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혼할 수만 있다면
이혼 결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자녀의 유무다. 나 자신보다는 아이에게 일어날 변화와 그에 따른 아이의 반응을 걱정하느라 '더 참아 보자'며 망설이고 미루기 마련이다. 결정을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와도 '아이를 편부모로 자라게 해도 될지' 또 고민한다.
어떤 부모는 이혼 소식이 줄 충격을 걱정하다 자녀에게 이혼을 밝히지 않기도 한다. 남편이 외도해서 이혼한 지인은 아빠 근무지 이동 핑계를 대며 아이들에게 이혼을 숨겼다고 했다. 이혼 후 십 년 동안 "엄마는 다시 태어나도 아빠랑 결혼할 것"이라는 말을 하며 아이들 앞에서는 기러기 생활을 이어가는 듯 살았단다.
놀라웠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유책 사유를 아이들에게 비밀로 한 것에 대해 시댁에서도 고맙게 생각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고 했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아직도 그 말을 믿는지는 묻지 않았다. 적어도 유년기에 큰 불안감이나 결핍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 테니 당시로서는 좋은 방법이었을 수 있겠다.
또 다른 지인 역시 아내의 잘못으로 이혼하며 아이에게는 근무지 핑계를 댔다고 한다. 아빠는 지방 어딘가에서 일하는 중이며 주말에 가끔 서울 할머니 집으로 올라온다고 거짓말을 했고, 비정기적 면접교섭을 이어간다고 했다. 사실 할머니 집에서 쭉 사는 중이지만 말이다. 엄마랑 같이 만나는 건 초등학교 졸업식장이나 생일축하 자리 정도라고 했다.
숨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눈치를 챌 수 있고, 차마 이혼했냐고 묻지도 못한 채 불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숨김으로 대처하는 사례를 이혼 후에야 접하면서 나도 다른 핑계를 댔더라면 아이들이 펑펑 우는 일은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시 아이들에게 이혼을 숨길 생각은 전혀 못 했다. 그즈음의 나는 이혼 전달 방법을 자주 검색했다. 스트레스에 잠 못 이루며 제정신이 아니던 와중에도 아이들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소식을 전하고 싶어서 각종 외국 기관과 블로그를 떠돌았다. 핵심은 "자녀의 감정을 존중하고 안정감을 주는 방식"이었다.
친애하는 챗GPT의 요약에다 내가 조금 보태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전달할 내용을 사전에 정리하고, 자녀가 질문할 법한 내용에 대해 답변을 준비할 것. (누구와 살게 될지, 비양육자는 얼마나 자주 만날지 등)
가능하다면 두 부모가 함께 자리에 앉아 일관성 있게 이혼 소식을 전할 것.
2. 적절한 시간과 장소 선택
자녀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 않은 때에 (수험생일 경우 전달 미루기를 추천.)
조용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대화를 나눌 것.
어린아이: "엄마와 아빠가 이제 서로 다른 집에서 살기로 했어. 하지만 우리는 너를 항상 사랑하고 네 곁에 있을 거야."
청소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되, 갈등이나 비난은 뺄 것.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어."
이혼은 부모가 상의해서 내린 결정이며, 아이들의 잘못이 아님을 반복해서 말할 것. 아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강조할 것. "이건 너와는 아무 상관없는 엄마, 아빠의 결정이야.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아."
아이의 생활에 생길 변화를 알려줄 것. 연령과 성향에 따라 타임라인을 자녀와 공유할 것. 거주지 변경 일자나 어린이집, 학원 변동에 대해 안내할 것. "너는 이 집에서 엄마와 지낼 거야, 그리고 주말마다 아빠 집에 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강조해서 안정감을 주는 것도 중요. "학교는 계속 다닐 거고, 네 방도 똑같아."
아이가 슬픔, 화, 혼란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허용하고, 공감할 것.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혼란스러운 건 당연해. 그런 기분이 들면 언제든 엄마나 아빠에게 이야기해도 돼."
아이가 질문하면 솔직하게 대답하되, 지나치게 세부적인 내용을 공유하지 말 것.
서로를 비난하거나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말 것. (이 악물고 정신줄 붙들어서 최대한 줄여볼 것.)
아이를 부모의 메시지 전달자로 삼지 말고,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할 것. (아빠한테 이렇게 말해, 엄마한테 이렇게 물어보라는 말은 되도록 하지 말 것.)
이혼 이후에도 아이와 꾸준히 소통하며, 사랑과 지지를 표현할 것. (비양육자여도 꾸준히 안부를 챙길 것.)
