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와 객지, 중간지의 역할
지난 연휴에는 이케바나 원데이 클래스에 다녀왔습니다. 이케바나란 살아있는 꽃과 식물을 소재로 화기 속 침봉에 꽂는 형식의 일본식 전통 꽃꽂이입니다. 식물이 가진 자연스러운 형태와 여백을 활용해 작은 자연을 연출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화도이기도 합니다. 이케바나 특유의 아름답고도 절제된 실루엣과 단정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언젠가 꼭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차분하고 고요한 공간에 들어서니 긴 탁상 위에 차와 양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테이블 아래에는 오늘 활용하게 될 서너 종류의 식물들이 양동이에 한아름 담겨 있었습니다. 이윽고 탁상 위에 놓여 있던 한 장의 교본과 함께 선생님께서는 이케바나에 대한 소개와 명칭 등을 하나씩 설명해 주셨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이 될 식물들의 이름과 주지와 객지, 중간지라고 불리는 각 역할들, 그리고 역할에 따라 꽂는 방식까지. 차례차례 펼쳐지는 이케바나의 섬세한 세계에 마음이 아른아른 설레었습니다.
핵심이 될 주지와 객지를 선생님의 시범에 따라 꽂은 후,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오롯이 홀로 이 작은 우주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유려하고 싱그러운 곡선으로 길게 뻗은 기세가 우렁찬 용버들, 풍성한 주황빛 꽃술 주변으로 수줍게 피어난 흰 꽃잎이 귀여운 에키네시아, 대롱대롱 달린 구슬 같은 모양새가 여름의 기운을 풍기는 꽈리. 각기 다른 개성 있는 모양새를 지닌 식물을 두 손으로 다듬으며 빽빽하고 단호하게 솟아있는 침봉에 하나씩 꽂아내는 작업입니다.
틈틈이 양갱을 주워 먹으며 가위로 줄기를 자르고, 잎을 다듬고, 꽂았다가 굽혀 봤다가, 다시 뽑아도 봤다가 하며 꽤나 고군분투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식물을 하나씩 꽂으며 풍경을 만들어 가면서 문득, 화기 안으로부터 뻗어나가는 이 작고도 풍성한 세계가 마치 한 사람의 세계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식물을 꽂는 행위가 마치 삶을 정돈하고 바르게 세우는 것 같았습니다. 이 화기 안에 나를 투영시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무엇을 가지런히 하고 바로 세워야 하는지 손끝으로 섬세하게 더듬어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케바나는 처음에 주지와 객지를 세우며 시작합니다. 주지는 화기의 가운데 우뚝 서서 뼈대가 되어주는 식물입니다. 그렇기에 중심을 잡아줄 수 있도록 충분히 굵고 견고한 줄기를 가진 식물을 활용합니다. 그리고선 객지를 꽂습니다. 객지는 포인트가 되어 시선을 사로잡는 역할을 하는 식물입니다. 저의 이번 수업에서는 동그랗고 예쁜 꽃을 피운 에키네시아를 사용했습니다. 주지는 일정한 공식에 따라 계산한 길이로 높다랗게 꽂고, 객지는 그보다 1/3의 길이로 잘라 앞쪽으로 (나를 향하여) 45도 정도 시원스럽게 기울여 더욱 앞으로 다가오게끔 합니다. 그 작업이 끝나면 중간지라고 불리는 그 외의 식물들을 비교적 자유롭게 꽂아나갑니다. 다만 중간지를 꽂는 데도 다소 따라야 할 규칙이 있는데요. 요약하자면 이런 것들입니다.
한 곳에서 피어나간 것처럼.
사방으로 과도하게 펼쳐지지 않도록.
뒷모습이 아니라 앞모습으로.
꽃과 잎이 고개를 떨구지 않고 하늘을 보도록.
줄기와 잎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지 않도록 다듬어 줄 것.
너무 과한 컨디셔닝 (자잘한 잎 등을 모조리 쳐내는 것)은 삼갈 것.
