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비 Jan 28. 2023

이혼 중인 엄마가 웃참에 실패했다

아빠집에 간다고 자랑하겠다는 우리 아들 어쩔.



갑자기 남편한테서 연락이 왔다. 아버님 수술 때문에 구정 때도 외가 식구들이랑만 연휴를 보내게 되었으니 하룻밤 정도 자기가 아이들을 볼 수 있다고 말이다.


쾌재를 불렀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하룻밤이 몹시도 간절했지만 아이들 의사 확인이 우선인 만큼 딸아이에게 아빠를 만날지부터 물었는데 뜻밖에도 아이가 달가워하지 않았다. 몇 번 못 봤으니 시간 될 때 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되물었지만 어설픈 설득은 통하지 않았다. 만남을 강제할 수는 없고, 첫째가 안 보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내 입으로 남편에게 전하려니 어쩐지 겸연쩍었다. 아무래도 아빠랑 직접 얘기하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아 남편에게 부녀끼리의 대화를 권했는데 다행히도 통화가 끝난 후 아이는 흔쾌히 아빠를 만나겠다고 했다.


그리고 대체로 별 생각이 없는 아들 녀석(오늘의 문제적 인물)은 아빠 만난다는 소식을 다음날 아침 듣자마자 얼굴 가득 반짝이는 웃음꽃을 피우며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한테 자랑해야겠다, 나 오늘 아빠집에 간다고!

미치겠다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아들 귀에도 들렸을까. 식판 챙기다가 아찔해서 입술을 콱 깨물고 말았다. 아빠집에 가는 게 그렇게 자랑할 일인지도 모르겠고, 그걸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웃음 날 일인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아이에게 물어봤다.


"왕자, 친구들한테 아빠집에 간다고 자랑하고 싶어?"

"응, 멋지잖아, 아빠집도 있고 엄마집도 있으니깐. 차도 아빠차랑 엄마차랑 두 개 있고."


찔끔찔끔 콧바람만 내뿜고 있었는데 무해하기 짝이 없는 꼬마의 대답에 결국 웃음이 빵 터져 버렸다.


울 때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사람은 웃을 때도 눈을 질끈 감고 어깨를 들썩인다.


남편 떠난 다음날 아들 담임선생님한테 말씀드려 놓길 잘했구나 싶었다. 적어도 선생님이 아빠집 소리에 흠칫할 일은 없을 테니까. 아, 나도 흠칫했으니까 선생님도 흠칫하시려나.




"엄마, 근데 왜 자꾸 자꾸 웃어? 무슨 일이야?"

"어어, 그냥, 뭐 웃긴 거가 생각 나서."


아무 일 아닌 척, 대수롭지 않은 척. 그래야 아들만이라도 이혼이 별일 아닌 듯 지나갈 수 있을 테니.


이미지 검색하다 발견한 책.


엄마집, 아빠집이라는 나온 지 20년 된 책이 눈에 띄었다. 킨들에서 읽고 싶은데 생각해 보니 그동안은 남편 아이디 하나를 같이 쓰고 있었다. 내 세상이 온통 이혼인 게 모자라서 전자책 책장마저 이혼을 해야 한다니, 정말 대박이다.







이전 08화 싱글맘 집에서 남편 목소리가 들린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