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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Apr 11. 2023

남편이 이혼하러 가자고 했다

18. 법원 가는 길


남편이 아이들을 식탁으로 불러 모아 엄마가 아빠랑 같이 살기 싫다고 해서 이혼할 거라고 했던 날, 아이들이 그칠 줄 모르는 울음을 쌍으로 처 울었던 날, 차라리 땅이 입을 벌려 나를 삼키기를 바랐던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아빠와 저녁을 먼저 먹은 아이들이 퇴근한 나를 맞아 주었고, 나는 식사 후 방에 들어가 쉬고 있었다. 남편이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더니 말했다.


내일 아침에 가요.

“어딜 가요?”


내가 물었다.


“그거 하러 법원에 가요.”


그거.

그러니까 이혼을 하러 가자는 뜻이었다. 내가 그거, 전에 스타벅스에서 얘기했던 그거, 디볼스, 온갖 말로 둘러 얘기할 때는 집요하리만큼 정확하게 말하라고 요구했던 그 사람. 정작 자신의 입에 그 말을 올릴 때가 되니 옆에 아이들도 없는데 이혼이라는 말 대신 "그거"를 접수하러 가자고 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요, 하고 대답하니 그는 나에게 신분증을 챙겨야 한다고 했다. 서류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했다. 다른 필요한 일은 자기가 알아봤다고 했다. 닫힌 문 뒤로 그의 얼굴이 사라졌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내 가죽을 벗겨 커다란 북이라도 만들고 싶어질 줄 알았던 그날이.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낸 후 우리는 스타벅스에서의 그날 이후 처음으로 식탁에 마주 앉았다. 종이를 두 장 출력해 오더니 법원에 가면 우리는 이런 서류를 이렇게 채워서 넣으면 된다는 설명, 그리고 양육비와 재산분할에 대해서는 본인에게 책임에 있는 만큼 이렇게 분할하겠다는 설명을 했다. 그의 최선이었다.


조목조목 짚어가며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는 스타벅스에서 마주앉았던 그날 그 손가락처럼 또 떨고 있었다.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나에게 주겠다는 말,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내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했던 변호사님의 위로를 떠올렸고, 내 죄책감의 9할은 남편 몫이니 내가 너무 괴롭지 않으면 좋겠다던 친구의 바람을 떠올렸다. 무섭게 두근대기 시작한 심장을 그 말들이 차분히 붙들어 주었다.




내 이름으로 된 가족관계증명서와 혼인관계증명서를 발급받으러 주민센터에 들렀을 때였다. 직원분에게는 대단한 별일을 겪는 중인 세상 심각한 얼굴로 발급 신청을 했는데, 서류를 챙겨 넣고 조수석에 타면서 눈에 들어온 별것 아닌 풍경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농담이 나오려고 했다.


농담이라니, 남편에게 농담이라니. 남편과 나, 우리 둘 뿐인 자리에서 농담을 한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다. 숨 쉬듯 우스갯소리를 곧잘 하는 나인데, 남편과 농담 없는 사이로 한참을 살았었다. 그러니 이혼하러 법원 가는 길에 뜬금없이 나오려던 그 시답잖은 농담이 너무도 낯설었다.


왜 하필 그 순간이었을까. 어째서 서류 준비를 끝내고 법원으로 향하면서 농담을 할 뻔했을까. 참 어이없었던 찰나의 농담을 꿀꺽 삼킨 후 나는 이내 눈물도 삼켜야만 했다. 자칫 소리로 나올 뻔한 그 농담에서 죽어가던 원래의 내가 생기를 되찾는 모습이 보였다. 갑갑했던 내 숨통에 이제야 작은 창이 생기려는 것 같았다.


살고 싶었던 본능만이 달가워한 법원 가는 그 길은 조용한 슬픔의 강이었다. 차 안은 무거운 공기로 가득했고, 그의 표정도 내내 굳어 있었다. 우리가 반드시 맞닥뜨려야 할 이 사건은 기다려온 나에게도, 외면해온 그에게도 여전히 제대로 직면하기 힘든 일이었다. 돌아올 수 없는 강 앞에 다다르자 열심히 살아온 내 십여 년 결혼 생활이 더없이 우스웠고 덧없어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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