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떠난 다음날, 나는 싱글맘이 되었다.
이상하다. 아침에 혼자 애들 챙겨 보내는 익숙한 일이 갑자기 낯설어졌다. 달라진 건 남편이 완전히 떠났다는 사실 뿐. 아홉 살 첫째가 혼자 식빵 구워 아침밥 챙겨 먹으며 밀리의 서재를 듣는 동안 나는 아이가 들고 다니는 보온병에 따뜻한 레몬티를 챙겨 줬고—원래는 물을 넣어 주지만 그땐 왠지 특별한 걸 주고 싶었다—첫째가 나간 뒤 아직 잠옷 바람인 코찔찔이 둘째도 등원 준비 시키려는데 아이가 어쩐지 평소와 달라 보였다.
“왕자, 피곤해? 아빠가 없어서 기분이 좀 그런가?”
“아니, 괜찮아.”
목소리에 영 기운이 없었다.
“안 괜찮아도 괜찮아. 안 괜찮아도 돼. 조금 슬픈가?”
“엄마랑 아빠랑 다 같이 보고 싶기는 해.”
‘긁어 부스럼’이 이런 걸까. 괜히 물었다.
“아빠 볼 거야. 주말에 아빠 연락 올 걸? 그리고 아빠 보고 싶으면 엄마한테 말해. 아빠 시간 되나 확인하고 만나면 되니까. 알겠지?”
“응. 그럴게요.”
청개구리처럼 말도 참 안 듣는 둘째가 그러니 어쩐지 더 짠해서 품에 꼬옥 안고는 대단히 앙증맞지도 않지만 여전히 몹시도 귀여운 꼬마 등짝을 토닥이는데 어머나 세상에나, 왜 갑자기 젖이라도 도는 듯 가슴이 찌릿찌릿한 걸까.
당황했다. 학교 가던 첫째 뒷모습도 오늘따라 슬퍼 보이더니, 왠지 모르게 처량한 아이들 때문에 진작 다 닳아 없어져가던 모성애라도 솟구치는 걸까. 젖가슴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몇 년 만에 드는 그 느낌이 참 뜬금없고 낯설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아이들을 잘 돌보고 싶었는데 그건 내 기억에 없는 일이니까. 지금 내가 영끌하여 낼 수 있는 건 그 옛날 애기들 젖 먹이던 힘인가 보다.
집에 젖먹이 아기도 없는데 육아가 새롭고 버겁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엄마 아빠를 다 같이 보고 싶다는 둘째의 말을 듣고 등짝을 토닥이며 나는 사실 내 마음도 같이 토닥였다.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그때도 지금도 혼자 돌보기는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남편 떠난 다음날 이상한 경험을 하고서 글로 남겨둔 지 거의 두 달이 지났고, 구정 연휴 동안 전력을 다해 쉬면서 연거푸 과식한 뒤 양심 좀 챙겨 보겠다고 같이 산책을 나선 동생이 내게 물었다.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양육권을 왜 아빠한테 안 줬어?
남편이 떠났지만 이혼이 마무리 되진 않아서 양육비를 안 받고 있다는 말을 듣더니 그런다. 피붙이가 혼자 애들 돌보느라 허덕이는 꼴을 보고 동생이 속상해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무엇보다도 얘는 우리집에서 내가 양육비를 얼마 받기로 했는지 아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고. (너무 한심해하길래 다른 식구들에게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게. 양육권을 왜 내가 가져왔지? 내가 왜 그랬을까.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안 데려올 걸 그랬나. 근데 나도 모자란 게 많은 사람이긴 한데 남편한테 맡기면 결국은 시어른들 도움을 안 받을 수 없을 테고,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건 좋지 않아. 그리고 남편이 직접 키우면, 단점이 많아. 내가 데려오는 게 그나마 차악이었달까.”
눈을 마주치자 위로라도 하려던 거였는지 동생이 내 등을 툭 하고 치는데, 나려던 힘은 도로 들어가고 눈물이 대신 나려는 것 같았다.
미안하게도 동생의 걱정은 크게 도움 되지 않았지만 딸아이가 서술한 답을 보고 힘이 났다.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부디 그 어린것이 뇌즙을 짜서 쓴 답은 아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