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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안 Jun 11. 2023

절친 없는 사람 여기여기 모여라

중학생에게 동화책 읽어주기

선생님 아이들이 자기 전에 동화책을 꼭 두 권이든 세권이든 읽어달라고 해. 그 고정된 의식을 치르지 않으면, 아이들은 눈을 감고도 ‘아직 동화책 못 읽었는데.’를 연신 삐죽대며 말하지. 어른들은 ‘책 읽을래. 잠을 잘래?’ 물으면 잠을 잔다고 하겠지만, 이 어린아이들은 잠이 들기 싫어 그림책을 한 권만 더 읽어 달라고 떼를 쓴단다. 잠들기 아까운 하루의 재미와 행복은 과연 어떤 느낌이었나. 어린이기(期)를 훌쩍 지난 나로서는 이제 도저히 상상이 되질 않아. 중학생인 너희는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구나.


선생님이 미취학의 내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책을 청소년인 너희에게 소개하고 싶은 때가 있어. 그런 책을 일주일에 한 번 독서 시간에 읽어주마. 조금 더 나이가 많을 뿐인 여전히 어린이들에게 말이야.  


선생님이 이번 시간에 소개할 동화책은 <단짝 친구>라는 책이야. 은지와 혜리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는 단짝 친구야. 둘은 가족들만 알고 있는 서로의 비밀을 알고 있지. 은지는 먹는 걸 좋아해서 꽃돼지라는 별명이, 혜리는 엉덩이에 큰 점이 있어 점순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둘은 그런 비밀까지 공유하는 사이지. 혜리는 쾌활하고 은지는 공부를 잘하는데 서로가 친구인 것을 자랑스러워해.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은지를 꽃돼지라고 놀려. 화가 난 은지는 혜리를 의심해. 은지의 별명을 알고 있는 타인은 아무래도 혜리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아이들에게 혜리는 점순이라며 비밀을 말하게 되지. 그 후로 둘은 싸우게 되고, 무척 외로워졌어. 은지는 혜리가 소문을 냈을 것이라는 오해를 우연한 기회에 풀게 돼. 동네 정육점에서 엄마가 주인아저씨에게 은지를 꽃돼지로 부르는 것을 듣게 되고, 그 정육점 아저씨의 아들이 같은 반 친구란 것을 알게 되면서 말이야.


얘들아, 이 동화에서 주제가 무엇인 것 같니?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자?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자? 그래 좋아. 너희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이 동화 작가가 들으면 꽤 뿌듯하실 것 같아. 선생님은 여기에 다른 주제를 하나 더하고 싶어. 바로 믿고 싶은 것을 믿자는 것이야. 이 동화의 가장 비현실적인 장면은 정육점에서 오해가 풀리는 것이야. 세상은 진실이 그렇게 쉽게 밝혀지지 않아. 대부분의 오해는 사실이라는 믿음으로 끝이 나.


선생님도 지금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에 친구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 어느 날 잠들기 전 내 친구들을 생각하면, 오늘은 나의 둘도 없는 절친인 것만 같고. 어느 날 생각하면 내가 그 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그 애는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서운해졌지. 내가 절친이라 생각하는 친구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때때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 같았고, 그 심각한 문제라 생각하던 것들이 어느새 잊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되기도 했었어.


그러고 보면 우정도 내 마음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나도 얼마나 많은 무고한 친구들을 오해하며 내 곁에서 떠나보냈나. 나 또한 억울하게도 얼마나 많은 친구들의 곁을 떠나게 되었나. 타인에 대한 진정성은 오직 그 사람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인데 말이야.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맞다고-객관적이라고- 생각해 상대방의 진정성을 내가 세운 척도로 평가하고 밀어냈었지.


타인의 주간과 또 다른 타인의 주관 속에서 생긴 내 생각은 객관성이 아니라 제3의 주관성일 뿐임을. 소문과 우정 진실. 그 속에서 너희가 믿고 싶은 것을 믿길 바라. 타인의 진술이 객관성의 탈을 쓰고, 온갖 증거가 넘치더라도 혜리와 함께해 온 시간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시간이었다면 한 번쯤은 믿고 싶은 대로 세상을 왜곡해서 보았으면 좋겠단다. 나와 내 친구의 관계가 우리 둘의 의지가 아닌 외부의 의지대로 왜곡되기 전에 말이야.


2022.5. 어느 수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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