각또각 도마에 닿는 칼자국 소리가 극대화되며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물기 시작한다.
작업하다 다른 감정이 일거든, 주변이 시끄럽거든, 입맛을 잃거든, 세상 단순한 진심 한 스푼을 덜어 첨가한다. 지금 이 그림 한점 그리는 동안만큼은 내가 가진 정성을 쏟는다고. 시간을 들여 종이를 고르고 연필을 다듬는다. 그리고 오센이 하듯 나의 그림에도 주문을 외운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