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이 짬바가 한참 부족한 쫄보일 때
삐- 삐삐삡삐 삐- 삘릴리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는데 남편 목소리가 났다. 흠칫할 새도 없이 곧이어 어머님 목소리도 들렸다. 부츠를 벗으며 고개 들어 집 안을 보기가 겁이 나려던 차, 이내 아이들이 영상통화 중임을 알았다. 다행이었다.
전날 아버님과 통화하다 담당교수가 제주도에 발이 묶여 수술이 미뤄졌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잘 돌아왔는지 예정대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며 남편한테서 카톡이 왔다.
묻지 않은 소식을 알려 주니 고마운지 부담인지 잘 모르겠다.
엄마보다 십여 분 먼저 집에 도착하는 꼬마들에게 할아버지 소식을 알리며 안부 전화해 보라고 퇴근길에 연락했었다. 다만 아이들은 아픈 할아버지보다 할머니한테 전화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 하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딸이 생각보다 똑똑하다), 공교롭게도 마침 남편이 병원에서 아들 노릇을 하는 중이었을 뿐이다.
어째서인지, 이미 나 버린 도어락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어 거실 한구석에 한참을 붙박이로 서 있었다. 다음에 또 연락하자는 어머님의 인사를 끝으로 전화 끊는 소리를 들은 후에야 방으로 들어가 가방도 내려놓고 외투도 벗었다.
나쁜 짓 한 것 하나 없는데 순간 경찰 마주친 범인이 된 것 같았다.
이혼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사건이다. 분명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는데 엄청난 해방감을 느끼다가도 때때로 이게 맞는 건지 의문이 생긴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전에도 아이들과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미리 연락한 후) 냉장고에 먹거리를 넣어 뒀었고, 자기가 아이들을 돌보는 날이면 자동차 키를 가져가 카시트를 옮기기도 한다. 어린 자녀가 있기 때문에 이혼해도 남이 될 수는 없는 사이인 만큼 더는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고 싶은데 여전히 마주하기가 달갑지 않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