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작고 소중한 내 이혼 당사자들
남편이 달라졌다. 부탁도 안 했는데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갖다 버렸다. 전에는 잘 하지 않던 일이다. 세탁기와 건조기도 돌려놨다. 같이 살면서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심지어 내가 돌려놓고 꺼내지 않은 세탁물을 꺼내어 개켰다. 저녁 먹은 후엔 아이들과 놀아줬다. 코팅지를 붙이고 가위질을 했다. 종이접기를 했다. 첫째가 아홉 살이 된 해였다. 왜 이제야 그러는 걸까 슬펐고 원망했다. 어쨌거나 그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았다.
약을 먹은 지 3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몇 년 만에 친구들이 모이면서 나에게도 연락이 왔다. 1년도 더 된 내 귀국을 알렸고, 부부 사이의 일을 남들이 아는 걸 꺼렸던 남편 때문에 오랫동안 밖으로 샌 적 없던 어떤 사건들을 말했다. 모두가 놀라길래 그간 내 힘듦이 비정상이 아닌 줄을 알았다. 남편을 이해하며, 그가 살고 싶은 삶을 살도록 지지하고 도우며 살아온 삶이 얼마나 지리멸렬했는지도 그제야 볼 수 있었다.
복용량을 조금 올리다가 어린이집 행사까지 단란하게 다녀온 후 어느 저녁 그에게 다시 물었다. 여보는 우리가 이렇게 계속 사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냐고, 이런 결혼생활도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냐고. 내 질문이 아주 뜻밖이라는 듯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이런 생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껍질만 남은 이 삶이? 모든 게 내 책임이라더니 뒤늦게 노력하는 삶이? 아니면, 이혼한 아저씨가 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그렇구나, 여보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놀랐다. 아이들 문제가 아니면 시선 교환조차도 없이 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혼을 지속하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다니.
저녁 먹은 그릇을 치우며 나는 이런 생활에 의미가 없다 생각한다고 나직이 말했다. 허울뿐인 거짓 같다고, 그러니 해가 바뀌기 전에 그걸 진행하고 싶다고. 지난여름 내 이혼 요청이 갑작스럽다며 노력하고 받아들일 시간을 달라던 그의 부탁도 들어주었다고.
나는 계속 "그거"라고 말했다. 전에 내가 말한 그거, 그때 스타벅스에서 우리 얘기했던 그거, 그거를 슬슬 진행하자고 말이다.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던 남편은 정확히 뭘 말하는 거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예상 못한 반응에 할 수 없이 divorce라고 재차 말했지만 외국 가서 공부했던 그가, 디볼스가 뭔지 모를 리 없는 그가 우리말로 말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아이들이 있어서 그런다고, 내 말 다 알아듣지 않냐고 묻자 결국 본인이 직접 이혼이라는 단어를 밖으로 꺼냈다. 지금 이혼하자는 거냐고. 나는 어, 하고 대답했다.
거실에서 놀던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화가 많이 난 듯한 남편은 자신은 이혼을 원하지 않으며 아이들한테도 이혼이 전혀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전적으로 내가 원하기 때문에 이혼을 하겠다며, 이번 주에라도 법원에 가자고 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로 아이들을 불러내어 식탁에 앉혔다.
"공주야, 왕자야, 엄마랑 아빠는 이혼할 거야. 아빠는 안 하고 싶은데, 아빠는 공주 왕자랑 다 같이 살고 싶은데, 엄마가 아빠랑 살기 싫대. 그래서 엄마랑 아빠는 이혼할 거야. 공주랑 왕자 잘못은 아니야, 미안해."
두 아이가 나란히 앉아 그렇게 엉엉 처우는 모습을 나는 그날 처음 봤다. 쉽게 못 그칠 울음이었기에 그만 울라고 다그칠 엄두도 못 냈다. 아직 접수도 하지 않았고, 접수 후에도 숙려기간 3개월이 지나야 절차가 마무리되는데, 차근차근 준비한 후 말해도 됐었는데 꼭 그렇게 급발진을 해야 했을까. 어린아이들에게 포르노 틀어주듯 맥락도 없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야 했을까.
아이들이 몹시 안타까운 와중에도 나는 억울했고, 화가 많이 났다. 왜 그렇게 설명하냐고, 당신 잘못이 선행하지 않았냐고, 애들도 여보랑 안 놀고 싶다는데 왜 앞뒤 다 잘라먹고 내 탓으로 만드냐고 물었지만 남편은 아랑곳 않았다. 자기도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은지 다 찾아보고 설명하는 거란다. 아직 우는 애들을 굳이 다시 불러내어 너네는 아빠가 정말 싫으냐고 묻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저 목 놓아 울기만 했다.
