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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Feb 21. 2023

엄마가 집에 오다니, 최악이다

시어머니 오는 것만 싫을 것 같았던 지독한 착각.

나의 멱살을 다시 약에게 맡겨야 하나 싶은 나날이 이어지는 요즘. 특별히 더 묵직한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하다가 올해 고작 10살이 될 뻔한 딸아이 혼내면서—라고 쓰고 화내면서라고 읽는다—"너는 왜 엄마 말을 안 들어!!" 라고 말했는데 딸아이 대답이 정말 가관이었다.


엄마 말 들을 마음을 안 먹어서 그래!!

차라리 자기가 어려서 그렇다고 하면 덜 기가 찼을 텐데, 차라리 엄마도 외할머니 말 안 듣지 않냐고 했으면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되었을 텐데, 단지 자기는 내 말을 들을 의사가 없다고 하는 말을 듣노라니 부글부글 화가 나서 제정신이냐며 꼬마 팔이랑 등짝을 후려쳤다.


누가 내 등도 후려치며 제정신이냐고 물어봐 달라. 아니라고 대답한 후에 뭐가 제정신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련다.


그 와중에도 아주 순진해서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엄마 말을 잘 들을 수 있다고 믿으며 슬피 우는 아이를 보노라니 나도 울고 싶었다. 미안하다고, 엄마가 여러 번 말했음에도 니가 엄마 말을 안 들은 건 분명 잘못이지만 맞은 건 니가 잘못해서가 아니라고 미안하다 사과한 뒤 방에 들어가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언니가 감기 걸렸냐고 아프냐고 물었다. 우느라고, 내가 너의 소중한 조카에게 손찌검을 해서 괴로워서 운다고 고해성사를 하고선 힘들다고 잠시 앓는 소리를 했다.


출근해서도 아이 울던 생각이 나서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저녁 먹을 것도 해 둔 게 없고 칼퇴도 못해서 취킨을 시간 맞춰 시켜둔 날인데, 호르몬의 노비가 된 힘든 몸과 마음을 이끌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남의 구두가 보였다.


순간 이게 뭘까 하고 들어가다가 세탁실에서 나오는 엄마를 봤는데, 세상에, 정말 눈곱만큼도 안 반가웠다. 


"엄마가 왔어? 다리 분질렀는데 어떻게 왔어? 언니가 뭐라고 했구나?"


언니가 프락치가 아니란다. 원래도 다리 풀면 여기부터 오고 싶었단다. 좀 전에 막 도착해서 공주가 문 열어줬단다.


우리 집이 무슨 제주도인가. 어째서 엄마는 두 달 감았던 다리 깁스를 풀자마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좋은 곳 다 놔두고 어머님한테서 날붙이가 날아오는 바람에 남편과 내가 깜짝 놀라 급히 도망 나온 집으로, 그런데 사위가 있었는데 없어진 그 집으로, 꼬마 둘 혼자 보면서 살림도 하려니 버거워서 최소한의 정리와 청소만 하고 사는 집으로, 양육비 마무리만큼이나, 끝나가는 내 결혼생활만큼이나 구질구질한 우리 집으로 찾아왔을까.


"아니, 올 거면 말이라도 하고 오지...... 오는 줄 알았으면 청소라도 했을 텐데."


엄마가 우리 집에 오다니, 이보다 최악일 수 없다. 살면서 가장 엄마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면 그건 바로 오늘. 나는 딸이 손녀딸을 손찌검하고는 엉엉 울더라는 소리를 듣고 캐리어까지 끌고 힘들게 올라온 노모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몹쓸 딸이어도 괜찮을까. 이미 몹쓸 엄마로 일용할 괴로움을 다 채운 줄 알았는데 오늘 몫의 괴로움이 아직 더 남아 있었다. 


이혼 중인 딸이건, 이혼 중인 딸을 둔 노모이건 모두 다 처음 겪는 일이긴 마찬가지. 엄마도 나 만큼이나 많이 괴로우실 텐데. 애들 있을 때는 그래도 눈치껏 눈물도 흘리고 끄윽끄윽 이불 덮어쓰고 울기도 했는데, 집에 엄마가 와 있으니 눈물 한 방울 마음 편히 흘릴 수 없어 구슬프려던 차, 때마침 약속 날짜를 잡던 친구에게서 푹 쉬라는 카톡이 와 있었다.


나는 언제 푹 쉴 수 있을까, 답이 없는 질문을 또 했다.


내가 외국 사는 동안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전에 하셨던 얘기가 생각난다. 손주가 아무리 예뻐도 내 딸 고생 시키는 손주는 하나도 안 예쁘다고. 우리 엄마도 오늘 내가 했던 양치하라는 잔소리, 들어가서 누우라는 소리소리 잔소리를 듣고 우리 아이들이 미워졌을까. 어떡하나, 내일 아침은 또 어떡하나, 하필이면 초코 첵스도 똑 떨어지고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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