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에서 단골 질문이다.
‘부당한 업무 지시가 있을 때, 직장 상사와의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
‘질문부터 어폐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으신가요?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 왜 지시하려고 하십니까?’ 이렇게 용기 내서 물어본 적은 여태껏 없었다. 물론 마지막 면접에서도 그랬다.
‘시간 강사 자리에 부당한 업무 지시랄 것이 있을까?’
의심은 되었지만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의지를 표현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안팎의 내 아이들(내 자식과 내 자식과 같을 학생들) 모두에게 최선인 방법을 고민하다 올해는 기간제 교사 구인에 지원을 하지 않았다. 퇴근한 엄마를 기다리는 집안의 자식들에게 친절한 엄마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냐고 물으면 시작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끝까지는 글쎄요였다. 학교에서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냐고 물으면 일에 갖고 있는 능력과 마음을 쏟아 일을 할 수는 있었다. 다만 처리 못한 일을 퇴근 후며 방학기간으로 배분해 가며 내 수면시간이나 체력과 맞바꿀 가능성이 컸다. 안팎의 내 아이들 모두를 위해 기간제 교사 자리는 지원할 수 없었다.
일을 하고 있다는 자존감과 경력의 연결점은 놓지 않으면서, 배운 도둑질로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국어과 시간강사였다. 공고는 많지 않았는데 그나마 나는 중학교 시간강사 자리는 고등학교 경력으로만 채워진 내 이력서 때문인지 서류심사도 넘기기 힘들었고, 채용 공고 끝물이라 기대를 할 수 없던 시점에 모 고등학교에서 공고가 하나 올라왔다. 면접을 보고 합격 축하 연락을 받았다. 고대하던 작고 소박한 일자리였으니 무척 기뻤다.
합격 통보를 받은 주 주말 저녁에 담당 부장님이 연락이 오셔서 시간표를 알려주셨다. 당장 내일부터 수업을 하라신다. 계약서를 쓸 준비를 하고 오라시는데 해야 할 일이 예상외로 많았다. 생활기록부 기재와, 정기고사 평가 문제. 생활기록부는 고3 수업이 있어서 여름 방학 내 붙잡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아 평가를 하고 생활기록부 기재를 해야 하니 면접에서 그런 질문을 했구나.(원칙적으로 시간 강사는 수업 외의 업무를 담당하지 않는다)’
시간표는 공강이 많아 5일 출근에 7교시까지 있는 날이 많았고, 공강에 외출을 하거나 다른 볼일을 보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수업연구에 평가할 것을 생각하면 공강 시간을 써야 했다.
시간표가 나왔다고 저녁 준비를 하면서 남편에게 보여주는데
“갑이 너무 많잖아. 한 교사의 수업을 떼 오는 게 아니라, 다섯이네?”
“응”
“공강이 너무 많은 거 아냐? 시간당 임금 받는 강사한테 공강을 이렇게 많이 주면 당신 최저임금은 받는지 생각해 봤어? 여기 세금 떼고, 급식비 내고(시간 강사는 급식비 지원이 되지 않는다.) 글쎄다 난 반댄데. 전일제를 생각해 보지 그래?”
“학교도 사정이 있는데 난 좀 거절하기가 어려워. 내가 최선을 다한다고 했어. 그래서 나를 뽑아 준 거고.”
“이 다섯 선생님들이 3월 지나서 구인하는 거 보면 지금까지는 그 수업 감당했다는 뜻 아냐? 너 안 한다고 해도 강사 못 구해서 동동거릴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당신이 하고 싶다면 내가 말리지는 못하겠지만. 계약직이 노예는 아니니까.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곳에서는 일 안 했으면 좋겠네. 그리고 1순위가 못한다고 하면 고용주는 2순위에게 전화하면 그만이야. 잘 생각해 봐.”
“그럼 내일 나가서 조율 가능한지 가능성을 좀 알아보고 계약을 하는 건 어떨까? 예를 들면 수업 시수를 줄이고 시간표를 좀 모아달라고 한다든가.”
“글쎄다, 학교 예산 아니고 교육청에서 지원받는 돈 아닌가? 학교 돈이라고 하더라도 교사들이 수업 시수 줄이자고 고용한 강사를 위해서 기존 교사들이 수업을 더 한다? 내 생각엔 획기적으로 계약직 강사를 위해 조건이 좋아질 것 같지는 않아. 방학 때 월급 안 나오는데 일해야 할 거고, 이렇게 주 5일 7교시까지 할 마음먹었으면 그냥 애들 등하원 도우미 구해서 전일제를 구하지 그래? 임금은 60프로도 안되는데 하는 일이 너무 많잖아. 계약서 쓰기 전이니 벌써부터 그렇게 을로 생각할 필요 없어.”
“그래. 안 해야겠다. 내가 또 잊어버렸어. 계약직 교사 하면서 제일 기분 나빴던 것이 뭔지. 내가 그걸 잊어버리고 이 짓을 또 하려고 하네. 나 계약 안 한다고 말씀드려야겠다.”
계약직 교사로 근무를 하면서 정규직과 동일한 일을 하고 있으니 동일한 대우를 바란 적은 없다. 시험이라는 통과의례를 겪지 않은 근로자니까. 나를 설명하는 말에 계약직이 붙었다고 해서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선택적으로 분노했었다.
14시간이라는 시간은 법적으로 많은 것들을 고용주 입장에서 편리하게 만들어주었다. 주당 근로시간이 15시간이 넘는 근로자는 주휴수당이나 각종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해줘야 하는 의무가 발생했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기존 교사들의 수업 시수는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으면서 가장 효율적인 시간 14시간.
처음부터 시간강사를 고용할 계획이 있었다면, 시간강사를 1인으로 설정해서 순회 교사처럼 요일을 좀 몰아서 시간표를 짜줄 순 없었나. 기존 교사들에게 배당된 시수를 그림자처럼 고용된 사람에게 한 두 시간씩 던져주는 시간표가 최선이었나. 과목은 좀 몰아서 수업 연구에 시간을 줄여줄 수는 없었나.
최근 주당 근로시간과 관련해서 69시간이라는 숫자가 헤드라인에 등장했다. 나처럼 수 감각 없는 사람은 주당 69라는 숫자를 친절하게 나누어 계산하는 품을 들여야 체감되는 숫자였다. 주 5일 근무 기준으로 나누면 하루에 13.8시간. 9시 출근을 기준으로 할 때, 직장인은 교사와 달리 점심시간이 근무시간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자정가까이 근무한다고 가정해야 가능한 숫자였다. 이렇게 일하다간 죽거나, 근로시간을 늘리려고 태만 근무를 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은유 작가는 직장을 다니며 야근하는 자녀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네가 열심히 하는 게 동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노동량의 기준을 높여 놓지 말라'고.
최소한의 배려가 없는 조건에도 일하고자 하는 근로자가 많아진다면, 노동 시장에서도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임금은 헐값으로 유지될 것이다. 시간당 3만원. 12년 전 학교에 시간강사로 근무할 때와 임금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땐 정말 수업만 하는 조건이기라도 했지.
‘그러려고 강사 쓰는 겁니다.’ 한다면 어쩔 도리는 없겠다. 계약은 갑과 을이 모두 동의를 해야 성립되는 것이니, 이번에는 을이 계약을 거절하는 수밖에. 시간강사라는 노동시장에 1명의 인분으로 계산되지도 않는 존재가 던지는 돌이 아무 영향력이 없다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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