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완 Nov 07. 2023

본 대회 +3일

본 대회 3일 차 아침이 밝았다. 학교에서 아침식사를 챙겨서 조별로 어제 갔던 성당으로 출발했다. 오늘도 오전 시간에는 한국에서 온 교구들끼리 모여서 미사를 하고 나눔 시간을 갖는다. 성당 앞 버스에서 내렸는데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경찰들이 도로를 통제하고 있다. 교황님이 곧 지나가실 거란다. 아니 이런 우연과 행운이! 우리도 도로 끝에 서서 핸드폰을 들고 대기했다. 20여분 지났을 까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천천히 지나가는 흰색 차량!! 나도 모르게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어주시는 교황님... 이렇게 가까이서 교황님을 보다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 올라온다. 교황님 옆에 서서 같이 셀카 찍는 것이 이번 WYD의 목표 중 하나인데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오늘은 B 교구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청년들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았으리라. 미사 때 찬양이 참 좋았다. 역시 청년 성가가 최고다.


오늘 점심은 조별로 식사했는데 어제부터 줄이 엄청 길었던 피자 집을 가보기로 했다. 1인당 피자 한 판을 주는 Pasta Non Basta Avenidas Novas라는 이름의 피자집인데 주문받으면 바로 화덕에 구워서 나온다고 한다. 조원 몇 명만 줄을 서서 피자를 챙겨 오기로 했고 나머지는 돗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다. 혹시나 해서 챙겨 온 방수 경량 돗자리가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

얇은 도우의 피자긴 했는데 양이 엄청 많았다. 너무 맛있었음! 피자 한 판이 치즈가 덜 녹긴 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정성스럽게 바로 구운 데다 순례자들을 생각해서 한 판씩 후하게 주시다니! 어제 분위기 있던 식당에서 나온 치킨랩도 좋았지만 피자 한 판에 비하면 극 다이어트 메뉴였구나 싶다.


유럽이 아침저녁은 선선해도 여름이다 보니 한낮에는 덥다. 습도가 한국처럼 높지 않아서 불쾌지수는 확실히 낮고 따가운 햇살도 견딜 만 한데 8월이라 덥긴 하다. 손풍기를 챙겨 왔는데 작아서 편할 줄 알았건만 의외로 짐처럼 느껴졌다. 단짝이 직접 만들어 선물로 준 부채가 가볍고 유용했다.

오후에는 파티마에 간 팀, WYD 행사 프로그램을 찾아간 팀, 구도심을 보러 간 팀 등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사실 파티마에 가고 싶긴 했는데 우리 조는 나눔을 하기로 했다. Parque Eduardo VII 인근의 Church of Saint Sebastian(Igreja de São Sebastião da Pedreira)에 가서 각자 묵상을 하고 성당 관계자에게 양해를 구해 대성전 옆 작은 휴게실 사용을 허락받았다. 우리 조 신부님의 주도하에 WYD에 어떤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느낀 바 등을 이야기하면서 조금은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이후에는 자유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오늘 오후 약 5시경에는 Parque Eduardo VII에서 교황님 환영식이 있어서 나는 환영식을 보러 가기로 했다. 아침에 운 좋게도 교황님을 봐서 그런 지 우리 교구에서는 간다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환영식에는 인파가 많이 몰리기 때문에 오늘 아침처럼 가까이서 교황님을 보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그 현장의 열기와 분위기가 궁금한 나머지 홀로 공원으로 갔다. 단짝이 같이 있었으면 분명히 가보고 싶다고 했을 텐데 그 조는 아까 파티마로 떠났다. 이미 인파가 많아 멀리서라도 보려고 잔디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는데 공원 주위에 봉사자와 경찰로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었다. WYD 명찰에 쓰여 있는 번호에 맞는 입구를 찾아가서 보안 검색을 지나야 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사람들 사이로 줄을 섰는 데 거의 공원 반바퀴를 돌아야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인파였다. 일단 서서 기다려봤는 데 한 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다. 고민이 됐다. 고민할 것 없이 혼자였어도 기다려서라도 들어갔어야 했는데 편하고픈 유혹에 넘어가 버렸다. 30여분 정도 줄 서서 가다가 돌아서서 나왔다.


공원 옆 El Corte Inglés 백화점 내 마트에서 와인과 과자를 사서 바로 앞에 있는 나무 밑 잔디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교황님이 공원으로 오시는 길에 퍼레이드 행렬을 하는데 이 쪽이 메인 도로라 지나가시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늘도 선선하니 와인을 한두 모금 마시며 교황님은 언제 지나가시나 쳐다보고 있는 데 우리 교구에서 세 명이 저 쪽에서 오고 있었다. 환영식을 보러 왔는 데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하고 나가는 길이라고 한다. 같이 앉아서 도로 쪽을 보고 있는 데 다른 길로 가셨는지 이미 공원으로 들어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갑자기 밀려오는 아쉬움... 여기까지 와서 환영식에 온전히 뛰어들지 못한 찝찝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 모든 여정에서 내가 유일하게 후회하는 순간이다.


우리 조원들도 속속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Garden of the Calouste Gulbenkian Foundation (칼루스트 굴벤키안 정원)에서 모였다. 어제 굴벤키안 미술관 보러 온 곳인데 정원이 엄청 크다. 오리들이 사는데 거의 닭둘기 수준으로 돌아다닌다.

신부님과 조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고기를 먹어줘야 한다며 한국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침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에 감사한 마음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하루였다. 파티마 팀으로 합류하지 않게 됐기 때문에 교황님 환영식을 갈 수 있었는데 그 귀한 경험을 걷어차 버리다니 말이다. 다시 한번 WYD에 참가할 때의 마음가짐을 되새겨 본다.


'모든 순간을 온전히 참여하며 기쁘게 보내자. 비록 힘들고 피곤한 순간일지라도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