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리 May 19. 2024

챌린저스, 관음의 시선 속 테니스는 거들 뿐

챌린저스 (2024) 리뷰

<챌린저스>는 테니스의 형식을 빌려 삼각관계 로맨스물의 새 지평을 열었다. 감독 특유의 육욕을 향한 집착을 총망라하는 작품으로서, 그 시청각뜨거움만으로도 절로 감탄이 나오게 한다.


욕망 3부작의 매치 포인트

영화가 직접 뉴 로셸 결승전 경기를 세 인물의 매치 포인트로 비유하고 있듯이, <챌린저스>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욕망 3부작의 매치 포인트다. 그가 지금껏 골몰해 온 오욕칠정을 집대성하는 작품이며, 감독 커리어의 새로운 도약점으로서 앞으로의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언뜻 욕망 시리즈의 제4부로 보이는 이 작품은, 테니스를 전면에 내세운 만큼 젊고 활력이 넘친다. 화려한 카메라 워크를 받쳐주는 편집과 연출도 끝내준다. 서사를 이끄는 데 중요역할을 하는 테크노풍의 사운드 트랙은 뜨겁고 격정적이다. 한마디로 영화 전체가 ‘도파민 파티’다.


누군가 이 영화를 더러 ‘가장 섹시한 테니스 영화’라고 했다. 그 평가는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정말 섹시하긴 한데, 가장 섹시한지는 모르겠다. 가장 섹시한 ‘테니스 영화’로는 <보리 vs 매켄로> 지지자도 분명 있을 터. 오히려, <챌린저스>는 ‘가장 잘 만든 테니스 영화'의 위상에 오를 것 같다.


관음의 시선 속, 테니스는 거들 뿐

ⓒThe New York Times

<H2>가 야구의 탈을 쓴 청춘 로맨스인 것처럼, <챌린저스>는 테니스를 표면에 내세운 치정 가득한 성인 로맨스다. 섹스로 비유되는 테니스 경기, 타시, 아트, 패트릭의 삼각구도 사이에서 오가는 관음 어린 시선이 서사의 전부라고 보아도 좋다.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스토리텔링은 복잡하다.


이때 시선의 주인은 주로 타시다. 중요한 점은, 전통적인 삼각관계에서 여성이 소비된 방식을 전복하고, 관음의 대상에서 벗어나 주체성을 온전히 회복했다는 것이다. 영화와 시각 문화 전반은 남성 관객을 상정해 왔다. <챌린저스>는 남성은 보는 자, 여성은 보이는 자로 구분되어 온 불평등과 위상차를 거부한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관음은 오롯이 타시의 소유다. 관객에게 허락된 정사 장면은 단 하나도 없다. 전희 단계에서 끝날 뿐이다. 대신, 무수한 테니스 경기가 곧 베드씬을 대체한다. 쉴 새 없이 주고받는 역동적인 랠리에서 격렬한 성교의 뉘앙스를 읽어내는 건 어렵지 않다.


모든 게 담긴 첫 키스씬

타시는 첫 키스씬부터 아트와 패트릭을 3자의 관계 안에 빠뜨려 놓고는, 홀로 쓱 빠져나와 그 욕정의 광경을 즐겁게 만끽한다. 영화는 플래시백을 활용해 시점을 오고 가며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겹쳐 놓는데, 첫 키스씬은 줄거리 전체를 묘사한다. 아트와 패트릭을 한 명씩 차례로 탐닉하는 타시, 삼각관계 속 폴리아모리, 두 남자의 동성애적 충동, 그리고 타시의 관음. 이 씬에서 제시된 모티브들이 극을 끝까지 이끄는 중심이 된다.


2019년 뉴 로셸 결승이 펼쳐지는 동안, 주인공 3명이 18살이었던 13년 전부터 현시점까지의 모든 과거는 매치 포인트를 위한 밑거름으로 쓰인다. 매치 포인트로 시작해 아트와 패트릭의 포옹으로 끝난 유소년 복식 결승전, 패트릭이 주기로 한 유소년 단식 결승전, 아트가 패트릭에게 “성관계를 했다면 아무 말 없이 라켓 중앙에 공을 갖다 대라”고 말했던 연습 경기까지. 일련의 역사는 현재의 결승전과 기묘한 관계를 맺으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아트 도널드슨

아트는 주연 3인 중 가장 이성적이고 차분한 인물로 묘사된다. 테니스로 치면 ‘랠리’에 강점이 있는 선수다. 유소년 시절에는 패트릭에게 밀렸지만, 꾸준한 연습을 통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성인 테니스 선수가 되었다. 그런 아트에게 슬럼프가 닥치자, 아내이자 코치인 타시는 자신감 회복을 명목으로 그를 마이너 대회인 챌린저에 참여하게 한다.


