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무부장님 말이야 정말 좋으신 분이거든.”
“알지.”
“그런데 한 번씩 깜짝깜짝 놀라는 말씀들을 하신단 말이야. 글쎄 신규 선생님한테 '우리는 상위 1%'야 이런 말씀을 하셨어.”
언니는 초등학교에서 근무한다. 결혼하며 타지로 이사 온 나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자매는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 연결을 자주 전화로 확인한다. 학교라는 공통의 배경이 있으니 동료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부터 미처 드러내지 못한 속내까지 전화로 털어놓는다.
언니의 놀라움은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었다. 먼저 교사가 상위 1%가 아니라는 것과,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며 엘리트의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모습에 놀랐다는 것이다. 아니면 그 둘 다 이거나. 그럼 경우의 수를 세 가지라 해야 하나.
“그리고 지난 회식 때는 교무 행정사 선생님께 좀 실수를 한 것 같아.”
언니네 학교 교무 행정사 선생님은 B사의 수입차를 타고 다닌다. 회식 장소에 도착해 본인 승용차에서 내리는 교무 행정사 선생님을 교무 부장님이 발견했는데, 어떻게 그 차를 샀냐고 물었다고 한다. 월급도 적은데.
“아, 진짜 무례하셨네.”
작은 탄식이 더해졌다.
월급이 적다 해서 자산이 적다고 판단한다든가, 교사보다 교무 행정사들의 월급이 적다고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표현까지 하는 것은 정말 무례했다. 또 유치했다.
나는 윤리 스타강사 이지영강사의 동영상을 자주 찾아보는데, 이 강사가 말하길 20대까지는 사람들이 학벌을 묻는다고 한다. 어느 대학 나오셨냐고. 그런데 30대가 되고 나서부터는 묻지 않는다고 했다. 그 사람의 삶으로 어떤 사람인지가 증명 가능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삶을 두고 학벌이나 직업으로 평가하는 것이 30대가 되면 무의미해진다는 말이었다.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자기 삶을 긍정하는 태도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내 삶의 기준을 타인의 삶에 갖다 대며 평가하는 것은, 정말 다른 세계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사범대나 교대가 고등학생시절 유일한 목표였고, 임용고사 통과하고 교사가 되는 것이 그다음 유일한 목표였고, 교감이나 교장 또는 자신만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고 실패를 해보지 않은 인생. 그래서 세상에 인간의 노력으로 얻지 못할 것이 없다고 믿는. 자신의 결과론적 성공법이 유일한 성공법이라고 믿는. 아직 그 유일한 성공을 맛보지 못한 사람에게 자신의 노하우와 삶의 태도를 전수하는 그런 좁은 사람.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이들에게 공부 잘한다고 좋은 대학 간다고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내 진심이다. 학벌이 직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다만 학교 교육의 테두리 안에 있길 선택했고, 그 안에서 내게 주어진 유일한 과업이 공부라면, 내 인생 열심히 하는 모의고사라 생각하고 한 번 열심히 해보자고 다독인다. 그렇지만 너희의 유일한 과업이 공부가 아니라 다른 것이라 해도 응원한다고.
열심히 살아 보는 것이 내 인생 사랑하는 방법이라면 그렇게 해보자 얘들아. 선생님 수업이 생각할 거리도 많고, 과제도 어려워서 불만이 많을 수도 있지만 나는 교사로서 내 인생 열심히 살고 있으마. 수업 준비도 열심히 하고, 어떻게 하면 내용도 알차고 기능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수업을 만들 수 있는지, 학교 수업 그저 열심히 했는데 너희가 좋은 대학 가는데 조금 더 유리한 방법이 무엇인지 열심히 고민하마. 그렇게 내 인생 열심히 사는 순간에 우연히 네 인생 열심히 하는 순간과 수업으로 만나자. 씨실과 날실처럼 만나서 그렇게 같이 만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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