저에게는 주지와 객지의 역할, 그리고 중간지를 꽂는 방식이 마치 아름답고 절제된 한 사람의 세계관을 만드는 규칙처럼 다가왔습니다. 나라는 사람도 주지와 객지 그리고 중간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이에요. 어떤 식물을 고르고 어떤 모양새로 조성하느냐에 따라 나라는 사람의 모습이 달라지고, 타인에게 어필되는 자태도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심을 지탱해 주는 굵고 튼튼한 주지는 인생에 비유하자면 나의 삶을 곧고 바르게 이끌어 줄 신념 같은 것이 아닐까요? 한 사람을 보았을 때 그 사람다움의 축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입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고고하게 우뚝 서서 곁가지들의 무게중심을 가운데로 고쳐 잡아줍니다. 자신의 신념을 튼튼히 바로 세운 사람에게서는, 주지가 바로 선 이케바나를 보듯이 고고한 분위기와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무릇 사람에게는 시선을 확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객지가 필요합니다. 꼭 화려하거나 큼지막하지 않아도, 은은하고 수수하게 핀 꽃도 충분합니다. 첫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어필 포인트가 그 사람을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아름다운 외모일 수도 있고, 해맑은 미소일 수도 있고, 차분한 말투일 수도 있겠지요. 건강한 몸매나 스타일일 수도 있고요. 외적인 요소가 아니더라도 나라는 사람을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오래 즐겨 온 취미나 취향, 배려 있는 태도도 좋지 않을까요?
나다운 주지와 객지가 제대로 심은 다음에는, 중간지는 자유롭게 심어나갈 뿐입니다. 중간지는 일상의 소소한 행동과 생각, 선택 같은 것입니다. 비교적 자유롭게 행하되 나라는 한 사람의 뿌리에서 나온 것처럼 자연스럽고 일관적이면 좋겠지요. 너무 방탕하게 뻗어 타인의 세상을 침범하지 않도록, 뒤돌아 보거나 아래를 보지 않고 늘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나의 자잘한 개성이 드러나지 못하게 가리고 있는 행동과 습관들은 가지치기할 것, 그러나 너무 과하게 잘라내지 않고 자연스러운 본모습은 소중히 남길 것.
일정한 절차와 규칙을 따라 몸과 마음을 정돈하는 예도인 만큼, 이케바나에는 식물을 활용하고 꽂는 데 있어 따라야 할 규칙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규칙이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의지가 됩니다. 힘 있고 조화로운 풍경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간단하고도 상냥한 규칙들이거든요. 그 규칙을 의지할 수 있기에 더욱 든든한 마음으로 나의 마음을 투영한 작은 우주를 다정하고 섬세하게 만들어 갑니다.
작업을 하는 도중과 마친 후, 선생님께서 피드백도 해 주셨습니다. “가만 보면 힘이 없는 선적인 식물들만 있거든요. 면을 볼 줄도 알아야 해요.”, “시선이 꽂혀야 할 객지에 눈이 잘 가지 않아 이 중간지들은 쳐내는 게 어떨까요?“, “이 꽈리는 귀엽지만, 뒤의 예쁜 아이를 가리니 과감히 잘라줍시다.“ 시각디자인과를 다닐 학생 시절, 작업할 때의 버릇이 고스란히 튀어나와 놀라고 반성하기도 하며, 마치 이케바나를 조성하는 소소한 버릇들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도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 과감하지 못하고 몸을 사리는구나.
둘 다 취하고 싶어 욕심을 내느라 여백을 두지 못하는구나.
양동이에서 식물들을 꺼내 가위로 다듬을 때의, 아기 다루는 듯한 조심스럽고 섬세한 손의 감각이 계속 남아 있습니다. 나를 이루는 소중한 것들도 이런 신중하고 바른 태도로 다루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근사할까요. 이케바나를 하듯이, 삶의 풍경을 가꾼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가만히 바라봐 보고 싶습니다. 화기를 멀리 두고 보았던 것처럼, 나라는 사람을 멀리 보면서 어떤 것이 어떻게 심겨 있어야 아름다울지를 늘 고민하면서요.
추신. 참, 주지와 객지는 모두 고개를 숙여 인사하듯 앞으로 기울이는데요. 늘 겸손하게 인사를 건네는 마음으로 타인과 마주하고 싶습니다.