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상냥하게 다룹니다
8월부터 요가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3번째 수련이었던 토요일 아침,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조금 특별한 의식을 치렀는데요. 선생님께서 수련 전 메모지 두 장과 펜을 나눠 주시면서 ‘기본’에 대하여 적어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한 장에는 ‘지금 나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것’, 다른 한 장에는 ‘지금은 그렇지 못해 앞으로 노력해서 기본으로 삼고 싶은 것’을 적습니다. 나름 <오늘의 기본>을 쓰면서 100편이 넘는 기본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첫 번째 질문에 선뜻 답을 적어내기 어렵더군요. 하지만 두 번째 질문에는 곧장 답이 떠올랐습니다. 또박또박 적어낸 문장은 이렇습니다.
“물건을 조용하고 상냥하게 다루는 것.“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의식을 두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의 기본이 될 것이라는 선생님의 격려와 함께 저와 수련생들은 각자가 적어낸 메모지를 매트 아래에 얌전히 감춰두고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실은 이 질문을 듣지 않았더라도, 요새 늘 염두에 두고 있던 태도는 ‘생활의 동작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종종 물건을 조금 투박하게 다루는 버릇이 있거든요. 냉장고나 하부장에서 우유나 소금 등을 꺼낸 뒤 문을 쾅 닫고, 방문을 쌩 닫고, 컵을 탁 내려놓고, 노트를 책상 위에 팽 던지곤 합니다. 결코 화가 나 있거나 급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도무자 동작의 끝까지 따라가지 못합니다.
“마음이 늘 조급해서 그래요.”
제 고민을 듣고 동료가 해 준 한 마디입니다. 천천히 해요, 천천히.
물건을 다룰 땐 우선 물건을 집어 들고, 목적에 따라 사용하고, 다시 내려놓는 것까지가 하나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종종 그 ‘마지막 순간’이 있다는 것을 잊고 도중에 손을 놓아버립니다. 도중에 제 손을 떠난 물건들은 쌩 닫히고, 툭 떨어지며 사나운 소리를 냅니다. 매 순간 차오르는 조급함을 드러내면 행동이 사납고 경박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그런 저의 동작들이 그동안 타인의 풍경을 날카롭게 만들어 온 것 같아 반성이 들었습니다.
첫 요가 수련 때의 일입니다. 수련을 마치고 사바아사나 자세로 한참을 쉬고 있는데 싱잉볼 소리가 ’딩-’하고 들렸습니다. 금방 멈출 줄 알았던 소리는 제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길게, 천천히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조금씩 사그라들며 이내 주변이 고요해졌습니다. 소리의 ‘여운’이라는 것을 처음 느낀 순간이었는데요. 저는 그때, 제 마음이 그 소리가 사그라드는 끝까지 따라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마음을 끝까지 따라가는 것이구나.
별안간 물건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건을 다룰 땐 끝까지 마음을 챙긴다. 끝까지 의식을 놓지 말고 따라간다. 그런 마음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중간에 자꾸만 풀썩 놓아버리려는 마음을, 정확히는 그러한 마음이 투영되는 물건을 조심스럽게 소중하게 내려놓습니다. 저는 그러한 노력을 ‘의성어를 부드럽게 만드는 일‘이라고도 바라보고 있습니다.
쌩, 툭, 쾅, 탁, 챙, 팽, 쿵.
물건에 상냥해지지 못할 때, 물건은 이런 소리를 냅니다. 마치 나의 서두르는 마음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 날카롭지요. 하지만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컵을 얌전히 내려놓고, 책을 조용히 닫으면 물건들은 분명 다른 소리를 낼 것입니다. 이 소리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 물건들로부터 상냥한 답장을 듣는 것이 일상 속에서 마음챙김을 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조용히, 조금 더 가지런히, 조금 더 상냥히.
물건을 내려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꼭 붙잡는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