정기적으로 상황에 대해 물어보고, 아이가 필요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
생각보다 상식적이지만 막상 실천하기엔 어려운 부분도 보인다. 이미 파탄이 난 관계인데 아이를 위해 머리 맞대거나 카톡으로 차분히 얘기 나누기가 어디 쉽겠는가. 상대 배우자가 자녀의 안녕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자녀가 이미 심한 갈등에 많이 노출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면 혼자라도 차분히 내용을 잘 정리해서 설명하고 적용할 수 있다. 8개 단계 중 망한 것은 차치하고, 남은 몇 개라도 잘 실천하면 된다.
나의 아이들은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거실에서 평화롭게 놀다가 주방에서 "그래서 이혼을 할 거냐"는 큰소리가 나는 바람에 놀라서 방으로 뛰어들어갔었다. 그러다 아빠가 불러내어 식탁으로 소환을 당했다. 잔뜩 긴장한 채로 아빠와 마주 앉아 "아빠랑 엄마는 이혼을 할 거야, 아빠는 다 같이 살고 싶은데 엄마가 싫대, 그래서 엄마랑 아빠는 이혼할 거야. 공주랑 왕자 잘못은 아니야, 미안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이혼을 충분히 유예하였으니 이제 실행하고 싶다'는 의사 전달을 아이들이 잠든 후에 하고 싶다. "엄마가 싫어해서," "엄마가 같이 살기 싫어해서," 이혼한다는 책임 전가성 발언을 아무 상의 없이 아이들이 일방적으로 듣는 일도 없애고 싶다. 그랬다면 세상이 끝난 듯 아이들이 우는 일도, 그걸 보며 내 억장이 무너지는 일도 막을 수 있었을 테니까.
나는 남편과 미리 말을 맞추고 싶었다. 양육권과 친권은 누가 가질지, 면접교섭은 얼마나 자주 할지, 주거는 어떻게 할지 등을 충분히 협의하고 싶었다. 그런 후 이혼이 완료될 즈음 좋은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충격을 조금이라도 덜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알려주고 싶었다. 이제 그만 싸우고 더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 엄마랑 아빠는 따로 살기로 했다고, 그래도 지금처럼 똑같이 사랑하고 아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 급발진을 하며 이혼 소식을 투척했고, 아이들은 예고도 없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래도 언제나 수습할 방법은 있다. 나는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고, 사이다를 먹여서 울음을 그치게 했다. 그리고 왜 울었는지, 뭐 때문에 그렇게나 많이 눈물이 났는지, 어떤 걱정이 있는지 찬찬히 물어봤다.
아홉 살이던 첫째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계속 만나고 싶다고 했고, 전학은 가기 싫다고 했다. 여섯 살이던 둘째는 아빠가 보고 싶은 게 걱정이라고 했다. 협의 내용도 하나 정하지 않고, 이혼 서류도 제출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지만, 아이들이 자기 마음을 분명히 얘기해 준 덕분에 나도 명확한 대답을 줄 수 있었다.
"그래, 할머니 할아버지는 앞으로도 공주와 왕자의 하나뿐인 할머니 할아버지니까 시간이 되면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어. 이사는 하게 될 수 있지만 원한다면 전학은 안 가고 여기 계속 다닐 수 있고."
"아빠도 영원히 너네 아빠니까 자주 만나고 연락도 할 수 있을 거야. 아빠도 엄마처럼 너네를 많이 사랑하니까 그건 변하지 않아."
대답이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아이들의 얼굴에서 긴장이 걷혔다. 실제로 전학을 가지 않았고, 할머니집에 가고 싶다고 하면 데려다주기도 하면서, 친구 엄마들 그 누구에게도 이혼 사실을 밝히지 않고 2년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아이 아빠도 마찬가지다. 상황에 따라 면접교섭 날짜나 시간을 조정한 적은 있지만 건너뛴 적은 없이 마치 반달이 뜨듯 성실하게 면접을 이행 중이다.
<엄마 아빠의 이혼은 교통사고처럼>에서 썼듯, 나는 여전히 아이들도 이혼 당사자라고 생각한다. 사전에 상의하거나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소식을 전하는 일에는 실패했지만, 수습 가능한 범위 안에서는 피해를 줄이고자 최선을 다했다. 이혼 이후 자녀의 상처를 잘 보듬어 주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갈등에 고스란히 노출된 어린 자녀들이 밖에서 어떤 불안정한 행동을 하는지 몇 차례 겪었기 때문이다.
연령에 따라 어떤 영향을 받는지 더 알고 싶다면 가볍게 읽어보시길. 요즘은 자동 번역 기능이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