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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욜란다 Aug 25. 2022

11 어른의 꿈

꿈의 질문은 객관식

나의 꿈은 객관식이었다.



사지선다형 시험 문제처럼 그저 정해진 몇 개의 직업 중 하나가 꿈이 되었다. 그나마 수능을 치르면서 오지선다형을 접하며 다섯 개가 되었나 아무튼 꿈 문제 만큼은 늘 객관식이었다. 스스로가 품어본 적 없는 질문을 계속 풀어야 하는,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 한 정해진 문제였다. 주로 부모님이 문제를 내주시고 몇 번 틀리면 내 수준에 맞추어 질문을 여러 번 수정하셨다. 친구의 아들 딸 옆집 아이들은 부모님이 꿈 문제를 낼 수 있게 도와주는 소중한 reference였고 엄친딸, 엄친아는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언니와 문제풀이에 씨름하시다 지치셨는지 사실상 내 때에 와서는 그냥 밀리지 말고 푸는데 의의를 두자 포기하셨던 것도 같다.


만약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행착오를 하더라도 그 질문을 내가 만들었다면 객관식이라도 인생의 답은 스스로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학창 시절 시험을 위해 문제집을 풀거나 선생님들께서 주시는 Hand-out을 파일에 철하여 공부를 하곤 했다. 특이하게 윤리 선생님께서는 이번 범위 안에서 33개의 문제가 출제될 예정이니 다음 시간까지 스스로 문제를 뽑아보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그 '다음 시간'이 돌아오자 이번에는 앞 뒤 옆 친구들과 서로 만들어 온 문제를 바꿔 풀어보라 하시고 틀린 문제 위주로 복습하며 시험 준비를 마치라고 하셨다. 주어진 문제만 풀어봤지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본 적은 없었으니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그룹에 속했던 반장은 꼼꼼하게 문제를 뽑았고 반장의 예상집에서 대부분의 문제가 출제되었다. 그때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질문도 잘 만든다고 생각하며 감탄만 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스스로 질문을 만들 수 있는 아이가 답도 발견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맨날 이제야 안다.


하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이제부터라도 내 문제를 내가 만들고 답도 스스로 찾아보자 다짐했다. 다행히 명확하게 아주 명확하게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으므로 이미 문제도 답도 맞춘 듯 뿌듯했다. 하지만 뿌듯함도 잠시 내 꿈은 나부터가 밀어줄 수 없는 어른의 꿈이었다.


아이 때의 꿈은 보들보들 말랑 말랑하며 빛이 났다. 시간이라는 큰 자산이 주는 든든함으로 매일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것이 누구로부터 주어졌건 스스로 발견했건 간에 응원과 격려를 퍼부어 준다. 하지만 어른의 꿈은 딱딱하고 건조했다. 항상 제한된 시간에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정해져 있는 책임이라는 것이 꿈 앞에 선 문지기이다. 할 일은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당장은 손가락을 빨며 글을 써야 하는 경제적 압박이 열정을 유지시켜 주지 못했다. 나부터가 꿈으로 가는 문지방에 발 끝으로 걸터 서 있는 아슬아슬함을 반복하다가 내면에서 쏟아져 내리는 온갖 부정적인 물음과 함께 자빠져서 꿈 길 저 반대편으로 너머가 버렸다. 슬럼프가 온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이런 것도 글이 될까? 내 글을 누가 돈을 주고 사 볼까? 글로 돈을 못 벌면 나는 뭐 먹고살지? 당장 친구의 생일에 줄 선물의 가격대를 낮추어야 하고 모든 사치품과는 결별을 선언하고는 필수적인 삶에 돌입했지만 퍼붓듯 들어가는 치과 치료비의 압박과 높아져만 가는 물가, 연로하신 부모님 돌보미에 나의 노후까지 생각하니 꿈이고 나발이고 앞이 막막했다. 도무지 일상에 답이 보이지 않았다. 글도 쓸 수 없고 읽을 수도 없었으며 하루 종일 누워만 있던 시간들이 점점 길어졌다. 마지막 글공부를 하려고 펼쳐 둔 집필 책상 근처에는 가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 예전처럼 하루에 한편이라도 글을 읽고 쓰는 연습을 하였으면 아니, 책상에 앉을 수라도 있게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 무렵 나를 일으킨 것은 정신도 영혼도 아닌 나의 몸이었다. 무작정 밖으로 나가 부은 몸을 일으켜 걸었으며 15분이면 돌파했던 산책길을 20분이 너머서야 힘겹게 완주할 수 있었다. 걷고 있어도 공항 에스컬레이터를 반대방향으로 역주행하듯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지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무 생각 하지 않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렇게 밖으로 나갔다. 저런 복장으로 밖에 나갈 수 있을까 싶은 산적의 모습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누가 보는 것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냥 몸을 일으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걷는 속도가 회복이 되며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땅을 딛게 된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이 회복이 되니 마음도 함께 일어났다. 그리고 그동안 나를 너무 돌보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문제를 내 보기로 했다. 일관성을 위해 이번에도 객관식 문제를 내기로 했다. 하지만 답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고 모든 것이 답인데 진짜 정답인 작가가 되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 중 가장 간단한 것을 고르는 문제를 만들었다. 작가가 되기 위한 나의 첫번째 노력은 매일매일 글쓰기나 하루 15분 읽기, 필사 등도 아니었고 불어난 몸을 슬림하게 만들어 살을 빼고 건강을 회복하자는 것 이었다.


지금 내가 당장 작가가 되기 위해   있는 가장 일은 역시 몸을 스스로 통제하는  이었다. 당장에 연봉이 높은 직업을 갖게  수도 없고 부모님 기억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수도 없다. 내가 젊어질 수도 없으며 작가가 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간다던지 동굴이나 암자에 들어가 도를 닦으며 글을  수는 더더욱 없다. 가장 쉽게   있는 가장 작은 일이 살을 빼고 건강해져서 건강한 글을 쓰는 것이었다.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질문과 답이 나올  알았는데 예상외로 나의 답은 다이어트 였다.


여기 지금 당신의 꿈, 작가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가장 쉽게 바로 성과가 나타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맞는 것을 고르시오.


1. 브런치 작가 응모에 도전해서 입상을 하는 것.

2. 공모전 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출품해 보는 것.

3. 매일 쉬지 않고 글을 읽고 쓰는 것.

4. 서점이나 도서관 등 작가의 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곳에 들어가 봉사를 하거나 직업을 구하는 것.

5.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없는 건강한 작가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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