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있겠지. 이런 생각이나 하며 연휴를 보내던 행사를 좋아하지 않던 아이는 행사에 연연하지 않는 어른으로 컸다. 명절의 들뜬 풍경보다 다른 이면에 눈길이 갔다. 그걸 준비하는 손길에. 어쩌면 관계를 돈독하게 다듬기 더없이 좋은 날에 그것을 향유하는 부류와 마련하는 부류로 나뉘는 광경은 어린 나이가 보기에도 기묘했다. 요즘에도 과한 준비와 노동으로 여전히 쉼과 힘듦을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운전이든, 음식 장만이든, 장소 섭외나 제공이든, 역할이 주어진 사람들에겐 크고 작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연휴는 어른이 된 이후 가장 귀찮은 날이 되었다.
원래는 조부모님이 계신 대구에 가야 했다. 가면 일주일 정도 머물며 시간을 보낸다. 메종 잔재미네는 지금껏 프리랜서였던지라 비교적 편안하게 명절인파를 피해 움직여 왔지만 남편이 새롭게 취직하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다른 이들과 똑같이 움직여야 했다. 물론 교통체증을 견딜만한 멘탈이 우리에겐 없었기에 이번 명절은 남쪽 대신 북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찾은 임진각엔 놀이동산이 있었다. 엄청나게 큰 바이킹과 메리 고 라운드 등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간단하게 산책하려고 왔건만, 놀이기구를 본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기권을 끊고 키가 작은 둘째의 취향에 맞춰 놀이기구를 탔다. 20년이 넘은 놀이기구라선지 (임진각 놀이공원은 2001년에 개장했다) 부품이 삐걱거리고 낡아 보였다. 번개 기차라는 이름을 가진 애벌레는 레일 구조가 너무 가늘고 눈에 보일정도로 흔들려 솔직한 마음으론 그만 타게 하고 싶었다. 꽤나 무서워보였는데 그래서인지 두 아이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올라탔다. 계획하지 않은 하루, 우연히 들른 임진각에서 아이 둘이 손을 잡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탈것을 고르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햇살에 달궈진 놀이기구처럼 따끈해졌다.
오후가 되자 인파가 몰리기 시작해 넓은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겨울이 끝나길 기다리는 노란 잔디밭에 하나 둘 연을 날리기 위해 모여들고 있었다. 둘째의 요청으로 올해는 직접 연을 사서 날려보기로 했다. 알고 보니 연 판매소가 따로 있다. 해마다 이곳에서 연날리기 등 명절 행사를 했나 보다. 빛바랜 사진 속 사람들이 마스크 없이 전통복을 입은 채 즐겁게 명절놀이를 하고 있다.
드문 드문 바람이 부는, 햇빛이 강한 날이었다. 눈이 부신지 연신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아이들은 실을 놓지 않았다. 고사리 손으로 얼레를 당겼다 풀어줬다 밀당을 하며 둘째가 고른 물고기연이 파란 허공에서 퍼덕거릴 때마다 행여나 떨어질까 비명을 질렀다. 연이 날기 좋은 바람은 초속 5미터 세기라는데 과연 그날 우리에게 불어 준 바람은 어느 정도였을까.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연은 휘청거리고 떨어지길 반복했다. 간신히 살려내 신이 나 얼레를 푸는데 난데없이 새로운 연이 등장했다. 옆 사람이 올린 연과 얽힌 것이다. 두 연은 저 멀리 곤두박질쳤다. 남편이 먼저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괜찮으세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남편과 누군가가 만나 자초지종을 나누는 사이에 얼레를 집어 들었다. 뭘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상대 연을 향해 천천히 얼레를 감기 시작했다. 처음 겪는 상황에 도무지 상대방 표정과 마음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자동차로 치면 접촉사고 정도 되려나? 얼레는 생각보다 말기가 복잡하다. 대충 빠르게 감으면 줄이 이리저리 삐져나와 얼레의 중심으로 연줄을 모아가며 천천히 감아야 한다. 고개를 숙인 채 줄을 감으며 걸어가니 오만가지 상상이 들었다. 우리가 너무 가까이 다가간 걸까? 원래 연초보는 좀 조심했어야 하는데 등 미안함에 조마조마함이 더해졌다. 줄이 얽힌 곳까지 다가가 고개를 드니 의외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편이 낯선 여인과 춤을 추고 있었다.
한 손에는 각자의 연을, 그리고 다른 손으론 연줄을 머리 위로 올린 채 일십자(+)로 얽힌 곳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나의 얼레와 상대방 얼레는 줄을 팽팽하게 잡고 두 사람이 꼬인 줄 반대 방향으로 풀고 있었던 것이다. 줄이 없었다면 영락없는 춤사위다. 나의 얼레에서 팽팽하게 당겨진 줄 밑으로 한 사람이 구부려 지나가면 다른 사람이 이어서 지나간다. 중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 마주 볼 수 밖에 없다. 실을 지나갈때마다 허리를 굽혔다 펴고 빠르고 느리게 돌고 돈다. 덩실덩실. 아이고 이거 원, 어머 참내, 이거 좀 민망하지만 힘냅시다 등 민망한 상황에 구실을 붙이며 햇살 내리쬐는 노란 풀밭에 빙글빙글 도는 두 어른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몇 번의 춤사위와 함께 연줄은 풀렸다. 그분의 연은 기둥에 걸려 결국 가져가지 못했다.
본래 연날리기는 신라시대에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 이용되었다고 한다. 일종의 통신 시스템인 셈. 정월 보름에도 날렸다. 액맥이라고, 그 해 액운을 막기 위해 연을 만들어 하늘 높이 띄운 뒤 줄을 끊음으로 나에게 올 못된 운세를 보내는 풍습이었단다. 연 끊기 대회를 해서 상대방이 이겼을 때 나 대신 액땜을 해주었다고 대접을 해준다고도 한다. 이렇게 보니 그때 서로의 연이 얽히고설킨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리 미안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오히려 서로에게 (비록 실을 끊어주진 않았지만) 일종의 액땜을 한 셈이라고 생각하니 정겹기까지 하다. 기둥에 칭칭 묶여버린 연처럼 그 분의 액운 역시 우리가 동여맸다고 생각하고 싶다.
연줄을 잡고 춤을 추던 어른 둘의 모습은 지금 떠올려도 우습다. 내게 명절이란 이런 것이다. 이런 작은 해프닝, 낡은 레일 위를 질주하는 애벌레와 순식간에 지나가는 아이들의 웃음. 적당히 노력해 올린 물고기연이 힘차게 헤엄치는 모습을 보는 것. 아무도 힘들지 않고 모두가 조금씩 만족스러우면 좋은 명절인 것이다. 이런 날이 좋다.
연(鳶) 덕분에 낯선 이들과 연(緣)을 맺게 되고, 그래서 나에겐 더없이 좋은 연(連)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