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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재미양 Apr 15. 2022

마음의 계절

'벚나무에서 벚꽃이 피고 매화나무에서 매화가 피고. 이것 봐, 얼마나 신기해?

백 년이 가도 천년이 가도 곧이곧대로 나냐고.."


50대쯤 돼 보이는 등산객 두 명이 감탄하며 지나간다. 시의 한 구절 같은 대사를 남긴 채. 책을 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흐드러지게 핀 나무들을 올려다본다. 백 년이 가도 천년이 가도 곧이곧대로 나는, 벚나무에서 벚꽃이, 매화나무에서 매화가 피는 모습을. 아파트 양 대로변에 벚나무가 만개했다. 바른 햇살 아래 꽃잎이 반짝이는 모습에 반해 사진 몇 장을 찍곤 이내 시큰둥해지던 참이었다. 눈으로만 훑던 계절을 문구로 되새김질하니 새삼 다시 보인다. 계절의 상냥함이, 꽃들의 꾸준함이.


어제까진 바람이 매서웠다. 나무에서 포르르 떨어져 바닥에서 흩날리던 꽃잎이 무채색 하늘에서 사정없이 날아다녔다. 소나기를 잔뜩 머금고 부푼 구름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 같았다. 그런데 또 이렇게 바뀌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사방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이렇게 금세 바뀌어도 되나. 변덕스러운 기후는 봄을 여름으로, 또 여름에서 겨울로 뒤바꿔놓는다. 환경이 불안정해진 탓이다. 마음에도 그런 소란이 일 때가 있다.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변덕스러운 마음 뒤에는 항상 불편함이 있다. 기쁨에서 슬픔으로, 슬픔에서 불안으로, 불안에서 평온함으로. 계절이 예전만큼 또렷하지가 않다. 소리 소문 없이 섞이고 뒤엉키고 종잡을 수가 없다. 요즘의 내 마음처럼.


서른 즈음 이 정도가 내게 맞는구나 싶어 메트로놈처럼 맞춰놓은 삶의 속도가 있다. 그 누가 등 떠밀어도 딱 요정도까지 생활하고 무리하지 않고 작업하고 잠들어야지 가늠해놓은 일종의 다짐이다. 내가 가장 편안하고, 불편할 때 되돌아갈 수 있는 안전선 같은 것. 일할 때는 마감 시간으로, 친구들과는 약속처럼, 함께하는 이들이 어른이라면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지켜질 수 있는 그런 것. 한데 아이들과 함께 하니 떠밀리는지도 모르고 저만치 가 있고 피곤한 줄도 모르고 감행하고 있다. 자꾸 허둥대고 내가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들까지 재촉한다.


예전부터 서두르는 느낌이 싫었다. 결국 이것도 매우 내 안에 있는 것인지라 내가 빨리 하고자 한다면 서두르는 게 아니고, 타인이 재촉하면 그런 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게는 내 안에 속도를 유지할 때만 빨라도 빠른 게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서두르기 싫어할 때는 내 안에서 불안이 올라오고 상황이 너무 급변하거나 몰아칠 때, 빨리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이 사방에서 조여올 때였던 것 같다. 그러니 오히려 느리게 움직이고 말투도 차분하고 조용하게 하게 되는 것이다. 육아를 할 때 신도림역 환승구간 한복판에 있는 듯 나도 아이도 종잡을 수 없는 인파에 몰려 어딘가 서두르게 될 때면 멈추기를 한다. 말을 멈추고 행동을 멈춘다. 그래야 그 순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였는지 느려졌다, 요 며칠. 코로나 후유증이니, 환절기 알러지니, PMS니, 여러 가지 상태를 붙였지만, 불안정한 대기 상태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날씨에 나도 모르게 재촉받고 있었나 보다. 손하나 까딱하기 싫어지고, 괜히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내내 시간을 보내며 바라보고, 녹초가 되어 집에 오는 날들이 반복되면서, 일부러 내 작업을 늦추고 있었나 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비워둘 때보다 결과를 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할 때 더 불행했다. 게으름을 피운다는 생각 속에는 행동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채근이 심어져 있다. 게으름에 굳이 이름을 붙여야겠다면 느림이 어떨까. 나는 느려지는 중이다. 세상이 자꾸 내 등을 떠밀어서, 목줄에 매여서 어딘지 나조차도 모를 곳으로 자꾸 끌고 가려고 하는 걸 뿌리치는 중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육아를 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사는 게 원래, 매 순간이 내 속도를 찾는 일 같다. 이 불안정한 기후 속에서 재속도에 맞춰 그럼에도 재각각 피고 지는 꽃들처럼, 불안정한 세상에서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언제고  안에 작업도 꽃피는 날이 올까. 젖은   아주 작은 씨앗이라도 기어이 피어나는 것처럼, 무거운 마음속 미세하고 사소한 생각 하나를 담아둔다면 언제고 계절이 바뀔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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