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여자 체조 경기를 보며
어젯밤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체조 도마 결승 경기를 보았습니다. 상상을 넘어선 현란한 몸동작과 각기 다른 개성으로 아리따운 선수들을 보며 눈이 즐거웠는데요. 경기를 보다가 무척 인상 깊은 순간을 마주했습니다.
자신의 차례가 되어 올라온 선수들은 무척 떨리는 듯한 모습으로 심호흡을 하고 입술을 달싹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덩달아 가슴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잠시, 한 선수가 두 팔을 새처럼 우아하게 활짝 펼치며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게 아닌가요. 그리고는 이윽고 진지한 얼굴로 돌아와 힘껏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경기는 고작 3초 남짓. 그만 착지에 실수했지만, 아쉬운 마음을 감출 새도 없이 다시 2차 시기를 위해 제자리에 섭니다. 감출 수 없는 속상함과 긴장이 두려움이 언뜻 보이지만, 선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 한 번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싱긋 웃어 보이고는 도움닫기를 시작했습니다.
또 그 미소.
웃는 얼굴이 참 예쁘다, 라고 생각했던 그 미소는 실은 이윽고 경기를 펼친 모든 선수에게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출발’을 알리는 의식 같은 것일까요. 저는 그 어떤 강하고 굳센 표정보다 그 부드럽고 순수한 선수들의 미소에서 지금부터 선보일 연기에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임하겠다는 어여쁜 결의를 느꼈습니다.
세계적인 무대에 선 부담감, 실수하지 않고 싶다는 두려움, 1차 시기에서 실수를 했다는 속상함 등을 곱씹다가도, 도움닫기를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그런 감정은 뒤로 한 채 프로의 자세로 임하겠다는 부드럽고 경쾌한 선언. 그 모습에 그만 반했습니다. 웃는 표정은 선수마다 제각각입니다. 올라가는 입꼬리와 미소 짓는 방식도 다 다르지만 ‘이제부턴 나의 무대’를 알리는 그 찰나의 미소는 누구 할 것 없이 아름답고 당당해 보였습니다. 그 미소 속에는 방금 전까지의 긴장과 속상함 같은 건 온 데 간데없어 지켜보는 사람인 저로서는 왜인지 안심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 지켜봐 주세요‘ 라고 말해 오는 것 같아서요.
돌이켜 보면 난 얼마나 그러한 ‘시작의 미소’를 지어본 적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무언가에 임하거나 시작하기 전, ‘이제부터 열심히 해 보자’하는 마음으로 경쾌하고 산뜻한 포고를 한 적이 말입니다.
글을 쓰려고 할 땐 귀찮음에 꾸물꾸물 몸부림치다가 겨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회사에서 PT를 앞두고 회의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땐 바싹 마르는 입을 축이고 있다가 어물쩡하게 ‘음..해 볼까요?’라고 운을 뗍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소개라도 하면 어깨가 절로 긴장되어 쭈뼛쭈뼛 일어섭니다. 그렇게 있다가 방심하다가는 시작의 결의를 다질 새 없이 어설프고 경직된 자세 그대로 일은 시작되어 버립니다. 그 뒤로부턴 페이스에 말리다가 헛헛헛, 하는 웃음과 함께 멋쩍게 끝나버리기도 하는 법입니다.
그럴 때마다 이 여자 체조 도마 경기에서 보았던 선수들의 미소를 떠올려 보기로 하자, 그런 생각이 듭니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런 미소 하나가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의 정돈이 아닐까요. 미소를 활짝 짓는 순간, 마음속에 왜인지 ‘돌이킬 수 없다. 시작이다‘라는 산뜻한 울림이 번져와 기세 좋게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일단 출발선에 서서, 미소를 싱긋 지어 보는 것입니다. 프로답게 얼굴에 띄우는, 성실하고 산뜻한 신호탄을 말입니다.
추신. 참, 마무리도 중요합니다. 방금 내린 착지가 아쉬워도, 아랑곳 않고 다시 두 팔을 활짝 뻗으며 미소로 마무리하는 당찬 모습. 거기까지가 연기의 동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