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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Nov 09. 2024

좋은 이혼이란 무엇일까?

소리없는 아우성, 그리고 좋은 이혼.

   

너는 그래도 좋은 이혼을 했네?

내 얘기를 듣던 친구가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마치 "소리없는 아우성"처럼, “좋다"는 형용사와 "이혼"이라는 명사의 낯선 조합이 뇌리에 박혔다. 우리 둘째는 이번에도 면접교섭을 마치고 돌아와 소파에 한참을 엎드려 마음을 추스렀는데, 이 슬픔의 발단이 된 사건을 과연 좋다고 불러도 괜찮을지 의구심이 들기도 잠시. 끝내 아이를 데리고 이혼할 것 같다며 한탄하던 친구가 걱정을 이어갔다.


당장 집 구하기가 어려운데 아이를 두고 나가면 양육권 다툼에서 불리할까, 애 아빠가 양육비를 안 줄 것 같은데 어떡하나, 회식하면 애는 누가 보나, 하는 걱정을 시작으로 아빠 없이 놀러 가면 아이가 다른 집 아빠를 보고 부러워하지 않을까, 식당에 가서 밥 먹을 때는 괜찮을까 하는 걱정까지. 어쩌면 이렇게도 내가 했던 걱정과 닮았을까, 순간 2년 전 나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물론 우리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친구는 내가 이혼 결심을 했을 때 유일하게 나를 말렸던 사람이다. 당시 세상에는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이 많으니 너무 불행해 말라며 친히 자신의 슬픔을 열어 보였는데, 오히라 미쓰요 씨의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든가 오토타케 히로타다의 <오체불만족>에서나 나올 법한 여러 불행을 듣고 나니 친구의 진심 어린 걱정이 마음에 잘 와닿았고, 고마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생활을 활짝 오픈한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혼했고 가끔 그 친구 생각이 났다. 친구의 카톡 프사가 바뀐 걸 볼 때마다 그때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마음으로 응원했다. 그러다 최근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안부를 물었더니 친구는 이전에 내가 들은 상황이 더 심해졌으며, 아이 때문에 많이 참고 미뤘지만 아무래도 올해가 가기 전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것 같다고 했다.


속이 시커멓게 다 타서 소송할 의지도 남지 않은 친구의 상황을 들으며 나는 그래도 일단 증거를 잘 남겨 두라고 누차 얘기했다. 분노가 언젠가 폭발적인 힘을 다시 가져다 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많이 힘들었지만, 나는 생각보다 많이 괜찮아졌다고 얘기했다.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하지만 생각보다 꼬마들도 나름대로 적응하며 잘 지내고 있다, 나는 이혼을 권할 수도 말릴 수도 없지만 너의 행복을 바란다고도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슬피 울며 괴로워했던 2년 전 그때가 떠올라 맥주를 까 마시다가 나의 또 다른 친구 챗GPT에게 좋은 이혼에 대해 물었다.


이혼 췍!


원활한 소통, 상호 존중, 자녀 우선, 공정한 재산 분할, 법적 협력, 자기 돌봄과 성장. 좋은 이혼의 조건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다 보니 법원에 이혼 접수 서류를 내러 갔던 그날 아침을 시작으로 가슴 아픈 장면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그러다 "좋은 이혼"이란 "소리없는 아우성"처럼 아주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정말 힘들었지만, 이혼 따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지만, 이혼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까.


미리 얘기하자면, 나는 이혼 후 아이 아빠에 대해 가졌던 피해의식을 많이 털어냈다. 피폐했던 예전에 비해 몸도 마음도 많이 건강해졌다. 수면제나 안정제도 이제 먹지 않고(애들이 크면 왜 더 먹지 않았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들도 씩씩하게 잘 데리고 다닌다. 아이들과 여러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이혼 짬밥을 먹은 지난 시간을 헛되게 보내진 않은 모양이다.


이혼하면 우리 아이들은 어떤 세월을 보내게 될까, 걱정하며  미루고 또 미루다 결국 이혼을 결심하는 그 심정을 누가 알까. 그렇게 힘들게 진행한 내 이혼이 좋은 이혼이었다면 그의 협조가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비양육자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10년이 넘는 결혼 생활 동안 그가 남편이나 아빠로서 썩 든든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혼 후 그는 나와 아이들에게 든든한 아빠가 되었다.


보름에 한 번씩 뜨는 반달처럼 아빠는 2주에 한 번씩 아이들을 만나러 온다. 아이들은 그런 아빠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기대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달은 분명히 존재하듯, 아빠가 자신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나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렇게 아빠가 반달이 된 지도 이제 2년, 나는 똥인 줄 알았던 이혼이 된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이전의 일기를 돌아보고 정리하기로 했다. 시작은 아이들이 교통사고처럼 이혼 소식을 들었던 그날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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