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에서 뒤꿈치로 바닥을 쿵쿵 내리찍을 때 집이 울리며 나는 소리나 쌍시옷이 들어간 욕이 추임새처럼 말 사이사이에서 존재감에 빛을 더하는 소리처럼, 들었을 때 기분이 팍 상하는 소리들이 있다. 그중 둘째가라면 서러운 것이 바로 뛰뛰빵빵, 자동차의 경적 소리다.(벌써부터 심장이 벌렁벌렁거린다) 만약 그 소리가 '뛰뛰빵빵'이라고 적은 그대로 한 박자씩 소리가 나는 것이라면 귀엽기라도 할 텐데 이때까지 한 번도 그런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운전을 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경적을 그렇게 울려대는 이유를 단순히 앞에 있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에게 '얼른 가라'는 말을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운전을 시작하고 3년이 지난 지금은 안다. 사람들의 경적이 품고 있는 의미는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무궁무진하고, 안타깝게도 그 대부분이 격한 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운전대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내비게이션을 켜놓고도 두리번거리던 시절엔 경적 소리가 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었다. 그리곤 옆에 남편이 있을 땐 남편에게 물어보고, 동생이 타고 있을 땐 동생에게 물어보고, 옆에 누가 없을 땐 나한테 물어보았다."저... 저거 지금 나... 한 테 그러는 거야?" 초보인 내가 뭔갈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그땐 뒤차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매번 확실치 않아서 내 딴에는 천천히 차선을 바꾼 것인데 뒤차는 갑자기 들어왔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때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경적 소리를 들어야 했을 땐 왠지 모르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 계기판에 내가 운전한 킬로수를 나타내는 숫자가 점점 커지고 혼자서 주유소에 들러 주유를 하고 세차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쯤엔 도로에서 나를 향해 울리는 웬만한 경적 소리들은 의미를 알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1) 거 참, 신호등이 바뀌었는데 왜 출발을 안 하는 겁니까?(알려줘서 고마웠음) (2) 네가 내 앞에서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꾸려고 하고 있지만 내가 먼저 갈 거니까 비켜!(이 자는 초면에 클랙슨으로 반말을 함) (3) 이 차선은 직선 차선이기도 하지만 우회전 차선이기도 해. 나는 지금 우회전을 해야 하니까 네가 비키는 게 맞아! 그러니까 비켜!(이 자는 클랙슨을 두 번 눌렀음. 당연히 반말이었음. 하지만 난 움직이지 않음.) (4) 신호등도 없는 도로에서 그렇게 느리게 달리면 어떡해! 그럴 거면 차선 바꿔! 내가 먼저 가게!(이 자는 최대 속도 80인 도로에서 80으로 달리고 있는 나에게 클랙슨에 욕을 담아서 나에게 보냄 ) 그리고 고마웠을 때를 제외하고는 나 역시 클랙슨을 눌렀다. 꾸욱. 한 번만. 확실한 내 마음을 담아서.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몸도 마음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신호등이 없는 도로에서 왼쪽 차선으로 옮기려고 깜빡이를 넣고 차선을 천천히 바꾸고 있었는데, 옮길 차선 뒤에서 적정한 간격을 두고 달려오고 있던 자동차가 갑자기 속도를 올리면서 클랙슨을 울려댔다. 그것도 길게 계속. '니가 비킬 때까지 누를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아 화가 머리끝까지 났고 발을 가속 페달로 옮기려고 했다. 하지만 부딪힐 것이 뻔했기 때문에 급히 발을 옮기고 복수를 하듯이 클랙슨을 길게 눌렀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는데 그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이 날 알게 된 것이 있다. 많고 많은 교통사고들이 일어났던 이유 중 하나인 동시에 교통사고가 여전히 계속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를 말이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다. 운전을 하는 중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클랙슨으로 나에게 위협을 가하는 사람을 만나면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기로. 그 사람이 클랙슨으로 나에게 던지려고 한 짜증과 화를 내 쪽에서 거절하기로. 클랙슨 소리를 해석하지 않고 '뛰뛰빵빵'으로만 듣기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매번 경험하고 있지만, 목숨이 달린 일이니 어렵다고 멈출 순 없다. 오늘은 성공했고 내일도 성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