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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Oct 23. 2023

일곱 살 아들은 빨리 중학생이 되고 싶다

왜 하필 중학생이 되고 싶을까

오후 내내 외출했다가 돌아와 얼른 집을 간단히 정리하고 아이들 태권도 도복을 포함한 빨래를 돌렸다. 화장을 지우는 동안 애들 아빠가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떠났고, 세수를 마치고 나오자 역시나 소파에 고개를 파묻고 흐느끼는 중인 우리 왕자. 아빠랑 더 있고 싶어, 아빠랑 더 놀고 싶어를 중얼대는 소리가 잦아들기를 옆에 앉아 가만히 기다렸다.


"오늘 동물원에서 뭐 봤어?"

"사자 봤어. 그리고 재규어도 봤어."

"좋았겠네~ 또 뭐가 재밌었어?"

"열차 탔어. 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 우리 어렸을 때도 탔던 거래."

"코끼리 열차 탔나 보네~ 맞아, 어렸을 때도 탔었어."


아마도 그때는 아빠와 엄마가 함께 갔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빠랑만 다녀왔고.


품에 안긴 채로 오늘 리프트도 타고 뭐도 하고 뭐도 먹고 했다는 왕자 이야기를 들으며 그랬구나, 좋았겠다, 맞장구를 쳤다. 즐거웠던 시간을 떠올리자 왕자는 다시 슬퍼진 듯 아빠랑 더 있고 싶다는 얘기를 했고, 다다음 주말이 아니더라도 아빠 쉬는 날 또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 내일 전화해서 물어보자고 했더니 사실은 자기가 이미 세 번을 물어봤는데 아빠가 그냥 2주 후에 보자며 똑같은 대답만 하더라고도 얘기했다.


그에게도 그의 삶이 있겠지. 언제나 그래왔으니.


어린이집 숙제를 할 거라고 엄마 있는 식탁에 와 앉더니 오늘 본 동물 얘기를 하며 그림일기를 그리던 왕자가 갑자기 뭔가 생각한 듯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나 빨리 중학생 되고 싶어."


핸드폰을 사 주겠다고 약속한 2학년도 아니고, 그냥 어른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중학생이 되고 싶다는 걸까. 궁금해져 이유를 물었다.


응, 나 중학생 되면 아빠가 나 아빠 보고 싶을 때 혼자 아빠 보러 와도 된대.

설렘으로 가득한 얼굴을 보며 잠시 마음이 저릿했다.


"그래도 되고, 아니면 한 3학년만 돼도 누나랑 같이 아빠 보러 갈 수 있을 걸? 그럼 아빠도 왕자 반갑겠다."


그러자 왕자가 공주를 냅다 소리쳐 불렀다. 중학생 아니고 3학년만 되어도 아빠 보러 갈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공주 얼굴에서도 빨리 해 보고 싶다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아이들이 잘 자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아이들이 참 기특하고 대견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낮에 내 이혼 사유를 비롯한 여러 가지를 궁금해하던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눴는데 그 사람이 물었었다. 아이들이 아빠랑 친하게 지내도록 하는 게 나중에 아빠한테 보내려고 그러는 거냐고.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긴 했어도 결국은 저를 위했던 결정 때문에 아이들이 이런 일을 겪었고, 아빠랑 따로 살게 되었잖아요. 아이들한테서 아빠를 더 뺏는 일만큼은 정말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어제 OO님한테 엄마 못 보고 살면서 어려서도, 커서도 너무 힘들었다는 얘기 듣고 나니까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잘 하고 있다는 말, 이젠 좋은 일만 있을 거라는 말, 아이들도 크면 엄마의 결정을 이해할 거라는 말, 따뜻하게 건네온 말들이 큰 위로가 되지 않을 만큼 마음 무거운 밤은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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