그의 캐릭터는 패트릭과 콤비를 이루던 시절의 별명인 ‘불과 얼음’에서 알 수 있듯 얼음처럼 냉철하고 섬세한 성격이다. 위 사진에서는 빨간 옷을 입고 있는데, 영화는 지속적으로 의상의 색상 대비를 드러내지만 색상의 주인을 빈번히 바꾼다. 혹은 같은 옷을 다른 사람이 입는 방식으로 위상의 역전을 드러낸다. (ex. 타시의 I TOLD YA 티셔츠를 패트릭이 입음)


그는 이미 테니스에 마음이 떠난 사람이다. 진작 은퇴하고 싶은 마음을 타시 때문에 억눌러왔다. 이때, ‘은퇴의 욕구’를 ‘패트릭을 향한 욕망’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하다. 아트에게 타시는 방아쇠이자, 동시에 방지턱이다.


패트릭 즈바이크

패트릭은 불과 얼음 콤비의 불답게 화끈하고 즉흥적인 성격을 가졌다. 비유하자면 스매시, 과감한 승부수가 특기인 선수다. 처음 만난 여성에게 바로 키스할 정도로 직진 플러팅의 귀재이자, 타고난 카사노바다.


동성애의 욕망은 주로 패트릭을 통해 묘사된다. 챌린저 첫 경기를 이긴 그는 라커룸에서 데이팅 앱을 켜고 하룻밤을 같이 보낼 상대를 물색한다. 돈이 없는 그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한 계산적 행동인데, 아무나 걸리라는 식으로 ‘무지성 좋아요’를 보내던 손가락은 남성의 프로필 앞에서 멈춘다. 고민도 잠시, 그 남성에게도 좋아요를 보낸다. 서사적으로는 타시를 두고 아트와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근을 삼키듯 바나나와 츄러스를 베어 무는 장면에서 그에게 잠재된 동성애적 충동이 여실히 드러난다.


패트릭의 서사에서도 시선은 중요하다. 표면적 서사는 타시를 욕망하나, 정작 패트릭 시점의 카메라는 라커룸에서 남성의 신체를 적나라하게 담고, 아트를 미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등 그의 내밀한 성적 욕구를 암시한다.


타시 덩컨

한마디로 타시는, 키스(테니스)에 참여하던 도중에 하차(다리 부상)하고 내내 관음하는 인물이다. 오프닝에서도 시선을 좌우로 번갈아 가며 관전 중인데, 이 씬이 포스터로 쓰였을 만큼 타시의 ‘시선’은 매우 중요하다.


타시에게 테니스는 관계다. 또 인생의 전부다. 아트와 패트릭이 자신의 번호 따기에 정신이 팔려 ‘두 사람만의 관계’를 보여주는 데 실패했을 때, 그는 확실히 실망했을 것이다. 두 소년은 테니스가 관계임을 그땐 몰랐다.


영화 속 테니스가 성교를 상징하기에, 타시는 섹스 중독자로 은유된다. 타시는 안나 뮬러를 박살 낸 원사이드 게임에서, 15분 만에 서로의 모든 걸 알았다고 했다. 그런 경지에 오른 타시에게 평범한 테니스(섹스)는 재미가 없었으리라. 부상으로 테니스를 예전처럼 못 하게 됐을 때, 타시는 완전히 관음증의 영역에 빠져든다. 이때 공교롭게도 성행위 묘사의 부재가 서사를 튼실히 지탱한다. 타시는 안나의 챔피언 등극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두 번의 절정

타시가 내지른 두 번의 비명은 두 번의 절정을 뜻한다. 평범한 성교로는 절정에 다다르지 못하는 그는 ‘끝내주는 테니스 경기’를 관음하며 절정을 대신한다. 안나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분출했던 첫 번째 포효는, 영화의 마지막 매치 포인트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타시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아트도, 패트릭도 아닌 황홀한 테니스(섹스)의 성취, 정점의 순간이었다.


다른 모든 관객의 고개가 좌우로 바삐 움직일 동안 정작 타시는 경기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타시는 삼각관계 사이에서 자신이 저지른 일들로 인해 불안에 빠져 경기에 쉬이 집중하지 못하다가, 매치 포인트부터 급속도로 몰입하며 기어코 “Come on!”까지 도달한다. 영화는 승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연출은 열린 결말임을 더욱 강조하는 장치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심층적 서사에서의 승자는 사실 타시임을 보여준다.


암약하는 서사

<챌린저스>의 표면 서사와 심층 서사는 보이지 않게 끊임없이 대결한다. 표면 서사는 전통적인 2남1여의 삼각형 로맨스를 표방하고, 심층 서사는 금기시된 동성애의 욕망을 다룬다. 매력적인 여성을 쟁취하려는 전형적인 남성 캐릭터는, 적재적소에 깔려 성적 긴장감을 유발하는 사운드와 음험한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입체적 인물로 변모한다.


