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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어릿 Oct 16. 2023

이번 가을도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A의 연서

맥주 한잔 하자는 너의 연락에 저녁 찬거리를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두고 옷을 갈아 입었어. 너는 평소에 깔끔하게 입는 걸 좋아하니까 거기에 맞춰 검은 슬랙스에 셔츠를 걸쳐 입었어. 일을 하는 동안 가라 앉은 머리를 다시 예쁘게 세팅하고 네가 좋아하던 향수를 손목에 다시 뿌렸어. 아침에도 뿌렸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서 향이 거의 남지 않았거든.


다시 밖으로 나와보니 벌써 해가 다 졌더라. 가로등 조명과 네온사인들이 노을빛 대신에 어두운 밤길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어. 낭만 가득한 노을은 아니지만 밤에만 볼 수 있는 이런 풍경도 몽환적인 느낌이 나더라. 벌써 1차에서 한잔 했는지 사람들의 표정이 약간 상기된 듯 보였어. 난 다른 의미로 기분이 좋았지만, 어쨌든 그 사람들을 지나 전철을 타고 우리가 늘 가던 그 맥주집으로 향했어.


맥주집에 사람은 많았지만 난 너를 금세 찾을 수 있었어. 진한 갈색의 긴 웨이브 머리를 하고, 낮아진 기온 탓인지 긴팔을 챙겨 입고 앉아 있는 너를 보자 마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더라. 내가 다가오는 걸 눈치챘는지 너도 나를 돌아보며 생긋 웃었어. 너의 반가운 표정과 나를 향한 손짓이 오늘 하루 내 모든 피로를 씻겨내 주는 듯했어. 버터구이 오징어를 미리 주문해뒀다며 한껏 들뜬 목소리로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널 보니 그저 귀엽다는 생각밖에 안들더라. 그렇게 우리는 맥주 한 잔을 시켜두고 늘 그랬듯 시덥지 않은 얘기를 나눴어.

 

요즘 나는 네가 부쩍 좋아졌나봐. 카톡으로도 했던 얘기를 만나서 다시 할 뿐인데 그냥 네 목소리로 듣는다는 게 너무 좋더라. 텍스트로도 충분히 말할 때의 감정이 느껴지고, 어떤 순간에는 음성지원이 되기도 하는 너지만, 이렇게 만나서 너의 표정과 손짓을 내 눈앞에 두고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요즘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런 생각을 하며 싱긋 웃었더니 한창 이야기를 하던 너는 내 손을 톡 하고 치며 갑자기 왜 웃냐고 내게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핀잔을 줬어. 그런 순간에도 속으로 나는 네가 그런 표정을 지을 때가 제일 좋다고 생각했어. 


맥주잔을 다 비우고 너를 집에 데려다주면서 은근슬쩍 너와 조금씩 더 가깝게 걸었어.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는 핑계로 손도 한번 잡아봤어. 이 즈음만 되면 항상 너는 손이 차가워졌잖아. 그래도 내 손이 항상 따뜻하니까 차가운 네 손을 잡았을 때 우리의 온도가 맞다는 것에 항상 감사해. 내 손을 잡을 때마다 따뜻해서 좋다며 웃는 너의 표정도 너무 좋아. 그 순간에 가을 바람이 옆에서 불어와 네 향수 냄새를 내 콧잔등에 올려놨어. 항상 내가 좋아하는 그 향수를 날 만날 때마다 뿌려주는 너에게 감사해.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내가 ‘향 되게 좋다’라고 했더니 잡고 있던 손을 잡아 끌며 능청스럽게 그렇냐고 웃어 보이는 네가 너무 좋아.


“이번 가을도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네가 이렇게 집에 들어가는 게 아쉬워서 너를 집앞에 세워두고 이렇게 말했어. 집에 들어가기 전, 네 손을 놓기 전, 너의 왼손을 내 양손으로 감싸고 예쁜 너를 바라봤어. 맥주를 마신 탓인지, 찬바람 탓인지 약간 상기된 얼굴의 네가 나를 올려다봤어. “나도” 하며 뒤돌아 들어가는 너를 아쉬운 마음을 숨기고 보내줬어. 내가 너를 데려다줄 수 있어서, 예쁜 네 뒷모습을 보고 행복한 마음을 품고 나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야.


오늘도 좋은 꿈을 꿨으면 좋겠다.

꿈에 내가 나온다면 더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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