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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Jun 24. 2022

난이도 극상! ‘조커’가 써내려가는 ‘조카’ 육아일기

영화 <컴온컴온, 2022> 리뷰

모두를 쩔쩔매도록 만들었던 미치광이 조커 호아킨 피닉스가 이번엔 조카 때문에 쩔쩔매는 삼촌으로 돌아왔다. 그의 진땀나는 조카 육아일기를 함께 읽어보자.     



육아 생초보 조니는 어쩌다 금쪽이 제시를 맡게 되었나?


라디오 저널리스트인 조니(호아킨 피닉스)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인터뷰를 수집하고 있다. 디트로이트에서의 작업이 끝난 어느 밤, 호텔 방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던 조니는 1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연락을 끊었던 여동생 비브(가비 호프만)에게 전화를 건다. 1년 만의 통화라 어색해 죽겠는 조니에게 비브는 뜻밖의 부탁을 한다. 오클랜드에 있는 비브의 남편을 돌보러 가있는 동안 그녀의 9살 아들인 제시(우디 노먼)를 돌봐달라는 것. 이렇게 조니는 여동생보다도 더 어색한 조카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된다.

      

육아가 처음인 조니에게 조카 제시는 난이도 최상의 미션이다. 게다가 제시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주말 아침에는 오페라를 최대볼륨으로 들으며, 음모론에 관심이 많아 이상한 공상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심지어는 매일 밤 보육원에서 학대받은 고아 연기를 받아줘야 겨우 잠자리에 든다. 에너지는 차고 넘쳐 밖에 나가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가끔은 몰래 숨어있다가 사색이 되어 자신을 찾는 삼촌을 놀래키기도 한다. 영혼까지 탈탈 털린 조니는 비브에게 전화해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지만, 비브는 별일 아니란 듯이 웃으며 “걔가 이상하긴 하지만 원래 그 나이 애들은 그런게 정상이야”라고 말한다. (필자 또한 아이도, 조카도 없는터라, 원래 9살들은 다 이런 것인지 제시가 진짜 레전드 금쪽이인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조니는 빨리 비브가 돌아오길 고대해보지만, 비브의 일정은 예상보다 계속 길어지기만 하고, 하는 수 없이 인터뷰 작업을 위한 뉴욕과 뉴올리언스 여정에 제시를 데려가게 된다. 이렇게 조니와 제시, 삼촌과 조카의 긴 여정이 시작된다.      


     

대화가 필요해



2002년에 발표된 혼성그룹 ‘더 자두’의 ‘대화가 필요해’라는 노래의 도입부이다.

노래 제목처럼 연인 사이에는 항상 대화가 필요한 법이다. 친구 사이에도, 가족 사이에도, 그리고 기타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오죽하면 ‘대화의 기술’이나 ‘대화의 힘’이라는 제목의 책들이 서점에 한가득 진열되어 있겠는가. 우리는 대화의 중요함과 필요성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대화하는 법은 잘 몰라 책을 통해 공부해야 할 정도로 애를 먹곤한다.   

   

영화 <컴온컴온>은 ‘대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나름대로 대화에 능숙하며, 자신만의 대화법도 지닌 이들이다. 먼저 주인공 조니는 타인과 끊임없이 대화(인터뷰)하는 저널리스트이다. 영화 중간중간 우리는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조니는 어린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다채로운 생각과 가치관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조니의 여동생 비브 또한 ‘대화’와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다. 그녀는 작가이자 교사이다. (비브가 일하는 장면은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분명 글을 통해 독자들과 대화하고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대화할 것이다. 비브의 남편 폴(스콧 맥네이리)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오케스트라는 여러 연주자와 지휘자가 함께 소통(대화)하여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이처럼 이들은 모두 ‘대화의 달인’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가족들과는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대화 무지랭이’이기도 하다. 대화가 부재/불가하니 서로를 이해할 리 만무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상처를 입는 관계로 이어질 뿐이다. 


    

가족을 연결하는 곰팡이 관, 제시


제시가 식사 자리에서 나무들이 소통하는 법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나무 아래에는 아주아주 큰 곰팡이 관이 있는데. 그 관은 모든 나무에 연결되어 있어 나무들이 소통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제시는 자신의 이론 속 곰팡이 관처럼 단절되었던 가족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한다. 

     

제시를 돌보는 조니(좌) / 조니의 육아현황을 전화로 전해듣는 비브(우)


1년간 대화하지 않았던 조니와 비브는 제시의 육아 문제로 매일 통화하게 된다. 한 통화에서 조니는 제시가 자신에게 ‘두 사람이 왜 연락을 끊었었는지’ 물었던 일을 전해준다. 이를 계기로 둘은 단절의 이유를 하나씩 나열해보는데, 제시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과연 두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편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대화할 수 있었을까 싶다. 제시의 악취미인 ‘고아 역할극’ 또한 하나의 효과적인 대화 전략으로 활약한다. 조니는 조카의 역할극에 장단을 맞춰주고자 고아 연기를 하는 제시에게 ‘너희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어?’라고 묻는데, 고아 제시는 그동안 진짜 제시일 때 말하지 않았던 엄마(비브)의 아주 사소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주 소중한 면모들을 이야기한다. 제시에게 역할극은 진실한 대화를 나누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조니는 이 같은 제시와의 대화를 통해 비브와 제시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도.     


대화를 통해 누구보다 가까워진 제시와 조니


정신건강전문의 김병수교수는 한 칼럼에서 ‘대화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설명한 바 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혼자가 아니라 함께 느끼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고, 그로부터 큰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대화란 어떤 결론에 도달하려고 애쓰기보다는 타인과 나의 경험세계가 섞여가는 과정 그 자체를 섬세하게 다루는 대화라 할 수 있다. 마음에 맞는 지인과의 대화는 별 얘기를 하지 않는데도 즐겁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저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것이다. 


감독 또한 이 영화를 통해 대화로 형성되는 연대 감각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함께임을 느끼는 것, 이것이야말로 시대가 변해도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가 아닐까? 잠시 스마트폰과의 소통을 멈추고, 곁에 있는 이와 눈을 맞추고 대화해보자. 영화 속 조니와 제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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