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들었던 학교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아침에 모든 짐을 바리바리 접어서 다시 캐리어에 담았다. WYD 다른 순례자들하고 교환한 기념품과 웰컴 패키지로 받은 물품들까지 담으려니 가방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이 보물들은 집에 고이 모셔놨다가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꺼내봐야 겠다.
어느덧 본 대회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오늘은 WYD 행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야외 철야기도에 이어서 다음 날 아침에 교황님 집전의 파견미사를 하고 다음 WYD 개최지를 발표하고 나면 전체 행사가 마무리된다. 교구대회 때부터 2주째 합숙 생활하면서 바닥 취침에 적응한 터라 오히려 설렌다. 철야기도와 파견미사 장소는 Parque Tejo(테주 공원)이다. WYD 행사 중에 가장 많은 인원이 몰리는 데다 다들 침낭 펴고 누워서 자야 하기에 더 큰 장소를 택한 듯하다.
Parque Tejo에서 모이기 전에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단짝과 나는 리스본 테주강 건너편 알마다 지역에 있는 포르투갈 예수상을 보러 가기로 했다. 테주강을 가로질러 북쪽의 리스본과 남쪽의 알마다를 이어주는 4월25일 다리(1974년 독재에 항거한 혁명을 딴 이름)를 건너면 된다. 철야에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 들고 나왔는 데도 나름 묵직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정류장에 내리면 도보로 5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마침내 예수상에 도착했는데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예수상과 받침대를 합치면 약 100미터 정도의 높이다. 바로 앞에는 성모상이 예수상을 마주 보고 있다.
한눈에 내려 보이는 리스본과 4월25일 다리를 보고 있자니 시야가 탁 트여서 좋았다. 여기도 역시나 WYD 순례자들이 많았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기념품 교환도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점심 식사는 구도심에 있는 Time Out Market에서 하기로 했다. 안에 들어가면 과일 가게도 있고 다양한 푸드코트도 있는데 마켓 특유의 북적함이 좋았다. 식사 전에 입맛 돋울 겸 더위도 가실 겸 단짝은 샹그릴라, 나는 롱 아일랜드 아이스티를 주문했다. 피로가 싸악 내려가는 맛! 점심 식사도 너무 맛있었다.
달콤한 휴식 뒤에는 고난이 잇따른다고 했던가. Parque Tejo로 가는 지하철을 타러 역으로 갔는데 이때부터 WYD 순례자들 대이동 때문에 지하철도 몇 대 보내고 겨우 타고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가다가 또 갈아타고 난리도 아니었다. Parque Tejo 바로 근처는 다 폐쇄되어 최대한 가까운 역에서 내렸고 택시를 잡아타려고 했더니 이번에는 도로 통제가 이루어졌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도로 바닥에 앉아서 늦은 점심을 먹는 순례자들도 많이 보였다. Parque Tejo 안으로 들어갔는 데도 정처없이 걸었다. 이 날은 나도 단짝도 바닥에 앉아서 쉬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리고 주최측에서 철야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식사는 키트로 준비해 중간중간 대형 트럭을 비치해 바로 나누어 주었다. 가는 곳마다 줄 서서 기다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다행히 먼저 도착해 있던 우리 조원들에게 연락이 왔고 이미 줄 서서 있던 아이들이 우리 양식까지 픽업해 줬다. 정말 고마웠다.
또 한참을 걷고 서로 끼여가면서 마침내 철야 장소에 도착했다. 선발대로 출발한 우리 교구 청년들이 자리를 맡아두어서 어느 정도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순례자들이 너무 많아 비집고 들어왔기에 곳곳으로 흩어져서 자리를 잡았다.
인파가 엄청나다 보니 화장실에 한번 가기도 힘들었다. 적어도 30분은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 나와 단짝은 화장실에 미리 다녀오려고 갔다가 오는 길에 또 행운을 만났다. 갑자기 모세의 기적처럼 우리 앞에서 통제가 이루어졌는데 우리 뒤로 교황님이 들어오고 계시단다. 두 번째로 교황님을 뵀을 때도 가까이서 봤다며 좋아했는데 이 날은 바로 코 앞에서 교황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봤다. 삼세번이나 뵙다니... 말로 표현을 못하겠다.
마음이 벅차올라서일까. 슬슬 배가 고파와서 주최 측에서 나눠준 일용할 양식을 꺼내 먹었다. 베이글이 진짜 부드럽고 너무 맛있었다. 지금까지 나온 빵 중에 제일 맛있었다. 단짝하고 미리 사온 납작 복숭아도 베어 먹으면서 저녁 행사를 기다렸다.
밤 기도 후 공연이 이어졌다. 모든 순례자들이 밤새 다 함께 기도를 하는 건 줄 알았는 데 그건 아니었다. 밤을 새울 각오로 마음을 굳게 먹고 와서 그런 지 아쉬움이 남았다.
이 날 오후부터 모래 바람이 불어왔는데 침낭 위에 모래가 수북이 쌓일 정도였다. 지금까지 유럽의 맑은 하늘과 공기를 극찬했는데 갑자기 모래 바람이 도대체 어디서 불어오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진입로도 다양하게 확보되지 않아 신발을 신은 채로 서로의 돗자리와 침낭을 밟고 지나다니는 상황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신발을 신고 밟고 다니는 외국인들을 보고 당황했는데 문화의 차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환경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또 언제 해보겠는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인생에서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나와 단짝은 내일을 위해 취침하기로 했다. 모래 먼지 때문에 침낭에 들어가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