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쓸고 간 거실을 둘러보다 눈길이 머문다.
‘손톱이 많이 자랐네.’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바꾸고 이 작디작은 부위를 노려본다. 언제 이렇게 자랐지? 마지막으로 깎은 날이 언제였더라. 일주일? 이주일? 어느새 한 손에 손톱깎이가 들려있다. 이 순간만큼은 조신하다. 등을 동글게 말고 목을 길게 빼곤 손가락 한 개 한 개를 신중하게 깎아나간다. 또각또각. 단단한 손톱이 잘려나가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미미한 부위에서 울리는 날카로운 마찰음. 아이가 덕지덕지 붙여 놓은 스티커를 뗄 때마다 다소 아쉬워지겠지만 어쩔 수 없다.
손톱은 왜 손톱이고 발톱은 왜 발톱일까. 영어로는 nail이라는 통칭이 있던데 우린 그저 톱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손과 발을 어우르는 수족 깎이는 어떨까. 아 말이 되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손톱과 발톱을 이루는 물질로 부르면 어떨까. 단백질 깎이. 케라틴 깎이. 여전히 이상하다. 찾아보니 손톱과 발톱을 함께 합쳐 부르는 표현이 있었더랬다. ‘톱'이라고. 그런데 옛날이라면 얼마나 옛날인 거지.
신생아를 돌보며 놀란 부위 하나가 손톱이었다. 이렇게 얇고 투명하고 날카롭고 또 작다니. 말랑거리고 휘어지기까지 한다. 이미 작은 손가락에 달려있는 더 작은 부분인데 시간이 지나면 쑥 쑥 자라나있다. 어른과는 달리 동물이나 아기의 손톱은 그때 그때 다듬어 줘야 한다. 아직 스스로를 가누지 못하는 아이가 순식간에 제 몸이나 타인에게 생채기를 내기 때문이다. 처음이야 조심하고 신경 쓴다. 하지만 둘째가 되니 이 또한 다 아는 절차라고 자만한다. 정신이 멀쩡하다고 믿었던 그날 저녁, 아직 갓난쟁이인 둘째를 안고 손톱을 다듬다 살점을 잘라 버렸다.
다행히 많이 잘리진 않았다. 아이는 영문을 모른 채 나를 멀뚱 거리며 쳐다봤지만 하얗디 하얀 손가락에 새빨간 피가 계속 나왔다. 새삼 어른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었다. 한참 뒤에 지혈이 되고 나니 그제야 내 두 손이 떨고 있는 게 보였다. 눈물이 울컥 나왔다. 미안함이었으리라. 내가 널 함부로 대했구나 아이야. 아이의 손가락아. 손톱아. 오늘처럼 한가하게 손톱에 눈길이 머물면 그 어떤 것도 사소할 수 없었던 신생아의 신체를 소홀히 해 피를 본 날이 떠오른다.
뭔가를 해야지만 사는 것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앉아 있으면 도로 일어났고 일어나면 할 거리를 찾아 방황했다. 매일이 지속되면 일상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바쁜 일과 사이에 조금씩 하고 싶은 것들을 끼워 넣었다. 아이들이 등교하면 집안을 정돈하고 먹던 식탁을 치우고. 그 자리에 앉아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때되면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또 할일을 하고. 아이들이 귀가하면 같이 놀고 또 저녁을 차리고 먹고 다시 자고. 시간을 들여 끼워넣은 일과는 그렇게 하루가 되었다. 당연한 수순처럼 일과는 일상이 되어 흘러갔다. 그래서인가. 언제부턴가 일부러 넣었던 일과 중 하나가 빠지면 허전해졌다. 마치 백미터 달리기를 하다가 코스가 증발해버린 것 같이. 강박의 시작이었다. 식후 커피는 꼭 마셔야 하는 것처럼, 시원하지 않은 물은 물처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누리던 것들에 무게가 실려 사라진 곳을 다른 것으로 채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러다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이렇게 하루를 비워도 되는 걸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꼭 한 번은 하게 되는 의문 같은 것이. 내가 뭔가 하고 있기는 하는 걸까. 내 몫의 삶이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긴 한 걸까.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걸까. 중요하고 더 이상 뺄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하루를 보내다 보면 불쑥 자라난 손톱이 불편하게 다가온다. 하필 또 예민해서, 손톱이 어느 정도 자라면 불편하다. 손톱 위에 도톰하게 매니큐어를 바르면 그 무게에 익숙하지 않아 괜히 신경을 쓰곤 한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멈춰야 한다. 분주하게 이어가던 일과에서 잠시 벗어나 앉을 자리를 찾는 수 밖에 없다. 빼곡한 일상 속에 어쩔 수 없이 손톱 깎는 시간을 끼워 넣는 것이다.
미용실을 미루고, 새 옷 사는 걸 미루고, 정작 나를 위한 것들을 하나 둘 미뤄갈 때에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손톱 깎는 시간. 지루하고, 멋도 없고, 그렇다고 대충 하기에는 꽤 중대한 이 행위는 챗바퀴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나의 하루에 작은 멈춤이 된다. 일상을 빼곡하게 채우고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작은 숨 돌리는 시간이어라. 어쩌면 너무 사소하게 여겨 미루고 미루다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있는 건 아닐까.
삶의 군더더기 같은 손톱. 정신 차리고 보면 자라 있는 손톱. 왜 자꾸 자라나는지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이것을 어느 날 문득 발견하면 조금 놀라고 아, 네가 있었지 하며 주섬주섬 맞는 도구를 찾는다. 이 도톰한 부위는 너무 사소하고 보이지 않아서, 그래서 자라기 시작한 걸까. 나 좀 신경 써줘, 나도 있다고 하면서. 우리의 가장 챙겨줘야 할 부분은 가장 사소한 지점에 등잔 밑처럼 머물러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열 손가락을 다 거치는 동안 이만큼 생각했다. 다음은 더 사소한, 발톱을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