그래, 내가 요구한 이혼이다. 내가 남편이랑 살기 싫어 요구한 이혼이 맞다. 그래도 그게 내 잘못은 아니다. 남편은 내 첫 남자친구였고, 물리적 폭력은 없었지만 나에겐 방화벽 같은 가스라이팅 가해자였다.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많지만 나는 선천적, 후천적으로 남의 필요에 잘 맞춰 주는 사람이고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소중한 이에게서 '너가 그렇게 하면 내가 피해를 봐, 너가 바라는 소박한 행복을 누리면 나는 망해' 라는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그에게 벌어진 여러 불행이 다 내 탓이라고, 내가 더 잘 버티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와 나의 그런 못된 습관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싶었다.
긴 시간, 원인 모를 갑갑함 속에서 살아왔다. 이제라도 본성을 거스르는 큰 결심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엄마 때문에 이혼하는 거라니. 분명 더는 모든 게 내 탓이라 하지 않겠다고 편지에 썼던 남편이었다. 수개월 지난 후에도 견딜 힘이 없는 내가 여전히 우리 결혼을 파탄 낸 원인이라니. 사람이 안 하던 빨래를 돌리게 되어도 바뀌지 않는 면이 있었다.
왜 이혼을 그렇게 설명하는지 남편에게 따지려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고스란히 충격과 공포에 노출되었다. 이런 식으로 엄마의 결정을 알리고 싶진 않았다. 가까스로 미움받을 용기를 냈고, 썅썅바 여자가 될 각오도 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미 다 엎질러진 물. 하던 말을 멈추고는 사이다와 맥주 한 캔씩을 챙겨 들고 아이들 외투도 입혀 밖으로 나왔다.
미안하다고,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엄마가 아빠랑 같이 안 살고 싶은 건 그동안 힘든 게 많았어서라고, 알다시피 엄마는 웃긴 사람인데 아빠랑은 웃을 수가 없게 되어서, 자꾸 괴로워서, 앞으로 공주랑 왕자랑 웃으며 살고 싶어서 그런다고 말했다.
산책하며 조금 진정된 아이들의 울음을 사이다로 꼼꼼히 달랜 다음 반드시 필요했던 일을 했다. 공주와 왕자가 왜 그렇게 많이 울었는지, 뭐가 제일 슬픈지, 뭐가 제일 걱정되는지 얘기를 들어야 했다.
공주가 먼저 말했다. 우선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계속 보고 싶다고, 그리고 두 번째로는 전학 가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아아, 세상 모든 걱정에 대한 답이 이렇게 분명하고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걱정 말라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공주와 왕자의 하나뿐인 할머니 할아버지이니 서로 시간이 된다면 지금까지처럼 얼마든지 계속 만날 수 있다고 알려줬다. 이사를 하게 될 수는 있지만 원한다면 지금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아이의 얼굴에서 긴장이 걷히는 게 보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한결 편해진 얼굴로 공주가 덧붙이더라, 근데 친구들한테는 아직 엄마 아빠 이혼하는 거 안 말하고 싶다고.
재채기만큼이나 막을 수 없는 게 또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꼬마의 입이다. 엄빠의 이혼을 스스로 비밀 삼고 싶어 한 아이의 마음을 알고 나니 더 미안했지만, 그래도 그건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하면 된다고 얘기했다. 딱히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굳이 마음 불편해하며 꽁꽁 숨길 일도 아니라고 인식하기를 바랐다.
여섯 살 왕자는 아빠가 보고 싶은 게 걱정이라고 했다. 여기에도 다행히 진정성 있는 대답을 해줄 수 있었다. 따로 살게 되어도 아빠는 하나뿐인 소중한 아빠니까 계속 종종 만날 거라고, 아빠도 공주와 왕자를 아주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고 알려줬다.
이 모든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대체 아이들이 이혼 얘기가 나오자마자 혼비백산하여 방으로 뛰어들어간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분명 이혼이 뭔지 아는 게 틀림없었다. 사이다 한 캔을 다 비우고서야 아까 왜 그랬는지 물었는데 헬로카봇 만화에선가 이혼이 나왔단다. 그러면서 공주 한다는 말이 이혼하려면 무슨 서류를 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처량 맞게 눈물 찔찔 삼키며 맥주 까서 마시다가 엄마보다 한참 더 야무진 공주의 질문에 웃음이 나온 나란 사람. 요즘 만화에는 정말 별 얘기가 다 나온다.
잊을 수 없는 끔찍한 밤이었지만 그 일 이후 꿈처럼 일사천리로 법원에 다녀왔다. 이혼에 한걸음 더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