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양념무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신윤 Jun 18. 2021

꽃이 선물해준 마음

양념무상 Ep 02

친구들에게 선물할 꽃을 직접 골랐다. 후룩스와 아미초, 솔리를 섞었다.


교복 입고 다닐 때에는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넉넉하게 받고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가 부러웠다.


대학에 들어가니 뚜렷한 취향과 진로를 바탕으로 미래에 열정을 지피는 친구가 멋있어 보였다. 인기나 친목을 뒤로한 채 고독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그들에게서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고, 그걸 핑계 삼아 다가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소위 명문대를 나온 데다 입사하자마자 프로의 여유가 느껴지는 똑똑한 동료들이 눈에 자주 비쳤다. 내가 공부를 등한시하고 젊음을 즐길 때, 그들은 ‘하기 싫은 일을 참고 견디는 내공’을 이미 10년간 축적한 것이 보였다. 내가 그 격차를 따라가고자 노력해서 어쩌다 좋은 성과를 내어도 결국 ‘노력 없이 모의고사 점수만 잘 나오던 열아홉 시절’처럼 한시적일 뿐이었다.


서른 즈음엔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깊은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치열한 고민에 빠졌고, 때로는 사랑을 할 수 없는 불구의 몸이 돼버린 것 같아 좌절했다.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나의 사랑을 무한히 주고 싶은 사람, 그 사랑을 투명하게 온전히 받아줄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을 왜 느끼냐는 마냥,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샘나기도 했다.


오늘은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사람, 주변을 돌아보고 베푸는 사람을 동경하고 존경한다. 감사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았다. 더 가진 사람을 오래 바라보면 목이 아프고, 더 잘하는 사람을 좇다 보면 다리가 찢어질 수 있다는 걸 느지막이 깨달았다. 내게 이미 주어진 것이 많았고 작게나마 성취한 것들이 분명 존재하며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 고. 있. 다.


감사를 알고 샘을 모르는 사람은 얼굴에 태가 난다. 관계를 계산하지 않고 반응을 예측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확실히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남에게 쉽게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기대한다. 다만, 변화할 나를 기대한다. 진심일 나를 기대한다.

남은 생도 그저 꽃을 주고받고, 그 작은 꽃 한 다발에 서로 마주 보며 환히 웃을 수 있다면 그만일 뿐이라고...

누군가 내게 꽃을 준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누군가를 위해 꽃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애틋한 일인가. 마음과 주머니에 여유가 없다면 우리는 꽃을 ‘그깟 꽃’이라 부르며 한없이 인색해질 수 있는 인간인 것이다.



내가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도 이 마음을 간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커리어를 잘 유지하며 일하는 여자,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엄마, 경제적으로 성공한 남편을 둔 아내, 부모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동년배에게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묵묵히 살고 싶다.


그저 꽃을 선물할 수 있는 마음의 평화와 소박한 여유가 존재하길...

가진 것에 감사하고, 주신 것에 감사하고, 줄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길...

매일을 이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없을지라도 잊지 말고 잘 살라며 찾아오는 깨달음을 그때, 그때, 가슴에 안고 살아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찬미 주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