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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Feb 04. 2023

이혼할 때 감당해야 할 색안경

요즘 내 세상은 온통 이혼이랄까.


맛있는 걸 먹으면 행복이 차오르는 게 티가 많이 나는 편이라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먹을 걸 잘 받곤 한다. 엊그제는 일하다가 반가운 말차라떼가 쓱 하고 들어오길래 나도 모르게 돌고래 비명과 물개 박수를 발사했는데, 말차라떼를 주신 그분은 아마도 유일하게 내 상황을 알고서 아이들이 태권도에 잘 다니는 지금까지도 나의 칼퇴를 용인하는 고마운 분이다.


어제는 점심 먹고서 카페라떼를 무려 벤티 사이즈로 받았는데 (세상에, 후식인데 라떼를 벤티로 주문해준 사람이 있다!) 좋아하는 쿠키까지 받는 바람에 기분이 한껏 좋아져서 이래서 살을 못 뺀다고, 두 달 동안 3키로가 불었어요, 하고 주접을 헤헤 떨었더니 하나도 안 쪄 보인다고 했다. 요즘 뭘 잘 먹어서 그런가 보다 했더니 그분이 갑자기 혼잣말하듯 조용한 목소리로,


뭔가 허해서 그런가?


마스크 위로 얼른 손을 갖다 댄 걸 보니 아차 싶으셨던 거다. 나도 재빨리 마스크가 따라 내려올 만큼 입을 쩍 벌리고 눈은 최대한 도른도른하게 뜨며 말했다.


“어어~~ 색안경, 색안경~~ 안 되는데~ 그런 발언 안 되는데에에~~"


허해서가 아니라 입맛이 좋아져서 그런다고 응수하고서는 같이 입 틀어막고 코 먹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렇게 유쾌하게 잘 넘어갔다.


원래도 달다구리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요즘 들어 간식을 불쌍한 우리 아이들 취향에 더 맞게 챙기느라 그런 줄 알았다. 반찬에 신경을 덜 쓰면서 예전보다 빨간 고기를 더 많이 먹어서 그런 줄 알았다. 아이들 잘 준비가 끝나면 나가곤 하던 산책을 못 나갈 때가 많아져서 그런 줄 알았다. 근데 얘기를 듣고 보니 어쩌면 정말 허해져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모르겠다. 살이 빠지면 빠진다고 또 힘들어서 그런갑다 그러겠지.


하지만 이왕이면 찌는 것보단 빠지는 쪽이 낫겠다. 깔깔깔.


이러나저러나 기승전 이혼인 나의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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