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평소에 사이가 적당히 괜찮아야 한다
“도비야, 잘 도착했니?”
눈길에서 차 피하려다 다리를 거하게 분질러 잡숫고 족히 일 년은 고생할 예정인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집에 잘 도착했다고 카톡 했는데도 전화가 왔길래 엄마가 처음으로 주차장까지 못 내려오고 현관에서 작별인사를 했더니 그런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아빠가 니 가방에 봉투 하나 넣어 놓았다고 하시네. 봉투 잘 챙기라고."
미안하면서도 웃겼다. 나는 아빠가 주차장으로 짐 들어주실 때 엄마 화장대에 봉투 넣어 놨으니까 가서 확인하시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내가 드린 봉투보다 훨씬 더 두꺼운 봉투를 조금 들뜨고도 죄송한 마음으로 챙기고선 다음에 돌려 드려야겠다 생각했다. 그래도 얼마가 들었을까 궁금하여 두근두근 봉투를 열어 보았더니 아빠 편지가 같이 들어 있었다. (두꺼움의 일부는 편지 지분이었다.)
참 수고가 많구나.
내가 별 도움이 못 되어
미안하구나.
주님께서 네게 복 많이
주시기 빈다.
2023. 1. 25. 모자람이 많은 애비.
주님이 내게 복 많이 주시려거들랑 애초에 이런 일을 겪지 않게 하셔야지 않겠냐고 아빠는 보지도 못할 댓글을 마음속으로만 달아보았다. 어쨌거나 나를 위하는 아빠의 마음이 참 감사하니, 마음보다 더 소중한 돈은 따로 챙겨 놓고 아빠의 편지도 사진으로 남긴다.
아빠는 내가 자꾸 딱한가 보다. 나 이혼하고 싶다는 소식을 듣고는 서울역에서 사위를 만나 얘기를 하고, 일전에 근처에서 일정이 있어 우리 집에 하루 다녀가면서는 곧 마흔인 딸한테 위로금 봉투를 남기고 갔다. 늙은 아빠도 금융치료가 최고인 줄은 아시는 모양.
이번 구정 때는 시댁에 갈 이유가 없어진 덕분에 곧장 친정으로 가서 잘 지냈다. 사공이 많으면 배에서 싸움이 난다고, 식구들 모여 잔소리들 하느라고 시끄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 순간이 훨씬 많았다.
200키로가 훌쩍 넘는 길을 씩씩하게 운전해서 내려간 나 자신 아주 훌륭하다.
다만 무엇 때문인지 자꾸만 배가 아팠고 (무엇 때문이겠나, 명절맞이 과식 때문이겠지) 맛있는 음식 만들면서, 식탁 차리면서 계속 주섬주섬 집어 먹다 보니 배가 낫다가도 자꾸 다시 아파왔다. 돌아오는 날에도 짐을 챙기며 배가 아프다고 중얼거렸더니 아빠는 계속 아프면 병원에 가 보라고 말씀하셨다. 넹넹 하고 대답은 했지만 애들 챙기고 짐 풀고 출근도 하느라 병원 가는 걸 깜빡했다가 또 배가 아파 결국 약국에 들렀는데 다음 날 아빠한테서 카톡이 왔다.
내가 처음 휴대전화가 생긴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종종 문자로 나름의 좋은 말을 남겨 주셨으니 아빠의 이런 애정 표현은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다. 그래도 최근 들어 새로워진 점이 있다면? 이혼하고 싶다고 전화하면서 내가 생애 최초로 아빠 있는 데서 많이 울었듯 아빠도 내가 이혼하면서 자꾸 대놓고 걱정을 해 준다는 것. 아빠도 이혼하는 딸은 처음일 텐데, 다 늙어서 고생이 많으시다.
참 웃기다. 아빠랑 나는 서로 좋아 죽기는 커녕 집에 있다가 눈 마주치면 고개 절레절레하고 지나갈 만큼 이해하지 못하는 면도 많다. 그래도 때때로 서로 용돈 봉투 챙겨 주고 안부도 물으며 보통의 아빠와 딸 사이를 유지하며 산다. 그러니 비록 같이는 못 살게 되었지만 우리 아이들도 자기들 아빠가 노인이 될 때까지 오래오래 친하게 잘 지내면 좋겠다.
"엄마는 쫌 이상한 거 같애," 하는 말을 셋이서 도란도란 주고받아도 괜찮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