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고독 Prologue
외근직 종사자의 평일 점심은 대부분 혼밥이다. 이것이 내가 자칭 타칭 '고독한 미식가, 신윤'인 이유지만, 친구는 나의 혼밥 인증샷이 본인의 힐링이라 칭송하지만, 사실 미식가라기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맛집을 찾아가는 노력, 음미하는 노력, 평가하는 노력 등등... 미각도, 후각도 그리 섬세하지 못하다. 요즘 뜨는 먹방 유튜버들처럼 대식가 스타일도 전혀 아니다. 음식에 대해 자랑할 일이라곤, 여고 시절 축제 때 요구르트 10병 빨리 먹기 대회에서 최단 기록을 가진 것이 전부다. 이 역시 순간적인 승부욕에서 발동된 순발력일 뿐...
나는 그저 우리의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먹는 행위'로부터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이 전부다.
본론으로 돌아와, 주중에 이루어지는 혼밥의 9할은 동선상 가장 편한 식당에 들어가서 대충 끌리는 메뉴를 선택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식사 시간 내내 입 속의 음식물보다는 머릿속의 잡념을 음미한다. 맛 평가 역시 잡념의 일부일뿐이다.
솔직히 '고독한 미식가'에서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는 '고독'이다. 별명을 바꿔야겠다. 여태 주객이 전도된, 잘못된 표현을 쓰고 있었지 뭐야.
나의 평일 점심시간은 '맛있는 고독'이다.
월요일의 점심은 깔끔한 분식집의 등심 돈가스를 선택했다. 많은 생각이 짧게 스쳤다.
1. 돈가스로도 튀김은 충분한데 왜 사이드로 해쉬브라운이 나온 걸까?
2. 양배추를 더 달라고 하면서 '양배추를 좋아해서요.'라고 덧붙였는데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마카로니는 개인적으로 불호에 가깝다. 예전부터 궁금했다. 왜 돈가스에 마카로니가 따라오는 거야?
4. 중국산 김치를 자주 접해 버릇해서 그런지, 분식집 메뉴에는 중국산 김치가 제법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갓 담은 생김치나 아삭한 겉절이가 나오면 오히려 생경하고 당황스럽다.
5. 양배추 좋아한다며 더 달랬는데, 소스를 너무 많이 뿌려주셔서 소스 묻은 부분은 고스란히 남겼다. 문득 참
까다로운 어른으로 성장했구나 싶다.
물론 돈가스는 다 해치웠다. 중국산 김치도, 싱거운 우동 국물도, 해쉬브라운도...
그렇다.
속으로는 이렇다 할 궁금증과 불평이 많은데도 결국 조용히 주어진 것에 충실한 사람에게는 '미식가'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다. (끄덕끄덕)
하지만 나는 혼밥의 고독도 '맛있게' 즐기고 싶다. 평범한 맛도 '맛깔나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게 위장(胃腸)에서 시작해 누군가의 위안(慰勞)이 될 수 있는 '맛있는 고독'을 기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