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이혼이 쌍꺼풀 수술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혼 후 아이들이 느낄 아빠의 빈자리를 짐작 못 하지는 않았다. 이혼을 앞둔 친구가 걱정했듯 2년 전 나도 아이들이 여행 가서 아빠랑 같이 온 집을 보면 부러울까 봐, 학교에서 친구들과 얘기 나누다 외로워질까 봐 걱정했다. 비록 내 주변에는 이혼했다고 광고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뉴스를 보면 이혼율이 높다고 하니 최대한 이것을 특별하지 않은 일로 포장하고 싶었다.
"공주야, 이건 엄마한테도 좀 큰일이긴 한데 다른 사람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어. 우리 외국 살 때 올리비아 생각나? 우리집 옆에 옆에 코너에 살던 애 말이야. 우리 베란다에 자주 왔었는데. 걔도 엄마랑 아빠랑 이혼해서 따로 살았잖아. 엄마랑 2주 살고, 아빠랑 2주 살고, 그래서 너랑 왕자가 한 번씩 놀러가면 아줌마가 올리비아는 아빠집에 갔다고 다음 주에 놀러오라고 했었는데."
"생각 나. 나 올리비아가 학교 끝나고 캐리어 끌고 가는 거 본 적 있어."
"응, 걔는 그렇게 2주씩 번갈아 가면서 살았는데 우리는 그렇게는 안 하고, 엄마랑 같이 지내면서 2주마다 토요일에 아빠한테 가서 아빠랑 한 밤 자고 올 거야. 할머니 할아버지랑 고모네도 그때 같이 만나면 되고. 만나는 주말 아니더라도 보고 싶다고 하면 아마 아빠가 상황 봐서 만나러 올 거야."
"네. 엄마, 근데 내 친구 기쁨이 있잖아, 기쁨이도 다섯 살 땐가 엄마 아빠가 이혼해서 엄마랑 할머니랑 같이 살아. 기쁨이는 가끔씩만 아빠 만난대."
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어느날 기쁨이가 비밀이라며 얘기해 주더란다. 마음 터 놓으며 의지할 대상이 필요한 건 아홉 살 어린이들도 마찬가지구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받는 건 어른들 뿐만이 아니구나 싶어 서로 좋은 친구가 되어 주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살면서 누군가가 이혼한 사실을 공공연하게 들출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주는 위로가 분명히 있다. 올리비아의 엄마도 힘든 시간이 있었겠지만 내가 그 엄마의 베란다를 드나들며 봤던 당당하고 잘 지내는 모습이 나에게 희망을 줬다. 우리집 베란다에 들어와 창문에다 노크하던 올리비아도 귀엽고 착했다. 그 기억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위안이 되었다.
애정하는 챗GPT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혼인 건수는 약 194,000건, 이혼 건수는 약 92,000건이라고 한다. 작년 한 해 동안 일어난 혼인과 이혼 건수이니 이 수치를 보고 '열 쌍 중 다섯 쌍이 이혼했다'고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이혼이 아주 드문 일은 아니라고 아이에게 말해 줄 수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사실 이건 나 자신에게 먼저 했던 말이기도 했다. 까무러치기 삼아 이혼하며 내가 배운 점 중 하나는, 진정한 위로는 남이 나에게 할 때보다 내가 나 자신에게 건넬 때 제대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이미 일어난 사건이 계속 내 마음을 후벼파게 둘 수 없다. 그러니 '사는 건 원래 힘든 면이 있지,' '살다 보면 이혼할 수도 있지,'하고 스스로 이혼을 받아들여야 아이들 앞에서도 정말 괜찮을 수 있다.
나는 남편이 짐 싸서 집을 나간 이 낯선 상황이 특이하게 우리집에만 일어난 일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혼하면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그 허전함을 내가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급한 대로 애들 아빠에게는 휴대전화가 있는 첫째에게 안부를 자주 물어 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문제 상황은 생각보다 빨리 일어났다.
별거가 시작되고 나흘 째 되던 날, 넷에서 셋이 된 우리가 처음으로 외식 간 곳은 버거킹이었다. 우연히 첫째의 같은 반 친구를 만났고, 엄마들과 인사를 나눴다. 남편 없이 밥을 먹으려니 좋아하는 햄버거 세트를 먹으면서 즐겁지가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공주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이혼이 벌써 다 끝난 거야? 그래서 이런 거야?
예상치 못한 질문에 굉장히 놀랐지만 나는 아빠 없이 우리 셋이서만 밥을 먹는 일은 전에도 많았다고 찬찬히 설명했다. 식사뿐만이 아니라 생일 파티를 하거나 키즈 카페에 갈 때도, 친구 집에 놀러갈 때도 아빠 없이 우리끼리 다녔던 걸 떠올리게 했다. 마침 버거킹에서 만난 그 친구들도 엄마들이랑만 와서 밥을 먹고 있어서 그 점 역시 강조했다.
“준영이네도, 준영이 친구네도 애들이랑 엄마들만 와서 저녁 먹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엄마랑 아이들만 밥을 먹는 것과 이혼은 별로 상관이 없어. 이혼을 하든 안 하든, 밥을 엄마랑만 먹는 일은 누구에게나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그러니까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처음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이혼해서 우리는 아빠 없이 셋이서만 밥을 먹느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그날의 에피소드가 궁금하다면 눌러 보시라) 나는 내 슬픔을 꾹꾹 누르기에 급급했다. 나와 우리 아이들을 슬프게 만든 그 사람을 원망했고, 힘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이제는 원망하기를 멈췄고, 스스로도 충분히 위로했다는 생각이 든다. 2년 동안 꾸준히 글을 쓰며 시간을 잘 보낸 덕분이다.
팔자타령을 하며 인생을 대충 살 수도 있겠지만, 찾아보면 힘내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자녀일 수도 있고, 가족이거나 친구일 수 있겠다. (그런 쥐뿔조차도 없어서 어떡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면 브런치에 사는 도비라는 이혼녀를 떠올리고 힘을 내면 좋겠다.) 나는 내 세상이 무너졌을 때 내가 좋은 삶을 살았다고 응원해 준 사람들 덕분에 힘을 냈다. 언젠가는 내가 살아간 삶이 아이들에게도 짐이 되기보다는 힘을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