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양육자와 비양육자가 하면 좋은 것
협의든 조정이든 소송이든 어른도 큰일을 겪으며 심신이 지치기 마련이다. 제정신은 안드로메다로 보내 놓고 아이들을 잘 돌보기가 힘들 수 있다. 그런데 부모 중 한 명과 집을 떠나게 되든 혹은 부모 하나가 집에서 짐을 빼든, 아이들에게도 별거는 몹시 큰 변화다. 남 탓 하지 않고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순간은 지금부터다.
나는 지인 찬스로 아이들과 호캉스를 하던 도중 애들 아빠에게서 이사 나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어차피 면접하면 또 볼 테니 아이들과는 따로 인사 없이 짐을 빼겠다고 했다. 사담을 나누기가 달갑지 않은 시기였지만 아이들에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던 나는 그냥 사라지지 말고 인사 후 떠나기를 요구했다.
호텔에서 돌아왔을 때 집은 굉장히 어수선했다. 어머니가 보내신 건지, 외국 나가기 전 시댁으로 이사하며 거기 남겼던 옷가지와 잡동사니가 거실에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속상하게도 아이들은 그 광경을 지켜봤고, 방을 비운 뒤 2주 후에 만나러 오겠다며 집을 나서는 아빠를 따라 내려가 작별 인사를 마치고 왔다.
넷에서 셋이 된 이후 처음 맞이한 겨울 아침, 둘째는 내 품을 파고들며 아빠가 보고 싶다 흐느껴 울었고, 첫째는 그 모습을 옆에서 쳐다봤다. 나는 둘째랑 같이 우는 대신 그러게, 슬플 수 있지, 하며 2주 후에 아빠를 만날 거라고 얘기했다. 속상하겠지만 이건 너네 때문이 아니라고도 얘기했다.
이후 나는 가장 먼저 아이들을 태권도에 등록했다. 보육에 난 구멍을 메우는 일이 급선무였고, 한편으로는 소리 지르고 땀 흘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기대했다. 이후에 알게 되었지만 실제로 큰일 겪은 아동에게 우울이나 불안이 올 수 있는데 증상 완화에 스포츠나 미술 활동이 유익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두 번째로 나는 2주마다 반복될 아빠집 방문이 즐겁도록 1박용 짐 수납에 적당한 예쁜 레디백을 샀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좋은 소비였다.)
“와아~ 예쁘다!! 엄마, 이거가 그 선물이야? 나랑 왕자랑 이거 이제 쓰는 거야?”
“어~ 맞아~ 이게 엄마가 얘기했던 선물이야~ 이제 아빠한테 갈 때 공주랑 왕자랑 여기다가 옷이랑 뺀티랑 하루 자고 올 짐 넣고 다니면 돼~ 괜찮은 거 같애?”
“네, 정말 마음에 쏙 들어요!”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아빠집 가는 날 아침이면 옷가지를 챙겨 넣고 닌텐도 같은 것들도 스스로 챙기는 멋진 어린이들로 자랐다. 이것 좀 해라, 저것 좀 치워라 하며 애들을 들들 볶는 것과는 별개로, 잘 지내줘서 늘 고맙게 생각한다.
사실 그동안은 참 보기 싫은 남편이었지만 그런 식으로 그가 해묵은 짐을 남기고 떠난 후 정리하고 청소하기가 참 지쳤다. 이혼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며 심신은 이상하리만큼 고단했고, 수면제와 안정제는 용량을 조금 올려서 복용했다.
아빠가 떠나고 엄마는 지쳐하는 변화를 콤보로 겪은 아이들은 따로 약은 안 먹었다. (인근 아동청소년 상담 센터를 즐겨찾기 추가는 했다.) 대신 나처럼 입맛이 없어 보이길래 밥 준비 수고도 줄일 겸 달콤한 초코맛 첵스라든가 전에는 잘 안 먹였던 가공육, 간편식을 집에 들였다. 나의 세 번째 지출 항목이었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뒤 첫째가 태권도에 다니면서부터—그러니까 아빠 떠난 이후로—맛있는 걸 많이 먹는 것 같다고 날카로운 후기를 남겼다.)
그렇게 지내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아빠집에 다녀온 주말, 아이들이 잔뜩 들떠 아빠가 세면용품과 잠옷, 트램펄린, 장난감 등을 구비한 얘기를 했다. 내 코가 석 자라 그런 생각을 못 했는데 아이들이 앞으로 1박을 잘 지낼 수 있도록 신경 쓴 게 좋았다. 덕분에 고정 준비물이 줄었고, 아이들도 아빠의 새 보금자리에 마음을 더 잘 붙이는 듯했다.
한동안 아이들은 4-5년 된 애착인형을 들고 다녔고, 우리 집에서는 자주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가져갔다. 아빠는 그리기와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미술용품도 구비했고, 놀이를 함께했다. 매일 하는 영어책 읽기를 아빠집에서 할 수 있도록 아빠도 아이패드에 앱을 깔았다. 아이들은 아빠집에서도 그 루틴 하나는 잘 지키고 왔다.
양육 환경에 규칙성, 일관성이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아빠집에선 만화도 더 많이 보고 나랑은 안 하는 게임도 즐겁게 하고 왔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늦게 자는 것을 비롯한 몇 가지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건 아빠와 형성해 나가는 그들만의 고유한 생활 방식이니 존중했다. 한 집에 살아도 엄마와 아빠의 스타일이 다르다는 사실은 아이들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이혼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그렇지 않은 자녀들보다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20프로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세상에 널린 온갖 상충하는 연구 결과 중 하나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암튼 내용인즉슨 자존감 하락, 정서적 불안이라든가 경제적 어려움, 부모의 양육 방식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기여한다나 뭐래나. 이혼 후유증으로 학업 부진이 나타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그러나 모름지기 주의사항은 숙지하라고 있는 것. 부모가 이혼했다고 해서 다 개같이 멸망하라는 법은 없다. 나는 이혼하면 인생이 똥망할 것 같아서도 이혼하기가 무서웠는데 똥인 줄 알았던 이혼이 실은 된장이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된장을 끓여 보자. 차돌박이도 넣고 꽃게도 넣고 두부도 넣고 되는 대로 끓이며 적당히 열심히 살다 보면 뭐가 되어도 똥보다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