“어떻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는지 묻는 타시에게 아트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랑한다 말하는 대신, ‘일반적인 남성이라면’ 젊고 매력적인 여성을 사랑할 것이라며 에두르는 대사는 자못 의도적이다. 이처럼 암약하는 서사는 잠재된 욕망과 금기를 시각화하고, 타자화되던 여성을 관음의 장본인으로 등극시켜 해방하고자 한다. 마침내 관객은 타시의 비명, 아트와 패트릭의 포옹에서 괴상야릇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보편성이라는 폭력과 편견을 타파한다는 목표는 은밀히 달성된다.


젠데이아, GAME CHANGER

루 베넷을 연기한 젠데이아의 대표작, <유포리아>

아동 패션 모델로 시작해 시트콤을 거쳐 가수로 데뷔, 지금의 배우까지. 젠데이아는 MZ세대를 대표하는 명실상부 최고의 셀럽이다. 이런 명성과 반대로, 스파이더맨 시리즈 MJ의 모습이 각인되어 연기력이 미심쩍었던 배우‘였’다. <챌린저스>는 이러한 편견을 완전히 깨는 젠데이아 커리어의 정점이자, 그가 타시처럼 게임 체인저임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젠데이아? 유명하긴 한데 얘 연기 못하지 않나...?” 일단 이 영화를 보시라.


 젠데이아는 <챌린저스> 제작에도 참여했다. 영화가 두 남자의 랠리를 타시가 관음하는 플롯으로 구성됐고, 그가 캐스팅에도 관여했다는 점에서 드물게 영화인으로서의 야욕마저 엿볼 수 있었다.


이러한 행보는 그가 인기 셀럽에서 명배우로 거듭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의 커리어 최고작은 더 이상 <유포리아>가 아니다. 진정한 탈피를 마친 배우 젠데이아의 넥스트 스텝이 궁금해진다.


트리비아

2019 윔블던 결승을 관전하는 미르카 페더러 ⓒGetty Images

1. 영화의 각본가 저스틴 커리츠케스는 2018년 US 오픈 여자 단식 결승전, 오사카 나오미가 세리나 윌리엄스를 2-0으로 이긴 것을 모티브로 초안을 만들었다. 이듬해 페더러와 조코비치의 윔블던 결승전에서 페더러의 아내 미르카 페더러가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에 착안해 타시 덩컨의 캐릭터를, 테니스 선출인 미르카가 부상으로 은퇴 후 페더러의 매니징을 맡고 있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제작했다.


2. 아트 역의 마이크 파이스트는 <패스트 라이브즈>의 각본에 매력을 느껴 셀프 테이프를 보냈지만 떨어졌다고 한다. 이후 <챌린저스>에 캐스팅되어 저스틴과 대화를 나누던 중 그의 아내가 패스트 라이브즈의 감독, 셀린 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마이크는 “우리가 작품을 찾기보다, 작품이 우리를 찾는다고 믿는다. 나도 커리어를 뜻대로 통제하고 싶지만, 한 번도 그렇게 된 적이 없다. 늘 작품이 먼저 날 찾아온다”고 밝혔다.



영화에는 분명한 단점도 있습니다. <오펜하이머>처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편집을 마지막까지 고수하는데, 이런 방식의 특성상 중반 이후부터 다소 맥이 빠집니다. 엔딩으로 수렴하는 과정에서 과거 사건현재와 병렬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플롯 구조상, 이는 필연적인 단점입니다.


<챌린저스> 아이맥스 전용 포스터. 만약 이게 메인 포스터였다면?

관람 욕구를 자극하지 못하는 <챌린저스>의 포스터 디자인에 관한 지적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잘 만든 포스터란 걸 알 수 있죠.

제가 가장 아쉬운 건 마케팅의 부재입니다. 젠데이아가 몰고 온 테니스코어 룩의 열기를 역으로 이용하면 안 됐던 걸까요? 테니스공, 라켓 모양 키링, 하다 못해 양말이라도 굿즈로 만들어서 증정 이벤트를 했음 좋았을텐데 말이죠.

결국 챌린저스는 개봉 5주차를 앞둔 현재, 범죄도시4에 묻혀 국내 7만명 남짓의 관객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만 범죄도시4의 독과점은 해당 시리즈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상영관 배급 구조 문제, 소위 '먹힐 영화'를 관습적으로 보는 대중의 소비 습관 문제가 섞인 복합적인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단군님 유튜브에서 이 독과점을 주제로 한 영상을 봤는데, 저도 조만간 관련 콘텐츠 작성해볼까 합니다.

한편 조쉬 오코너를 초반 10분까지는 디에고 칼바인줄 알았습니다. '오우~ 바빌론에서 보여준 멕시칸 촌놈 연기랑은 또 완전 다르네?' 그랬는데 아 진짜 다른 사람이었던 거임.

매거진의 이전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